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큘라 허밍버드 클래식 M 6
브램 스토커 지음, 김하나 옮김 / 허밍버드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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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 속의 드라큘라는, 어릴 적 보았던 만화 속 코믹스러운 드라큘라 아니면 조금 더 커서 만났던 브래드 피트의 모습이었다. 후자의 모습이 더 강렬하게 남아있던 드라큘라는 젊은 모습으로 영생을 살며 귀족처럼 고귀하며 누구나 홀릴듯한 외모의 드라큘라였다. 그런데 허밍버드 클래식 M 시리즈의 드라큘라의 외양은 그렇지 않다. 그때의 충격이란! 아니 왜?! 원래 드라큘라는 이랬단 말인가?!(이래서 원작 소설을 읽어야 하나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작가의 큰 그림이었다는 걸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면서 깨닫게 된다.

초반의 몰입감 정말 최고다. 모든 것이 의문스럽고 의문스럽고 의문스럽다. 그리고 그 의문스러움에 으스스함이 느껴지며 긴박한 상황이 아님에도 긴박한 상황처럼 느껴진다. 어떠한 공포스러운 상황이 아님에도 오싹함이 느껴지는 분위기! 와~ 이 소설 뭐지?!(입틀막!)



내 집을 방문한 그대를 환영하오.

그대의 뜻에 따라 자유롭게 들어와 지내다가

무탈하게 귀향하길 바라오.

다만 이곳을 떠나기 전에 그대가 가져온 행복을

조금 나눠주고 갔으면 한다오!

p.40

통풍으로 고역을 치르는 피터 호킨스 대리인으로 드라큘라 백작의 런던 부동산 매입 상담을 위해 길을 나선 조너선 하커, 그가 백작의 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기차를 타고 도착한 호텔, 그곳 주인이 드라큘라의 편지를 조너선 하커에게 전해주며 그곳을 꼭 가야 하냐고 묻는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가서 무슨 일을 할지 알고 있냐고 물으며 급기야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가지 말라 애원까지 하던 그들의 불안감이 나에게도 전해져 왔다.

자신을 데리러 온 마차를 갈아타고 가는 어둠 속 길, 같은 길을 반복해서 가는 듯하나 마부에게 물어보지도 못한다. 자정이 가까워오자 멀리서 들려오는 개의 울부짖음과 늑대의 울음소리, 그 상황에서 마부마저 자리를 뜨고 달빛에 비추어진 곳에 보이던 늑대들. 정신을 잃고 차리기를 반복하다 폐허와 같은 성에 도착한다. 깎아지른 절벽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성, 보이는 창문 밖은 돌을 떨어뜨리면 족히 300미터는 떨어질 거 같고 문은 잠기고 빗장이 걸려있는 문, 문, 문들뿐이다. 백작은 잠겨있는 문은 열지 말라며 서재와 침실, 식당을 제외한 어느 곳에선 잠들면 절대 안 된다고 묘한 경고도 하는데, 문젠 이 모든 것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 그가 성에서 지내며 느끼는 의문스러움과 불안감, 오싹함이 점점 극에 달한다.

이 성이야말로 감옥이고,

나는 이곳에 갇혔다!

p.61





일기와 편지의 기록 형식으로 진행되는 드라큘라 이야기. 조너선 하커의 약혼자 미나의 벗 루시가 드라큘라 백작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과정에서 그의 존재를 알게 된 반 헬싱 박사와 존 수어드 박사, 모리스 씨. 그들의 이야기가 조너선 하커가 경험한 상황과 자연스럽게 맞물리며 자연스럽게 중후반부 이야기가 시작된다.

거울에 비치 지지도 않고, 뭘 먹거나 마시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 드라큘라 백작. 그는 박쥐로도 변신 가능하고 직접 손을 대지 않고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급기야 안개를 만들어 그 속에 몸을 숨길 수도 있고 몸을 아주 작게 만들 수도 있다. 한번 가 본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그는 문을 잠그고 아무리 틈을 메워도 소용없으며 어둠 속에서도 앞을 볼 수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무한한 생을 사는 영생의 존재, 약점이 존재하긴 하나 그에 비하면 한없이 약할 거 같은 존재 그들이 드라큘라에 맞서서 이길 수 있을까? 이긴다면 과연 어떠한 방법으로 이길지 그 궁금증이 후반부를 끌고 나갈 수 있게 해준 힘이 되었다.

공포의 공도 못 꺼내는 내가 하커 씨의 상황이었다면 정말 매일 아니 매시간 신을 찾으며 애걸했을지도 모르겠다.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엮여있는 이야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서도 하나를 가리키고 있던 그 긴박감이 좋았다. 그리고 드라큘라를 자신만 아는 타고난 범죄자로 보고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법도 신선했다. 하지만 드라큘라 시점을 볼 수 없었던 아쉬움과 초반에 비해 약간은 허무한 듯한 그에 대한 능력들의 결과가 조금은 아쉽게 다가온다.

초반의 휘몰아침이 아주 고요하게 끝이 났다. 800페이지가 넘는 책이었지만 읽는 내내 길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거 같다. 다 읽고 나서 보게 된 마지막 책 뒤편에 적힌 문구가 유독 와닿는다.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많아.

우리 인간들은 그저 짐작만 할 따름이지.

세월이 흐르면서 그 비밀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런 건 극히 일부일 뿐이야.

드라큘라, 인상 깊은 글귀

젊은 친구, 조언 하나만 하겠소. 아니, 진지하게 경고하겠소. 이 방에서 나간다고 해도 여기, 서재와 침실, 식당을 제외한 성안의 다른 곳에서 잠들면 절대 안 되오.

74

두렵다. 말도 못 하게 두렵다. 달아날 구멍도 없다. 상상도 못할 무시무시한 것들이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다.

p.77

백작은 포만감에 늘어진, 역겨운 거머리 같았다.

p.112

잠들기가 무섭다니요! 이유가 뭐죠? 잠이야말로 누구나 갈망하는 요긴한 것인데요.

아, 박사님은 몰라요. 저에게 잠이란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들려오는 전주곡 같아요.

p.270

그녀는 잠들었을 때 죽은 것 같았고,

죽었을 땐 잠든 것 같았노라.

p.348

그대는 이제 내 살 중의 살이며, 피 중의 피이고, 수족 중의 수족이니라. 당분간은 내 그대에게서 포도주를 넉넉히 취하리니, 훗날 그대는 나의 조력자로서 나와 나란히 나아가리라.

p.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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