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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4월
평점 :
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Ι 김남주 옮김 Ι 민음사
너희 중 아무도 미국에 갈 수 없고,
너희 중 아무도 영화배우가 될 수 없다.
또 일전에 누군가가 슈퍼마켓에서
일하겠다고 얘기하는 걸 들었는데,
너희 중 아무도 그럴 수 없어.
너희 삶은 이미 정해져 있단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앞날이 정해져 있다면 어떨까? 그 앞날에 대해 세상과 단절된 채 무의식적으로 계속 교육을 받게 된다면 자신의 생명을 잃게 되는 기증도 당연한 삶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일까?!
너무 당연해서 의문조차 가지지 않고 당연하게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는 그들의 일상도 우리와 다를 게 하나 없다. 단지 기증과 간병사, 그리고 클론과 근원자 등과 같은 평범하지 않은 단어가 그들의 생활 속에 숨 쉬듯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을 뿐...
기증을 시작할 때가 되면 정말이지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말하는 그들을 보며 내가 생각하는 그 기증이 맞나 싶었을 정도로 너무 담담해서 그래서 더 먹먹하고 가슴 아팠던 이야기였다.
「나를 보내지 마」는 총 3부로 진행된다. 1부에선 현재 간병사로 살아가고 있는 캐시가 유년기를 보냈던 헤일셤의 생활을 회상하는 이야기가, 2부에선 헤일셤을 떠나 잠시 머무르는 코티지에서의 생활이, 3부에선 간병사나 기증자로서의 삶이 그려진다. 외부와는 차단된 기숙학교에서 그림도 그리고 수업도 받으며 어느 10대와 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캐시, 루스, 토미 그들의 꿈과 사랑 그리고 성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한편의 성장 소설을 보는 듯하다.
수업을 통해 은연중 아이들에게 기증에 대해 심으면서 아이들의 앞날에 대한 기본 사항을 아이들 머릿속에 교묘한 방법으로 집어넣는다. 들었으되 듣지 못한 상태가 된 그들은 오직 장기 이식을 위한 존재로 키워지며, 중년이 되기 전 장기기증을 하기 위해 태어난 그들이었기에 자신이 원하는 일도 다른 나라로 가는 것도 할 수 없는 이미 정해진 삶을 살아간다.
기증을 할 때가 오면 마치 기증 로봇이 된 것처럼 자신이 죽기 전까지 계속 기증을 한다. 첫 번째 기증이 끝나고 건강해지면 두 번째 기증을, 그리고 또 건강해지면 세 번째 기증을... 기증이 기술적으로 끝이 나더라도 의식은 남아 그들이 스위치를 끌 때까지 기증이 연달아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지는 그들.
마치 왔다가 가 버리는 유행과도 같군요.
우리에겐 단 한 번밖에 없는 삶인데 말이에요.
조금이나마 자신의 수명을 늘려보고자 찾아온 캐시와 토미에게 오히려 이전 클론들보다 훨씬 나은 조건에서 살 수 있게 해준 자신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당당히 말하던 에밀리 선생님, 진심이신가요?? 온전히 자신들의 이기심으로 만든 존재이면서 그 존재를 꺼려 하고 숨기고 그들을 오직 인간 이하의 열등한 존재라 생각하며 외면하는 모습을 보일때면 인간의 민낯을 보는 듯했다.
'인간 복제'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는 책이지만 화려한 미사여구 하나 없이 그저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그려진다. 그 일상을 통해 그들 또한 감정과 이성 그리고 꿈을 가지고 살아가는 한 생명체라고 끊임없이 이야기 하는거 같았다. 그리고 가즈오 이시구로 저자 특유의 담백한 문체가 독자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만들며 노래 제목 'Never let me go'에서 가져온 이 책 제목이 '제발 나를 보내지 말아달라'는 처절한 외침으로 들려왔다.
불치병이라고 생각했던 병들이 기증으로 인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이 과연 이 방법을 알기 전 과거로 다시 돌아가려고 할까? 과연 나는? 당신의 선택은? 미래에 정말 이런 일이, 아니 지금도 어디선가 이런 일이 일어나고만 있는거 같아 무섭다.
인간의 욕망의 끝은 어디인지, 과연 끝이 존재하긴 하는 건지 「나를 보내지 마」를 통해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인간복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
가즈오 이시구로 리커버, 나를 보내지 마
나를 보내지 마 가즈오 이시구로 리커버 Ι 민음사
어떻게 알 수 있었겠어? 어떻게 그가 크리시의 느낌을 알 수 있었겠느냐고? 그녀가 원한 게 어떤 거였을지 말이야. 수술대 위에서 삶에 매달렸던 사람은 그가 아니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가 그 느낌을 알 수 있겠어?
"결국 그건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잖아, 안 그래?"
여깁니다, 보세요! 이 작품 좀 보시라고요! 이런 아이들을 두고 어떻게 인간 이하의 열등한 존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