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을 잘 때 문쪽과 북쪽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잔다. 그래서 항상 새로운 장소 가게 되면 꼭 북쪽이 어느 쪽인지 체크를 하고 베개를 둔다. 언제, 누구로부터 들어왔는지도 모를 그 이야기를,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자면 안 좋다는 말만 듣고서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손 없는 날에 이사를 해야 좋다는 이야기처럼.
그런데 이 이야기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에서 언급된다. 그리고 내가 행해왔던 그 행동에 대한 이유가 자세히 나오는데, 그때의 놀라움과 오싹함이란! 아... 왠지 앞으로 더 북쪽으로 머리를 두고 잠들지 못할 거 같다.
내가 멋모르고 행했던 행동에 '죽음'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나로서는 생각보다 많은 곳에 '죽음'이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전 소소하게 읽고 있는 로맨스 소설의 소재만 보아도 그렇다. 어느 시점으로 회귀를 한다거나 본래의 자신은 죽고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 생활하는 이야기가 요즘 많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 이야기도 책에 있다! 그것도 무려 삼국유사 "대성효이세부모신문대"와 "선율환생"의 이야기이다. 사람의 영혼이 다른 육신을 새로이 얻게 되는 대성의 이야기는 '자유혼의 전이'이고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그 본래의 육신으로 되돌아오는 선율의 이야기는 '자유혼의 반환'이라고 한다. 와~ 이 이야기를 또 이렇게 만날 줄은!!
그러고 보면 우리는 오히려 사람 목숨과 직접 관계가 없는 경우에 심하게 죽음을 남용하기도 했다. '나무가 죽는다', '목이 말라죽겠다.', '배가 고파 죽겠다.', '기가 죽는다' 등 과장법이 더해진 표현들을 서슴지 않고 사용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죽음'은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이 책 제목에 들어간 '죽음'이라는 글자를 보고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으니... 아마 서평단의 책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외면했을 '죽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삶과 알게 모르게 함께하고 있는 떼야 뗄 수 없는 '죽음'.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외면하려고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