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0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경을 넘어

코맥 매카시 | 민음사

영혼의 고아는 삶이라는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기어이 영원히 돌아 나올 길 없는

고대의 시선이라는 벽 너머로 가 버린 듯했다.

p.13

돈 드릴로, 토마스 핀천, 필립 로스와 함께 코맥 매카시는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라고 한다. 서부 문학의 셰익스피어로도 불리는 그의 작품을 이번에 국경 삼부작 개정판 중 그 두 번째 이야기 「국경을 넘어」로 만나보게 되었다.

무엇인가 배제된듯한 퉁명스러운 인물들의 대화는 따옴표가 생략된 상태에서 오고 간다. 그래서인지 그가 묘사하는 풍경들과 함께 어우러져 더 잔잔하고 고요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느낌과 달리 한 소년이 경험해야 했던 처절한 모험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끊임없이 잔혹했다.

혹여나 이 소년이 잘못될까 봐 불안한 맘에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불행이 더 이상 없길 바라는 나의 마음을 비웃듯 더 큰 절망이 그에게 안겨진다. 그럴 때마다 울컥함이 계속 자리 잡아갔고, 저자 코맥 매카시가 이 소년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그리고 굳이 주인공을 어린 나이로 설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증이 커져갔다. 그는 끝내 희망을 얻을 수 있었을까?

불가항력적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했던 선택이 아닌, 본인의 자의에 의한 선택으로 인한 결과였기에 더 잔혹했던 그 소년의 이야기, 안타까움이 넘쳐흘렀던 「국경을 넘어」였다. 그리고 여전히 ‘왜?’라는 의문이 계속 메아리친다. 왜? 왜? 왜?...




낯선 땅에 추방당한 자. 집 없는 자, 쫓기는 자. 지친 자.

p.421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미성년자에 속하는 열여섯 살 카우보이 빌리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멕시코로부터 넘어온 늑대를 잡기 위해 덫을 놓다 늑대의 매력에 사로잡히게 되고, 급기야 덫에 걸린 늑대를 멕시코로 돌려보내려고 혼자 국경을 넘어간다. (이때 설마를 얼마나 외쳤던가. 왜 아버지한테 이야기하지 않은 걸까? 왜?)

늑대를 데리고 멕시코 땅에 잘 도착했으나 그곳 목장 사람들이 소년에게 멕시코에 침입한 거라고 이야기하며 늑대를 빼앗아간다. 소년이 고향으로 돌려보내고자 했던 늑대는 투견장으로 보내지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늑대를 지켜봐야만 했던 소년은 결국 늑대를 총을 쏴 제 손으로 죽인다. 비싼 값을 치르고 늑대를 묻어 준 그는 다시 국경을 넘어 집으로 돌아갔으나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더 처참한 현실이었다. (저자님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ᅲᅲ)

인디언의 침입으로 부모님이 살해당하고 이웃집에 살아남은 남동생 보이드를 데리고 빌리는 다시 국경을 넘는다. 인디언이 훔쳐 간 말을 되찾기 위해...

그는 여행을 하며 쓰러져가는 교회에서 사는 남자, 전쟁 중에 눈을 잃은 남자, 집시 등 다양한 어른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이야기로부터 그리고 그들이 소년에게 전하는 충고로부터 답을 구하지 못 했던 걸까? 몇 번을 다시 국경을 건너갔으며 국경을 건널 때마다 더 가혹한 세상을 만났고 소중한 것을 하나씩 잃어갔다.

우에르파노(고아)라 할지라도 방랑을 멈추고 정착할 곳을 구해야 한다고, 이런 식으로 돌아다니다가는 열정에 뿌리박게 될 것이며, 그러한 열정은 소년을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서도 멀어지게 만들 것이라고 노인은 충고했다. 장소가 사람을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람이 장소를 품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장소를 알기 위해서는 그곳에 가서 그곳 라마들의 마음을 보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가지만 말고, 사람들 속에서 살아야 한다고 했다.

p.190

이 나라의 코리도를 유심히 들으렴. 그럼 알게 될 거야. 너의 삶에서 무엇을 대가로 치렀는지도. 많은 사람들은 자기 앞에 무엇이 높여 있는지를 보고 싶어 하지 않지. 너는 보게 될 거야. 길의 모양은 길이야. 길은 다른 길과 같은 것이 아니라 그것만의 유일한 길이지. 길에서 시작된 모든 여행은 언젠가는 끝이 나. 말을 찾든 아니든.

p,328

세상 모든 것 중 유일하게 확실한 한 가지는

세상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는 거라고.

다가올 전쟁이든. 그 무엇이든.

p.493~494

주인공이 미성년자였기에 그의 모험이 더 불안했고 더 무모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더 처참하게 다가왔던 이야기, 더 절망적으로 다가와 끝내는 울컥함만이 남았다.

국경 삼부작은 모두 독립적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이지만 첫 번째 ‘모두 다 예쁜 말들’과 두 번째 ‘국경을 넘어’의 인물이 세 번째인 ‘평원의 도시들’에서 만나는 설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의 국경 삼부작을 다 읽고 나면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지금 나로서는 그 의미를 찾지 못해 의문 가득한 「국경을 넘어」였지만 코맥 매카시의 필력에 흠뻑 빠져 술술 읽히던 책이기도 했다. 언젠가 ‘왜?’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길 바라본다.

앞으로 세계는 크게 변할 거야. 그거 알고 있나?

알아요. 지금도 세계는 크게 변하고 있죠.

p.595

국경을 넘어 개정판, 인상 깊은 글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타라우마라족은 이곳에서 천 년 넘게 물을 길었고, 세상에서 볼만한 것은 이미 대부분 이곳을 지나쳐 간 터였다. 갑옷을 입은 스페인 사람들, 사냥꾼들, 덫사냥꾼들, 귀족들, 귀족의 여인들, 노예들, 도망자들, 군대들, 혁명가들, 죽은 사람들, 죽어 가는 사람들. 그들이 본 사람들은 모두 후세에게 이야기로 전해졌고, 이야기로 전해진 이들은 모두 후세에게 기억되고 있었다.

p.270

인디언들은 칠흑처럼 까맸고, 침묵으로써 일시적이고도 불확실하며 더없이 의심스러운 세계에 대한 속내를 드러냈다. 위험한 휴전 상태라도 관찰하듯 신중한 집중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들은 희망도 미래도 없이 경계 상태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불확실한 얼음 위의 사람들처럼.

p.271

산산조각 나 다시는 되돌려놓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p.391~392

세계에는 이름이 없지. …… 우리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이름을 붙이지. 하지만 우리는 이미 길을 잃었기 때문에 이름을 붙이는 거라네. 세계는 결코 잃을 수 없어. 우리가 바로 세계야. 이름과 좌표는 바로 우리 자신의 이름이기에 그걸로는 우리를 구할 수 없어. 우리의 길을 찾아 줄 수도 없고.

p.515

교회 담 너머에서 밤은 철갑상어의 비늘과 깃털로 덮인 천 년 공포를 품고 있었다. 전쟁과 고문과 절망의 가장 극심한 피해자인 아이들 위로 그 공포가 들이닥치지 않았다면 늙은 여인은 이 땅에 계속 존재할 수 없었으리라. 결국 이 잔혹한 역사는 씨앗 염주를 늙은 손으로 움킨 채 몸을 숙여 중얼거리는 이 자그마한 여인으로 헤아려질지니. 단호하고 엄숙하며 무자비한. 바로 그러한 하느님 앞에서.

p.555~55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