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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1월
평점 :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이수태 에세이 | 다산북스
사건의 발단은 내가 복무하던 논산훈련소의 모 중대에서 화장실 유리창 하나가 분실된 데에서 일어났다. 이 뒤처리를 다른 중대의 화장실 유리창을 밤에 몰래 뽑아다가 박아놓은 것으로 처리했던 것이다. <중략> 자, 그다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도난을 당한 중대에는 비상이 떨어졌다. 밤에 보초근무를 섰던 기간병이나 훈련병들은 기합을 받았고 즉시 원상복구를 위한 '특공대'가 조직되었다. 그러면 그다음 날은 건너편에 있는 다른 중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갔다.
어느 중대가 당했다더라는 이야기나 어느 중대에서는 대낮에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작전이 성공했는데 선임하사가 직접 작전을 진두지휘했다더라 하는 이 스릴 넘치는 이야기는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의 '작은 손해를 감수하는 일'에 실린 에피소드이다. 화장실 유리창 하나가 분실된 이 사건의 발단은 아주 사소했으나 점점 이야기의 스케일은 커진다. 어떻게 하면 적으로부터 자신의 중대 창문을 지킬 것인가 하는 게임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흥미진진했던 이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될지 정말 궁금했다.
그런데 정말 생각보다 쉬운 방법으로 6중대 6중대장에 의해서 사건이 마무리된다. 아마 몇몇 중대장이 왜 자신도 그처럼 남다른 발상을 하지 못했는지 후회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을 거라는 저자의 말 따라 나 또한 6중대장의 발상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가 치렀던 '작은 손해'가 다른 모든 중대장과 뚜렷이 구분되는 행동으로 사병들에게 특별한 인물이 되게 하였다면 나에겐 정신 차리라며 뒤통수를 한대 치는 이야기였다. 정말 '내가 공연히 손해 볼 수는 없다'라는 일념이 한 발자국 양보함으로써 생기는 더 값진 것을 잊고 살게 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는 목차에서 볼 수 있듯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길지 않게 담겨있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저자의 평범한 삶이 담긴 인문 에세이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며 그의 삶의 일부분을 통해 나의 삶의 일부분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저자와 함께 추억여행을 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아마도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던 글들이 많아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3부의 논어 주제가 실렸을 땐 뭔가 아쉬웠다. 저자의 다른 에피소드가 더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3부의 논어를 통해 수없이 들어왔던 '논어'와 '공자'에 대해 맛보기를 할 수 있어 좋긴 했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니!
각 장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만나볼 수 있는 풍경 그림, 정말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과 함께 제목에서 주던 부정적이고 어려운 느낌이 싸악 씻겨내려가기 기분이었다.
저자의 '간소한 생활에의 꿈'편에선 식당에서 홀로 있으며 식생활로 흐른 생각이 종교의식으로 그리고 자신이 미래에 다시 보게 될 잃어버린 성소나 제단의 흔적으로 확장되어 가는 이야기가 신기했다.
'나의 초라한 반자본주의' 편에선 컴퓨터로 인터넷 세상까지 기웃거리며 세상의 변화와 문명의 이기를 줄레줄레 따라가고 있지만 아직 핸드폰은 없다며 버티는 데 까지는 버티어보려 한다며 이것이 본인의 초라한 반자본주의라고 이야기하는 저자를 응원했다.
'고향이라는 허물'편에서는 그의 이야기에 따라 나 또한 고향을 떠올려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자란 만큼 폭이 좁아졌던 골목길과 담벼락을 보며 이곳이 이렇게 작았었나 하는 생각, 예전에 있던 가게가 사라졌을 땐 나의 추억을 도난당한듯한 기묘한 기분 등 나의 낡은 기억 아래에 묻히고 만 고향을 떠올릴 수 있어 좋았다.
'이사 유감'편에서는 우리가 거대한 '……척(pretend)' 속에 살고 있으며 너무 오래 척하느라 척한다는 사실마저 잊을 지경이 된 것이 바로 이 자본의 밤이라 이야기를 통해 정말 파괴와 착취와 살육의 현장에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했다.
'고요한 시간'편에서 주는 그 고요함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차 소리 각종 기계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이 소란한 세상 속에서 벗어나 완전한 고요가 주는 그 여유로움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더라?! 시골에 계시던 할머니 댁을 찾아 그저 멍~하니 산들바람이 불어오며 끝없이 이어지던 논과 밭이 있던 그 고요한 시간을, 그 여유로움을 느꼈던 그때가 그리우면서 이제는 그곳을 다시 가볼 수 없다는 생각에 울컥하기도 하다.
이렇게 저자의 소소하면서도 평범한 삶을 따라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나의 삶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었다. 정말 제대로 된 추억여행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더없이 즐거웠다. 그리고 논어 편에서는 묻는다. 저자가 공자에게 말하던 부분이었지만 나에게도 묻는듯했던 말, 이젠 그 답을 찾아볼 시간.
너는 무엇을 하느라 네 일생을 허비하였느냐?
머리는 왜 그리 희었으며
지금 그 늦은 나이에 아직도 무엇을 찾겠다고
서성거리고 있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