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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되지 않는 여자, 애디 라뤼 ㅣ 뒤란에서 소설 읽기 2
V. E. 슈와브 지음, 황성연 옮김 / 뒤란 / 2021년 9월
평점 :
기억되지 않는 여자, 애디 라뤼
V. E. 슈와브 장편소설 | 황성연 옮김 | 뒤란
로맨스 판타지 소설 / p.708
누군가에게 잊혀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난 살아갈 수 있을까? 다른 사람과 나 사이에 존재하던 기억들이 사라져 매 순간 낯선 사람으로 인식된다면 이 생애를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누구냐 물어오는 물음에 애디가 제아무리 자신의 이름을 말하려고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해도 되지 않는다. 연필, 잉크, 물감, 피, 모든 것들로 시도해 보아도 전해지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완전하게 지워진 듯.
아들린. 애디. 라뤼. 내 이름은 아들린 라뤼다. 본인조차도 자신을 잊게 될까 봐 계속 주문을 외우듯 되뇐다.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어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는 김춘추의 '꽃'이 떠올랐던 이야기 「기억되지 않는 여자, 애디 라뤼」.
판타지 로맨스라는 이야기에 벽돌임에도 손을 번쩍 들어 참여했더랬다.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기억되지 않는 여자'라는 제목에 그렇게 큰 무게가 있을 거라, 온몸을 부딪히며 부서지고 고통받으며 기억되기 위해 살아가는 그녀를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했다.
'난 당신을 기억해요.'라는 헨리에 말엔 나조차도 턱 숨이 멈추어질 정도로 '아, 누군가 나를 알아봐 주고 기억해 주는 것이 이렇게 큰 힘을 가지고 있었구나'를 깨닫는다. 그리고 나의 흔적을 남길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
13살 애디는 부모가 강요하는 결혼식 당일, 자신을 자유롭게 해줄 신을 애타게 부르며 숲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그 부름에 응답해 나타난 어둠의 신. 아무리 절망스럽거나 암울하다 해도 어둠이 내린 뒤에 응답하는 신들에게는 절대 소원을 빌어선 안된다는 에스텔의 당부를 떠올리지도 못한 채 애디는 자신 외에는 어떤 누구에게도 속하고 싶지 않다고, 자유롭게 살면서 자신의 길을 찾고 사랑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더 이상 원하지 않을 때 자신의 영혼을 가져가라 말한다.
그렇게 어둠의 신과 파우스트적인 거래가 성사된다. 그리고 불멸의 삶을 얻는다. 하지만 그녀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기억하지 못한다. 제약 없는 시간과 제약 없는 삶을 얻었지만 정말 어디에 방해받지도 않고 세상을 다닐 수 있는 자유를 얻어 어디에도 묶이지 않고 구속되지도 않는 자유를 가졌지만 잊혀지는 저주를 대가로 받은 것이다.
여관에 가 방을 잡아도 잠시 후면 주인장이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고 내 쫓는다. 하룻밤 함께 자고 일어났음에도 기억의 부재로 인해 사과와 불편함이 가득한 아침을 맞이한다. 만나는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서 지워져 그 누구와도 정을, 사랑을 지속하지 못했던 그녀는 집조차 소유할 수 없다.
그런 그녀가 300년이 지난 뉴욕의 어느 작은 서점에서 자신을 기억한다는 헨리를 만났을 때는 정말!!(입틀막) 헨리의 '난 당신을 기억해요'라는 이 문장이 등장한 이후부터는 현재의 시점 중간중간 그녀의 과거가 나오던 이야기조차 건너띄고 싶어질 정도로 결말이 궁금했다. 그 남자는 어떻게 그녀를 기억할 수 있었을까?
기억되지 않음에 아주 오랫동안 뿌리를 내리지 않고 살아와 이제 뿌리를 자라게 하는 법도, 물건들을 잃어버리는데 너무나 익숙해져 어떻게 소유하는지도 모르던 그녀를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자리 잡는다. 그래서 매년 기념일에 찾아오던,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던 어둠의 신 뤽을 증오하면서도 기다리게 되던 그녀의 모습이 이해가 되면서도 마음 아팠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처음으로 기억해 주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이야기를 기록하던 헨리와의 이야기보다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존재였던 뤽과 그녀의 이야기가 더 매력적이었다. 인간의 형상으로 계속 찾아와 아들린이라 부르며 자신에게 항복하라던 뤽과 끝까지 반항하면서도 그가 찾아오지 않는 해에는 그가 주었던 나무 반지를 만지며 그를 떠올리던 그녀. 왠지 도깨비마저 떠오르던 이야기.
그녀가 도망가지 않고 아이 셋의 홀아비와 결혼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의 이런 상상을 비웃듯 그녀는 도망 나온 것에 대해 후회하던 부분이 전혀 없다. 오직 앞으로 나아갈 뿐. 자신의 존재를, 흔적을 남기기 위해 나아가던 그녀가 또 보고 싶어질 거 같다. 그리고 뤽과 그녀의 뒷이야기 또한 다시 만나고 싶다. 뒷이야기 안 나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