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가위손 - 공포의 서사, 선망의 서사
도정일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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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사책방시리즈 7권 중 무려 3권이 도정일 저자의 책이다. 그중 한 권인 「보이지 않는 가위손」은 책 제목만 보아서는 전혀 내용이 짐작되지 않았을뿐더러 ‘공포의 서사, 선망의 서사’라는 글자에선 위압감마저 느껴졌다. 책머리에 적힌 내용과 목차를 보고 나서야 내용을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었던 책, 처음 접하는 인문학 에세이였던 만큼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읽기 시작했다.

도정일 저자는 치열하게 달려왔던 100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가 겪었던 일을 돌아보고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점검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정말 지금 사회가 민주주의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냐고 물어온다.




나는 구매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p.11

이 새로운 물건을 아느냐고 광고에서 넌지시 던지는 메시지는 ‘나는 이 새로운 물건을 갖고 있는가?’라는 내면화된 질문으로 이어지고 구매력과 소유, 소비의 능력 유무가 개인들의 자기 이미지를 좌우하는 평가체제로 변한다.

고용불안과 비정규직의 일반화, 항시적인 실직의 위험 등의 불안과 두려움이 주는 ‘공포의 문화’와 높은 연봉과 물질적 성공을 자랑하는 사람들을 치켜세우는 ‘선망의 문화’가 공존하는 사회 속에서 ‘나도 뒤처질 수 없다’는 강박에 짓눌러 ‘성공 서사’를 뒤쫓기 급급하다.

누가 돈을 경멸할 수 있을까? 물질적 빈곤에서 벗어나 인간의 품위와 자유를 주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돈이 전부인 양, 돈이면 다 된다는 분위기가 은연중에 깔려있다. 이런 돈밖에 모르는 사회를 인문학은 경멸하고 돈에 미친 사회를 우려한다고



돈 안되는 학과·학문은 사라져야 한다.

…… 인문학이 밥 먹어주냐?

p.124

많은 사람들이 ‘인성 교육’이 중요하다고 입이 아프게 이야기한다. ‘인성을 갖춘 젊은 일꾼’을 구한다는 채용공고까지 낸다. 그런데 돈이 되고, 취업이 잘 되는 학문과 학과만이 살아남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들조차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인력 공급’을 대학에 요구하니 사실상 돈 버는 인간의 생산인 것이다. 또한 자라는 세대에게 광고 메시지로 오락, 소비문화, 일확천금의 성공담, 손쉬운 돈벌이 같은 것들 말고 어떤 의미 있는 가치의 틀도 지금 우리 사회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다’라는 학생 주인론, ‘고객이 왕이다’처럼 학생은 왕이고 주인이며 교수는 그 주인에게 고용된 자이고 대학은 고객으로서의 학생을 왕으로 대접해야 하는 곳으로 변해가는 사회, 돈 안 되는 것은 필요 없는 사회, 무한 경쟁 시대에서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일까? 가정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인문적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육이 더없이 필요하다.

잘 사는 나라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이 살 만한 나라’이고, ‘국민이 사랑하는 나라’이며,

국민된 것을 자랑할 수 있는 ‘고품질사회’이다.

p.387

인문학 에세이를 처음 접했던 나로서는 「보이지 않는 가위손」이 어렵게 다가왔지만 지금 현재의 사회와 인문학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돈 이상으로 중요한 가치들이 분명 있다. “그 사람이 하는 일(직업)이 뭐야?(그가 얼마 벌지?)”가 아니라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라고 물으며 조금은 더 내면을 탐구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독일 비평가 요셉 헬러가 인문학을 '내부를 향한 여행'이라 표현했듯 자신 그대로를 탐구의 중심에 두고 알아가는 여행을 꼭 해보았으면 좋겠다.

만물이 새봄에 갱신하듯 사회도 주기적으로 갱신하며 시장논리 하나로 제단 되는 사회에서 성장하는 세대가 무엇을 배우고 교육은 돈 이외의 무엇을 목표로 삼을 것인지 다 함께 생각하고 생각하며 조금은 더 사람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



역사를 망각하는 자는 같은 역사를 되풀이한다.

p.265

"역사를 기억하라, 그리고 그로부터 배우라”는 이 오래된 충고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역사로부터 잘 배우지 않는다. 인간은 기억하는 동물이면서 동시에 망각하는 동물이다.

p.273

기억은 과거를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 망각도 그러하다. 비판력의 마비일 때 망각은 죽음의 책략이 된다. 그러나 기억과 마찬가지로 망각도 건강한 현재를 위해 필요하며, 이 경우에만 망각은 유용성을 갖는다.

p.277

우리가 기억하고 보존할 것과 잊어버려야 할 것이 있다. 현명한 변화는 기억과 망각의 변증법적 사유를 요구한다. 우리의 젊은 지성들에게 그 상유가 지금처럼 절실한 때도 없다.

p.285

고전이란 이처럼 ‘읽기의 역사’를 축적하게 하는 책입니다. 내가 읽은 역사, 남들이 읽은 역사가 축적되고 거기서 생각이 자라지요.

p.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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