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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2 ㅣ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평점 :
인간들은
이 세상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오.
세상은 그들 이전에도 존재했고
그들 이후에도 여전히 존재할 것이니까.
문명 1권에 이어 들어간 2권에선 바스테트가 제3의 눈을 가지고 난 후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평소 집사 나탈리와 소통을 하고 싶어 했던 바스테트의 바램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둘이 이야기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면서도 자신이 위라고 여전히 생각하며 자신의 아래로 나탈리를 대하는 장면에선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인류가 약해진 틈을 타 광신도 주의자가 인터넷을 먹통으로 만들고 대량 살상 무기를 비롯한 각종 무기 제조법이 들어 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지식 저장 장치인 USB를 훔쳐 달아난다. 그 USB를 찾는 과정에서 돼지에게 끌려가게 된 나탈리와 로망 그리고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는 제3의 눈을 가진 돼지 왕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주도하에 인간에 대한 재판이 열리고 배심원이 갖추어진 재판장에서 서로의 변호인들의 변론이 시작된다.
돼지 측의 변호인이 인간이 먹기 위해 매년 7백억 마리의 동물이 죽어갔다는 말과 함께 이를 증명할 수많은 증거물을 보여준다. 그리고 급기야 투우로 내몰렸던 소와 좁은 사육장에 갇혀지내야만 했던 멧돼지를 증거인으로 앞세운다. 그에 맞서 열심히 반론하는 인간 측 변호인이지만 재판은 점점 나탈리와 로망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들은 자신을 벌하려는 동물들로부터 무사할 수 있을까? 더 나아가 쥐 무리로부터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문명 1권에 이어 2권에서도 흥미로운 백과사전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그중 인간 재판에 이어 나오는 ‘프랑스 동물 재판의 역사’라는 주제가 기억에 남는다.
프랑스에서는 중세 시대부터 숱한 동물 재판이 열렸다고 한다. 그중 가장 많이 심판대에 오른 동물은 돼지였고 마녀재판을 받는 인간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고문을 받았다. 그 이외 수확한 곡식을 망친 바구미, 죽은 사람 귀에서 나온 파리, 국왕 만세를 외친 앵무새 등 다양한 동물 재판 사례가 근래까지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그들에게 반론 기회도 주지 않은 재판이 과연 재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쥐 무리에 대적하기도 바쁜 그들에게 계속 등장하는 적들. 그 와중에 제3의 눈을 가진 동물들도 끊임없이 나온다. 나중에는 ‘또?!’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그만큼 실험실에서 인간으로부터 실험을 당해온 동물이 많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방증이 아닐까 싶어 씁쓸해졌다.
바스테트가 나탈리를 통해 유머를 알게 되고 예술의 개념에 가까워지며 조금씩 진화해 나가면서 사랑과 연민 등 다양한 감정을 배워가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만날 수 있었던 문명 2권. 고양이의 시점에서 그리고 다양한 동물들의 시점에서 보는 이야기가 참신하게 다가오면서 내 주위를 둘러보게 하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쥐 무리를 피해 새로운 곳에서 희망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려고 할 때마다 끈질기게 나타나던 그들! 꼭 지금의 코로나19 상황이 보이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바스테트가 마지막에 나탈리에게 인간의 세계가 끝이 났다며 이제 고양이의 역사, 그들만의 문명을 시작할 거라고 말했던 부분이 유독 더 기억에 남았다.
'정말로 그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했던 문명. 동물실험, 전염병 그리고 전쟁 등 이 모든 것이 다음 편에서 어떻게 풀려 해결되어질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본다.
인간 세계에는 아이러니하게도 뛰어난 지능과 엄청난 어리석음이 공존한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능력은 때때로 득이 아니라 독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설마 수컷이 아니라 암컷들에게만 독이 되는 건 아니겠지.
하나의 진실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왔다. 사물을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고 적응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진실을 고정불변으로 여겨선 안 된다고, 그래야 정신에 순통이 트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