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이름 - 미술사의 구석진 자리를 박차고 나온 여성 예술가들
권근영 지음 / 아트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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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이름

권근영 | 아트북스

에세이·미술/p.204

미술사의 구석진 자리를 박차고 나온 여성 예술가들

예술로 스스로의 이름에 완결성을 부여하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완전한 이름」, 표지를 보는 순간 마음을 빼앗겨 앞뒤 재지도 않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죽음의 수용소에서’와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그리고 '놀면 뭐하니'에서 가족과 함께 선택했던 '노은님' 작품을 이 책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 이렇게도 이어지는구나’ 신기하면서도 반가운 마음이 들어 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특정 분야의 여성들이 소개될 때면 유독 ‘여’라는 성별이 붙어 ‘여’가수, ‘여’경찰, ‘여’기자, ‘여성’화가 등으로 불린다. 혹 내가 잘못 알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남기자’, ‘남성화가’를 네이버에 검색도 해보았으나 ‘남기자’는 ‘~을 남기자’라는 뜻이 대부분이었고 ‘남성화가’는 남성화만 주구장창 나온다. 와~ 이 정도일 줄이야...

현재 많은 여성 화가들이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누구의 아빠도, 누구의 남편도 아닌 그저 ‘화가’로 살았던 남성들처럼 그림에만 전념했다면, 다른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까?’ p.8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누구나 입학할 수 있다던 바우하우스조차 여학생 수가 학교의 신뢰도를 떨어뜨릴까 우려해 비공식적 여성 할당제를 도입했고 등록금마저 더 비쌌으며 적성이나 관심사와 상관없이 여성 모두 직조 공방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남성 화가의 작품값이 더 비싼 현실에서 의도적인 ‘이름 지우기’가 있었던 그 상황 속에서 ‘미술로 더 나은 세계를 꿈꾸며 나아가길 원했던 많은 여성들이 역사에서 지워졌다.’ p.20

인상파 전시에 유일한 여성 화가로 참여했던 베르트 모조리의 사망진단서에는 '무직'이라 적혔고, 1984년 개인전을 열게 된 스무 일곱의 작가 황주리는 ‘누구의 딸’ 혹은 ‘젊은(여린) 여자’로만 봤다. 노은님은 프랑스 교과서에 프란츠 카프카 변신과 함께 ' 빨간동물'이 실렸을 정도로 유럽에서 성공했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파독 간호사였다는 것과 아이처럼 천진한 그림을 그린다는 것으로 소개된다.

독일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한 건 딱 2년인데 그 2년으로 70년 넘는 삶을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 아프다.



다시 이름을 찾은 여성 화가들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며,

오늘 그림으로 나를, 우리를 다독인다.

p.11

많은 화가들이 임신을 하면 그림을 그리지 못하게 될 사항에 놓일까 봐 불안해하며 임신한 상태에서 더 그림에 몰두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직장을 다니는 여성들은 임신으로 인한 경력단절을 걱정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갈림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을 알려주며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줬던 ‘프리들 디커브란다이스’, 몬드리안보다 앞선 최초의 추상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 여성이 그린 최초의 누드 자화상을 그린 ‘파울라 모더존베커’, 천재 문호 동생 버지니아 울프의 명성에 가려져 ‘주부 취미생활’ 정도로 취급받았던 ‘베네사 벨’, 서른다섯 마리의 뱀이 스멀스멀 뒤엉켜 있는 묘한 분위기의 생태로 화가의 이름을 날린 천경자...

이제라도 「완전한 이름」으로 만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여전히 자신의 이름을 찾지 못한 여성화가들 또한 만나볼 수 있길 바란다.

300년도 기다렸는데 반년쯤은 괜찮다.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여자들은 계속 뚜벅뚜벅 걸어 나갈 테니까.

p.178

ps. 살아생전 엔 그림 하나 팔지 못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며 그림을 그린 화가들을 볼 때면 혹 그들이 생전에 인정을 받고 생활고에 시달리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그림들이 어떤 방향으로 달라졌을지 궁금하다. 그 당시의 상황들이 화가들에게 분명 풍부한 영감을 주기도 했을 거란 생각에 그들의 또 다른 그림들이 궁금해진다.

완전한 이름, 인상 깊은 글귀

그림 속 인물들은 당대의 역사를, 풍속을, 관계를 되살리고, 그림 속 풍경과 정물들은 '생활의 예술가'였던 그녀를 다시 보게 한다. 그렇게 그녀는 살아남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언니가 아닌, 화가 버네사 벨로. p.98

성공한 화가의 자부심을 드러낸 자화상 속 그림은 X선 촬영 결과 원래 그림 위에 덧그린 사실이 드러났다. 여자를 그렸다가 남자 바이올리니스트로 바꿨다. 마치 사후에 자신의 존재가 잊히고, 폄하되고, 무시되고, 지워질 걸 예견이라도 한 듯이. p.134

대다수 사람들이 글을 모르던 시절 그림은 성서였고 역사 책이었다.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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