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MIDNIGHT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프란츠 카프카 외 지음, 김예령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똘스또이 | 석영중·정지원 옮김 | 열린책들

세계문학/p.127

카이사르는 사람이다, 사람은 죽는다,

그러므로 카이사르도 죽는다.

p.73

성공한 판사이자 세련된 교양인, 한 집안의 가장이었던 이반 일리치는 어느 날 새로 이사하는 집에 커튼을 달다 의자에서 떨어지며 옆구리를 부딪힌다. 큰 사고도 아니었고 통증도 사라졌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긴 이 사건이 그에게 죽음으로 다가오게 할 사건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처럼 준비되지 아니 영영 준비 못 할지도 모를 죽음이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면 난 어떤 행동을 보이게 될까?! 이반 일리치가 죽음을 부정하다 깨달음을 얻고 죽기까지의 과정을 세세히 보여주며 만약 당신이 이 상황에 처한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어온다.




죽음, 그래, 죽음, 저들은 아무도 몰라.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 날 불쌍하게 여기지도 않아. 그냥 놀 따름이야. 저들도 똑같아. 똑같이 죽게 될 거라고. 멍청이들. 내가 조금 먼저 가고, 저들은 조금 늦게 갈 뿐, 결국엔 다 마찬가지야.

p.70

이반 일리치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모두 그를 좋아했다는 설명과 함께 뒤이어 바로 나오던 그의 죽음의 소식. 그런데 그의 부고를 전해 듣자마자 동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보다 그의 죽음이 가져다줄 자신과 지인들의 인사이동이나 승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따지기 바쁘다. 그리고 죽은 것이 자신이 아닌 그 사람이라는 데에서 모종의 기쁨마저 느낀다.

어쩌겠어, 죽은걸. 어쨌든 나는 아니잖아. p.10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분명 그를 좋아한다던 동료들이지 않았나? 그런데 더 놀라웠던 건 이반 일리치의 아내의 행동이었다. 남편의 사망 시 국가에서 받아 낼 수 있는 모든 지원금의 종류를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추도식에 온 동료에게 혹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 이외에 돈을 더 긁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추도식에 온 남편 동료에게 슬쩍 물어본다.

죽음이라는 상황에서 가족과 동료들이 보여주던 모습들이 왠지 모르게 거북함을 느끼게 만든다. 가족과 동료 모두 그의 죽음 앞에 거짓의 가면을 쓰고서 행동해왔다면 오히려 하인 게라심만이 제대로 죽음을 바라본다. 결국은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 날까지 유일하게 위로가 되던 사람이 되기도 했던 게라심.

하느님의 뜻이지요. 우리도 결국은 모두 그곳에 갈 텐데요. p.22




살고 싶어, 정말 살고 싶어.

p. 115

편안하고 유쾌하며 품위 있게라는 신조를 가지고 생활하던 이반 일리치.

그가 아내를 맞이함에 따라 자기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과 자신이 속한 상류 사회가 인정해 주었기 때문에 결혼했다고 할 만큼 '위선' 속에 살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특히 권력이 있음에도 오히려 함부로 휘두르지 않으며 약자를 존중한다. 그런 그의 모습에 그들이 자신을 존경한다는 것을 알고 더 위선 속에서 우월감을 느꼈던 그.

그런 그가 정작 자신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이 보이던 위선적인 행동에 분노한다. 하지만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통해 그 또한 자신의 삶 역시 올바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처음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땐 죽음을 부정했다. 그리고 죽어가는 자신과 달리 멀쩡히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으며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억울해하며 절망 속에서 빠지기도 했다. 결국엔 죽음을 수용하며 자신의 지나간 삶 모든 것을 완전히 새로운 각도에서 되짚어 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끝내 '용서해 줘'라는 말은 하지 못했던 이반 일리치.

한 사람에게 죽음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가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죽음에 대한 자세를 생각해 보게 한다. '내가 그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도 저러했을까?!' 그를 통해 죽음에 대해 간접 체험을 해본다. 그리고 어릴 때 멀고도 먼 죽음이 나이가 들면서 축하하는 일보다 죽음을 애도하는 일이 많아질수록 남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걸 몸소 깨닫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조금은 함께 하는 이들과 더 오래오래 하고 싶다. 분명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 가까워질 죽음이지만, 언제 찾아올지 모를 죽음을 떠올리며 막연히 불안해하는 것보다 죽음을 인식하되 내일을, 미래를 계획하며 삶의 행복을 누려봄이 좋지 않을까? 하루하루 행복으로 채워나가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