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라우마라족은 이곳에서 천 년 넘게 물을 길었고, 세상에서 볼만한 것은 이미 대부분 이곳을 지나쳐 간 터였다. 갑옷을 입은 스페인 사람들, 사냥꾼들, 덫사냥꾼들, 귀족들, 귀족의 여인들, 노예들, 도망자들, 군대들, 혁명가들, 죽은 사람들, 죽어 가는 사람들. 그들이 본 사람들은 모두 후세에게 이야기로 전해졌고, 이야기로 전해진 이들은 모두 후세에게 기억되고 있었다.
p.270
인디언들은 칠흑처럼 까맸고, 침묵으로써 일시적이고도 불확실하며 더없이 의심스러운 세계에 대한 속내를 드러냈다. 위험한 휴전 상태라도 관찰하듯 신중한 집중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들은 희망도 미래도 없이 경계 상태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불확실한 얼음 위의 사람들처럼.
p.271
산산조각 나 다시는 되돌려놓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p.391~392
세계에는 이름이 없지. …… 우리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이름을 붙이지. 하지만 우리는 이미 길을 잃었기 때문에 이름을 붙이는 거라네. 세계는 결코 잃을 수 없어. 우리가 바로 세계야. 이름과 좌표는 바로 우리 자신의 이름이기에 그걸로는 우리를 구할 수 없어. 우리의 길을 찾아 줄 수도 없고.
p.515
교회 담 너머에서 밤은 철갑상어의 비늘과 깃털로 덮인 천 년 공포를 품고 있었다. 전쟁과 고문과 절망의 가장 극심한 피해자인 아이들 위로 그 공포가 들이닥치지 않았다면 늙은 여인은 이 땅에 계속 존재할 수 없었으리라. 결국 이 잔혹한 역사는 씨앗 염주를 늙은 손으로 움킨 채 몸을 숙여 중얼거리는 이 자그마한 여인으로 헤아려질지니. 단호하고 엄숙하며 무자비한. 바로 그러한 하느님 앞에서.
p.555~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