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없이 여기 있을 수 있어? 나 없이도 있을 수 있지?
네가 갑자기 물었다. 눈을 마주 보면서.
네가 왜 없어......? p.23
▶ 문자는 뒷걸음쳤다. 마침표는 마칠 후 없는 데 놓아고. 쉼표는 쉴 수 없는 틈을 파고들고. 아무 실마리가 없음을 확인할 뿐이었다. 너를 잘 모르고 있었다는걸.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도 자신이 없어졌다. p.27
▶ 꼭 자신도 이 신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듯 몸에 힘이 없었다.
네가 사라지고 나는 중력을 잃었다. 네가 사라지고 알게 되었다. 네가 나의 중력이라는걸. 내가 없었을까. 너의 중력에는. p.52
▶ 너의 눈이 투명에 물들어 갔다. 내가 보이지 않았다. 네가 바라보는 곳에 나는 없었다. 마주 보고 있는데 눈이 비어 있었다. p.56
▶ 모래 위에 너의 발자국이 돋는다. 발자국이 이어진다. 외계 비행체를 향해. 눈을 못 돌리겠다. 화면에서. 발자국이 끊길까. 네가 사라질까. p.61
▶ 혼자 있으면 내가 없는 거 같았다. 네가 없으면. 네가 있어야 나도 있는 거 같았다. 내가 되는 거 같았다. p.93
▶ 여기 있을게. 너와 나 사이에. 지금은 닿지 않지만. 눈 감지 마. 안 보인다고. 귀 막지 마. 안 들린다고. p.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