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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21년 4월
평점 :
이쁜 옷으로 갈아입은 「녹턴」 리커버 개정판! 화사한 색감의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연이어 눈에 들어오는 피아노 일러스트와 18세기의 세레나데와 같은 뜻으로도 쓰인 '녹턴' 제목 모든 것이 잘 맞아떨어진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녹턴」에는 음악과 세월에 대한 다섯 가지 단편 소설이 담겨있다. 호흡이 짧은 단편 소설이라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 못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에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 책이다. 이 작가, 옆에 앉혀 놓고 이야기해보고 싶다. 어떻게 생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가 하나도 없냐고 ㅋㅋㅋㅋ
읽는 이야기마다 어떻게 진행이 되고 끝이 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아 설마 큰일 나는 거 아니겠지라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게 되는 묘한 소설, 그러다 툭 던져주듯 주던 반전들! 특히 네 번째 이야기 '녹턴'에서는 대박!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며 소름이 끼친 장면까지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도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 젖게 만든다.
어머니가 좋아하던 가수 토니 가드너를 공연 중 관객 속에서 만나 그의 세레나데를 위해 연주를 하게 되는 첫 번째 이야기 ‘크루너’
한때 같은 노래를 좋아하고 잘 맞는 취향을 가진 친구 에밀리와 레이먼드 그리고 레이의 친한 친구 찰리. 중년이 된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 두 번째 이야기 '비가 오나 해가 뜨나'
프로 뮤지션을 꿈꾸는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주인공이 휴식차 들린 곳에서 뮤지션 부부를 만나 음악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세 번째 이야기 '몰번힐스'
실력은 있지만 '실패자형 추남'이라는 외모 때문에 성공을 못한다는 매니저의 꼬임에 넘어가 성형을 하게 되는 네 번째 이야기 '녹턴'
런던 왕립 음악원에서 공부한 티보르가 스스로 첼로의 대가라고 자처하는 중년 여성을 만나며 변해가는 마지막 이야기 '첼리스트'
음악과 인생에 관한 다섯 가지 단편 소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두 번째 이야기 '비가 오나 해가 뜨나'와 네 번째 이야기 '녹턴'이다.
“징징이 왕자 도착에 맞춰 포도주를 살 것.”
두 번째 이야기 '비가 오나 해가 뜨나'
영어 강사 레이먼드가 휴가를 보내기 위해 대학교 동창 커플 에밀리와 찰리의 집을 방문하게 된다. 자신을 초대해놓고 찰리는 출장을 가야 한다며 에밀리와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으니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에밀리의 기분을 잘 풀어달라고 부탁하고 떠난다. 그런데 에밀리조차 그를 달갑지 않아 한다.
외롭고 낯선 이국땅에서 지독한 세월을 보내면서도 그 친구들을 생각하며 버틸 수 있었던 레이였는데, 에밀리는 레이를 징징이 왕자라고 수첩에 적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마흔일곱이 된 그에게 왜 아직 그 일을 하고 있냐며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한다. 찰리는 유일하게 에밀리가 레이의 음악적 취향이 훌륭하다고 생각하니 그 주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말고 평소대로 행동해 자신(찰리)을 멋진 남자로 느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들이 레이에게 하는 행동과 말이 나를 욱하게 만들었다. 과연 이들을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한때 같은 열정을 공유한 친구가 맞는지, 읽을수록 씁쓸해지는 이야기였다.
“없지! 내겐 해 줄 조언 같은 건 없어!” 그는 또다시 악을 쓰고 있었다. “자네가 생각해 내! 자네는 자네 비행기를, 나는 내 비행기를 타는 거지. 어떤 게 추락하는지 두고 보자고!”
“이제 나는 나 자신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 깨달았어.
이건 실수야. 나 자신을 좀 더 존중했어야 했어.”
가장 기억에 남는 네 번째 이야기 '녹턴'
크게 성공할 자질이 있다고, 그저 세션 연주자로서 성공하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스타가 될 자질이 있다고 듣는 스티브이지만 외모가 '실패자형 추남'으로 평가된다. 실력은 있지만 외모가 되지 못해 성공을 못한다는 매니저의 말에 아내 헬렌도 동의를 하고 결국은 성형을 하게 된다. 그것도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떠나며 그 남자가 보상이라며 준 수술비와 회복 비용으로 말이다.
그곳에서 첫 번째 이야기에 나왔던 토니 가드너의 아내 린디를 만나게 되고, 서로 얼굴에 붕대를 한 채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된다. 서로의 인생과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스티브의 음악을 듣게 된 그녀, 그가 재능이 있다며 그를 유명인에게 소개해 주겠다고 약속하지만 남은 회복 기간을 집에서 보내겠다며 퇴원을 해버린다.
성형 후 달라진 서로의 모습도 보지 못한 채 헤어진 그들, 둘은 성형에 성공했을까? 성형을 하고 자신을 조금 더 존중했어야 했다며 후회하던 그, 스티브는 성공을 하게 되었을까? 성형만 하면 그의 성공을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라고 말한다. 정말?
요즘 중요한 것은 재능이 아닌 것 같다. 이미지, 마케팅 능력, 잡지에 기사가 실린다거나 텔레비전 쇼에 출연한다거나 파티에 참석하는 것, 누구와 점심을 먹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에 염증이 난다. 나는 뮤지션이다. 어째서 이런 게임에 동조해야 하는가? 어째서 내가 아는 최고의 방식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것으로 부족하단 말인가?
“내 음악으로 인한 게 아니라면 그 어떤 문도 열리기를 바라지 않아.”
아내 헬렌이 자신을 떠나 같이 살겠다고 말한 크리스 프렌더가스트는 자신의 집에서 저녁 식사도 두어 차례 한 적 있던 헬렌의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 온 친구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매니저 브래들리가 던진 한마디가 정말 충격적이었다.
“자네 골방의 방음 장치 말이야. 그게 골방의 소리만 막아 주는 건 아니야.”
작가님, 저에게 왜 이러세요. ㅜㅜ 위에서 한참을 뮤지션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놓고 이렇게 툭! 던지시다니요! 이런 소름 이런 소름도 없습니다! 대박이라고 절로 나왔던 부분!
가즈오 이시구로 리커버 개정판 시리즈 중 제일 먼저 읽었던 「녹턴」 그저 책등에 적힌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라는 말에 반해서였다. 뭔가 감동적인 이야기가 가득할 거 같았다고 할까나?!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내가 생각했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고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진행되더니 끝도 열려있는 결말이다. 책을 읽을수록 혼란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그런데 그 혼란이 책을 펼치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 읽게 만들었으니 참으로 신기하다.ㅎㅎㅎ 무엇보다 다 읽고 나서 다른 책들은 어떠할지 너무 궁금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확실히 가즈오 이시구로 작가! 뭔가 색다른 매력이 있다. 그래서 다음 책이 더 기대가 된다. 어떤 색다른 세상을 보여줄지...^^
"사람이란 그리 다르지 않아요. 은행 간부든 뮤지션이든 우리 모두가 결국 삶에서 바라는 건 같아요.”
“더 이상 내 음악을 믿지 않게 된다면 난 음악을 그만둘 겁니다. …… 나는 진심으로 프로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틀림없이 멋진 삶이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