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 을유세계문학전집 116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 지음, 이경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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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

니골라이 고골 | 이경완 옮김 | 을유문화사

세계문학 / p.600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라고? 무슨 이런 듣도 못한 게 다 있어? '야회'라니, 그게 뭔데? 어떤 벌치기가 세상에 툭 내던진 거라네! 맙소사!(중략) 오, 하느님! 무슨 이야긴들 못 하겠어요? 어디선들 옛날얘기를 파내지 못하겠어요? 어떤 공포인들 불러내지 못하겠어요? 하지만 벌치기 루디 판코의 야회만큼 기이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p.11~13

이야기꾼이 옛날이야기를 풀듯 디칸카 근교에 사는 벌치기 노인 루디 판코가 이 책의 편찬 경위와 과정을 설명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꼭 루디 판코가 구연동화를 들려줄 것만 같았다. 자신의 사랑방에 모인 마을 사람들과 손님들이 들려준 기이하고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추려서 기록하고 편찬하였다는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 어떤 이야기가 가득할지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너무 큰 기대감이었을까? 눈에 보일 듯 섬세한 묘사와 현실이지만 꼭 꿈속에 있는 듯한 환상적인 세계가 어우러지며 공포와 신비감을 불러일으키는 고딕소설을 보는듯했던 이야기들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빠져들지 못했다. 아마도 꾸역 꾸역 읽었다고 하는데 맞을 것이다. 그래도 한번 시작한 책 끝은 보자는 생각에 하루 종일 책을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창작 설화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별책처럼 수록되어 있던 맨 뒤에 나오던 세 편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된다. 와~ 중도 하차했으면 어쩔 뻔했냐며, 끝까지 읽은 나 정말 기특하다고 칭찬해 주면서 고골의 다른 책도 이러하다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른다.




재미있게 보았던 세 편의 작품. 이반 이바노비치가 이반 니키포로비치의 총을 탐내며 계속 선물로 달라고 요구하다가 거절당하자 물물 교환을 하자며 붉은 돼지와 귀리 두 자루를 제안했다가 '수거위'라는 말을 듣게 되면서 사람들의 귀감이 될 정도로 둘도 없던 친구였던 두 사람이 철천지원수가 되는 과정을 그렸던 '이반 이바노비치와 이반 니키포로비치가 싸운 이야기'.

집요하게 보이던 총에 대한 물욕으로 너무나도 당당하게 요구하던 그의 모습에 기가 차면서도 이 싸움이 맞고소로 이어지며 몇십 년까지 이어질 줄은 예상 못 했던 이야기였다. 마지막 이 모든 것을 목도한 화자가 마을을 떠나며 '이 세상은 얼마나 지루한가요!'라고 외쳤던 부분에선 마을 사람들 또한 비속한 욕망에 사로잡혀 권태롭게 살아가고 있음을, 그들을 중재하기 위해 등장했던 절름발이, 애꾸눈 등의 인물들이 유독 기억에 남기도 했던 이야기였다.

엉뚱한 모습으로 들키며 이야기가 끝나 나에게 웃음을 주며 '재미있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했던 '마차', 생각할수록 '이렇게 끝난다고?!'를 외치게도 했던 이 이야기는 저자가 '페테르부르크 이야기'에 포함시켰다가 후에 삭제한 작품 중 하나라고 한다. 하지만 푸시킨, 벨린스키 등 동시대인은 물론 체호프, 톨스토이와 같은 후대 작가들에 의해서 큰 호평을 받았다고도 하니, 왠지 모르게 나도 인정받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인가?! ㅋㅋㅋ 정말 저자의 위트와 풍자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유일한 교양소설이라 할 수 있는 '로마'이야기는 나까지 로마에 푹 빠지게 만들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19세기 근대 문화의 메카인 파리를 예찬하던 그가 자신의 고향 로마에 완전히 에워싸여 매료되어가던 그 과정이 눈앞에 그려지면서 나까지 그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벅차오름을 느꼈고, 로마로 지금 당장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로마의 환상적인 파노라마를 보며 무아지경에 빠져들던 마지막 장면도 좋았던, 저자의 로마 예찬이 제대로 느껴지던 이야기였다. 또한 그를 통해 자연, 예술, 고대에 대해 느껴볼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디칸카 근교 마을의 야회」 1, 2부에는 사랑하는 여인의 아버지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게 된 페트로가 악마의 계약에 넘어가 그녀의 동생을 죽이고, 원인 모를 기억 상실증에 걸려 광기에 시달리다 마녀에 의해 재로 변했던 '성 요한제 전야 동화', 여왕님께 문서를 전달하러 가게 된 헤트만이 문서를 모자에 꿰매고 길을 떠났다 마녀에게 모자를 빼앗기게 되면서 마녀들과 바보 게임을 해야 했던 '사라진 문서', 악령을 쫓아내는 서인 베드로를 묘사하며 그림을 그린 대장장이에게 복수하려고 성탄전 마지막 날 달까지 훔쳤던 악마가 오히려 이용당하며 웃음을 줬던 '성탄 전야', 선조가 지은 배신의 죄에 대한 저주였던 마법사의 악행이 그려졌던 '무서운 복수' 등

선과 악, 공포와 욕망들의 감정이 두드려졌던 이야기 그리고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던 여러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때로는 오싹했고 때로는 환상적이었기도 했으며 때로는 의문투성이였던 이야기였다.

설화가 주였던 이 책에서 오히려 뒷이야기에 빠진 나, '마차'가 발표된 해 함께 발표된 '감찰관'과 '코'도 읽어 보고 싶어지다니 참 재미있다는 생각도 든다. 설화에서 여러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놓았던 저자가 거기에선 어떤 문채로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다. 그 이야기에서도 빠져들 수 있을까? 아니면 '에잇' 하게 될까?

확실한 건 이 책을 보고 나면 '니콜라이 고골', 그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진다는 것!! 이렇게 또 한 명의 저자를 알게 되어 기쁘다.

ps. 난 세 편이 더 재미있었지만 지인은 이 세 편보다 앞의 설화 이야기가 재미있었다고 한다. 역시나 책은 어디까지나 개인 취향.^^ 자기에게 잘 맞는 이야기가 최고인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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