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 지음 |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세계문학 / p.132

난 두 세계 사이에 서 있어서,

어느 세계에도 안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살아가는 게 좀 힘이 듭니다.

p.125

단순하면서도 산뜻해 보이는 표지와 달리 심오한 예술의 세계를 담은 이야기 「토니오 크뢰거」. 처음엔 쉽게 빠져들어가던 이야기가 뒤로 갈수록 ‘검은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로다’가 절로 나오면서 최근 읽은 ‘백야’의 몽상을 즐기는 고독한 몽상가 ‘나’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뭔가 토니오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백야의 ‘나’가 자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의 분위기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책 제목이자 주인공 이름이기도 한「 토니오 크뢰거」는 그가 다른 사람과 다른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갖고 생각하며 성찰해가면서 성장해나가는 성장소설이자 예술의 본질과 예술가의 삶에 대해 심도 있게 담은 예술가 소설이다.

예술가이지만 토니오의 동료들은 그를 ‘시민’ 또는 ‘길을 잃은 시민’이라 불렀고, 시민들은 그를 체포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예술이라는 세계에 속하면서도 평범한 속세를 동경하는 토니오가 어느 곳 한쪽 세계에 완벽하게 속하지 못한 채 방황하는 그의 마음이 잘 묘사되어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이상하게 생겨 먹어서

모든 세상사와 충돌하는 걸까?

선생님들하고는 왜 사이가 나쁘고,

다른 아이들 사이에 있으면 왜 서먹서먹해지는 걸까?

p.14~15

시를 적는다는 사실에 교사와 동급생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게 된 토마스 크뢰거는 수업 시간에 딴청을 피우는 산만한 열네 살 아이이다. 그는 매번 자신이 왜 다른 사람과 다르게 모든 세상사와 충돌을 하는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자신과 정반대되는 우등생에 잘생기고 인기 많은 한스 한젠을 사랑한다.

하지만 그것 또한 가슴을 짓누르며 불타오르는 질투심이 섞인 동경이었다. 너처럼 그렇게 푸른 눈을 지니고 온 세상 사람들과 그토록 정상적이고 행복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p.16

그처럼 되었으면 했던 토니오가 열여섯 살이 되고 또다시 금발에 푸른 눈을 한 잉에 홀름을 사랑하게 된다. 사랑이 때로는 많은 고통과 번민 그리고 굴욕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풍요롭게 하고 생기가 넘치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였기에 혼자만의 사랑이긴 했지만 전심전력을 다해 자신의 감정을 가꾸어 나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한스를 잊어버린 것처럼 세월이 흐르면 그녀에 대한 마음 또한 소리 소문 없이 사그라들 거라는 두려움을 느끼는 그였다.

토니오 크뢰거는 이 지상에선 변치 않는 마음이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움과 환멸감으로 가득 찬 채, 불 꺼진 차가운 제단 앞에 아직 한동안 서 있었다. p.38

그들의 세계를 동경하면서도 그 언저리만 맴돌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나가던 그는 결국 서른쯤 그 꿈을 이룬다. 그리고 살기 위해 일하는 사람처럼 일하는 게 아니라, 일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처럼 일했으며 인간이 아닌 오직 창작자로만 간주되길 바란다.

그러던 어느날, 바람을 쐬러 13년 만에 자신이 떠나온 곳 고향을 들리게 되고 그곳에서 다시 한스와 잉에 홀름을 보게 된다.



잉에보르크 홀름, 너를 아내로 삼고,

한스 한젠, 너 같은 아들을 두고 싶구나.

인식의 저주와 창작의 고통이 주는 저주에서 벗어나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사랑하고 찬미하고 싶구나!

p.115

작품 소개를 보고 나서야 그의 이름이 북방적인 성 크뢰거와 남방적인 이름 토니오의 결합으로 두 세계의 경계 위에 불안정하게 서 있는 예술가를 암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초반 한스가 제 삼자가 끼어드는 자리에서 토니오를 이름이 아닌 성으로 부르며 무언가 이국적이고 유별난 이름이라고 말했구나 뒤늦게서야 이해한다.

남방 출신의 어머니를 닮은 토니오와 달리 한스와 잉에는 금발의 북방인이었고 음악과 시에 몰두하며 자신의 정신세계에 집중하는 자신과 달리 그들의 정신세계는 복잡하지 않았다. 무엇이 그들과 자신이 다른지, 그들이 속한 세계가 왜 이렇게 분리가 되었는지 ‘다름’에 대한 그의 집착과 평범한 삶에 대한 질투는 그의 세계인 예술가의 본질 사이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며 성찰하면서 예술로 꽃피워진다.

‘예술과 대응되는 것이 뭘까요?’, ‘예술가란 마음속에 늘 모험을 잔뜩 품고 있는 자입니다.’, ‘문학이란 결코 천직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예술가란 어떤 존재인가요?’ 등 예술에 전념하기 위해 인간적인 것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인간적인 것을 서술하느라 가끔 죽도록 피곤해 하기도 하는 삶에서의 도피를 배반으로 생각하던 예술가의 이야기.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어려웠던 이야기였지만 평범한 세상과 예술 세계 사이에서 방황하던 토니오를 통해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토마스만의 잘 정리된 예술 세계와 창작자로서의 고통과 고뇌가 잘 표현된 책이었다.

ps. 정리하면서도 이게 맞나 싶은 이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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