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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민음사 / 2017년 8월
평점 :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 양억관 (옮김) | 민음사
일본소설 / p.572
언제부터였을까? 책을 읽으며 저자가 의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배경으로 쓰인 책인지를 찾아보고 다시 생각해 보기 시작한 것이. 예전엔 그저 이야기에 푹 빠져 등장인물마다의 사연에 집중을 하며 조금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던 거 같은데, 이젠 그게 되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읽을수록, 서평을 쓸수록 더 어렵게 다가온다. 특히 서평이.... 그래서 더 고민되었던 「노르웨이의 숲」.
두께가 제법 있음에도 길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술술 읽힌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분명 처음엔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나기 위해 가장 먼저 읽어야 할 책'이라는 띠지에 적힌 문구를 보며 '제대로 선택했구나, 나도 드디어 '노르웨이의 숲'을 읽어보게 되는구나'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온전히 예전처럼 이야기로만 본다면 흥분을 아니할 수 없었던 이야기였고, 배경을 생각하고 저자의 의도를 그나마 생각하며 '그래, 그 시절엔 그럴 수 있었을지도.. 그런 사람들도 있었겠지..' 하다가도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쩜 이래?!'가 되어버리던 이야기였다.
언제까지고 나를 잊지 마.
내가 여기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줘.
독일 함부르크 공항에 막 착륙한 비행기 안에서 울린 비틀스의 '노르웨이의 숲'을 듣고 와타나베는 잃어버린 시간, 죽거나 떠나간 사람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추억을 떠올린다.
세 살부터 같이 놀았고 온갖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잘 이해하면서 자랐던 기즈키와 나오코. 그리고 그의 베프 와타나베. 셋은 항상 함께 였다. 하지만 열일곱의 나이에 기즈키가 갑작스럽게 자살로 삶을 마감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기즈키가 세상을 떠난 다음엔 사람을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사람을 사랑한다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된다.
힘든 기억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도쿄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을 한 와타나베, 그리고 도쿄로 올라온 나오코. 둘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고 기즈키를 잃은 슬픔을 공유하며 특별한 애정을 키워나간다. 하지만 나오코가 요양원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둘은 편지로 인연을 이어가게 되고 기즈키는 그녀에 대한 감정이 사랑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만나게 된 친구 미도리와 시간 또한 보내게 되는데...
우리에게도 아주 정상적인 부분이 있어.
그건 우리는 스스로 비정상이란 걸 안다는 거지.
와타나베를 만나는 사람마다 그의 말투가 특이한 거 같다는 말과 함께 순수하고 제대로 된 사람인 거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공감하지 못했다. 나오코에 대한 감정을 깨달았음에도 대학 선배와 함께 헌팅을 하고 자연스럽게 여자들과 자기를 여러 번이었고 미도리와도 분위기에 끌려 키스를 했으며 급기야 나오코와 함께 요양원에 머물던 레이코와도 잔다. 이렇다 보니 이젠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설마 이 사람이랑도?!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까지 했다.
더욱 놀라웠던 건 대학 선배 또한 여자 친구가 있었고 미도리 또한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것.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면 참을 수 있지 않냐며 왜 나 하나만으로 안 되냐고 묻는 여자친구의 말에 선배는 네가 남자의 성욕에 대해 잘 몰라서 그렇다며 오히려 그저 그 여자들과 만나서 하고 헤어지는 게 다인데 왜 안되냐고 묻는다.(미친 거 아니냐?!)
그리고 미도리는 와타나베에게 마스터베이션을 할 때 자기를 떠올리며 해보라며 권하기까지 하고 감상을 들려달라고 했으며 와타나베가 자신을 덮치고 자기는 안된다고 말하는 환상을 말하기까지 한다. 그리고 13살 여자아이에게 당하는 30대 여성 레이코도 있다.
완독 후 흥분해서 같이 책을 읽은 분들께 다다닥. 그중 한 분이 '상실'에 대한 심리 소설이라고 한다. '어떤 상실이요?'라고 물음과 동시에 떠오르던 원래의 제목 '상실의 시대' 그리고 이 책이 쓰인 배경 1960년대 말 고도성장기 일본. 이 시기의 위태로운 청춘들을 그린 것인가?! 한참을 생각하다가도 갸웃. '고독한 도시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청춘의 아픔과 사랑의 순간을 강렬하게 그려 낸 시대의 소설'이라는 설명을 보고서도 갸웃.
모르겠다. 시대 배경을 알았지만 소설을 읽으며 그 '상실'이 난 느껴지지 않았다. 이 책에 나오던 수많은 죽음을 상실로 표현한 걸까?! 만약 '상실'이 있었다고 해도 모든 것을 성욕으로 풀려고 했던 게... 아픔이었을까?
ps. 같이 읽으신 분 중 한 분이 20대에 읽고, 40대에 재독을 했지만 반응은 같았다고. 후에 다시 읽었을 때 또 같은 반응일지 궁금하다고 한다. 그러게 나 또한 후에 다시 읽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나는 시간의 세례를 받지 않은 것을 읽는 데 귀중한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아. 인생은 짧으니까. p.67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어. 실망하는 게 싫을 뿐이야. p.112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신사지. p.119
우리는 그때 만나야 했기에 만났을 것이고 그때 만나지 않았더라도 또 다른 곳에서 만났을 것이다. p.125
우리는 무인도에서 자란 벌거벗은 어린아이 같은 존재였어. 배가 고프면 바나나를 먹고 외로우면 둘이서 끌어안은 채 잠들었지. 그런 상태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잖아. 우리는 점점 커 갈 거고 사회 속으로 나가야만 했어. 넌 우리한테 정말 중요한 존재였어. 너는 우리와 바깥 세계를 연결해 주는 연결 고리 같은 의미를 띤 존재였어. 우리는 너를 매개로 하여 바깥 세계에 동화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했던 거야. 결국은 잘되지 않았지만. p. 261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p.281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은 다 이것저것 서로 강요하면서 살아가니까. p.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