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적는다는 사실에 교사와 동급생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게 된 토마스 크뢰거는 수업 시간에 딴청을 피우는 산만한 열네 살 아이이다. 그는 매번 자신이 왜 다른 사람과 다르게 모든 세상사와 충돌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자신과 정반대되는 우등생에 잘생기고 인기 많은 한스 한젠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가슴을 짓누르며 불타오르는 질투심이 섞인 동경이었다. 너처럼 그렇게 푸른 눈을 지니고 온 세상 사람들과 그토록 정상적이고 행복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p.16
그처럼 되었으면 했던 토니오가 열여섯 살이 되고 또다시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잉에 홀름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이 때로는 많은 고통과 번민 그리고 굴욕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생기가 넘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였기에 혼자만의 사랑이긴 했지만 전심전력을 다해 자신의 감정을 가꾸어 나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한스를 잊어버린 것처럼 세월이 흐르면 그녀에 대한 마음 또한 소리 소문 없이 사그라들 거라는 두려움을 느끼는 그였다.
토니오 크뢰거는 이 지상에선 변치 않는 마음이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움과 환멸감으로 가득 찬 채, 불 꺼진 차가운 제단 앞에 아직 한동안 서 있었다. p.38
그들의 세계를 동경하면서도 그 언저리만 맴돌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나가던 그는 결국 서른쯤 그 꿈을 이룬다. 그리고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처럼 일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처럼 일했으며 인간이 아닌 오직 창작자로만 간주되길 바란다.
그러던 어느날, 바람을 쐬러 13년 만에 자신이 떠나온 곳 고향을 들리게 되고 그곳에서 다시 한스와 잉에 홀름을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