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 특별 합본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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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읽는다는 것은

내 마음속 신전을 찾는 일

국민 신화 책으로 불리오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 특별합본판>은 다섯 권 시리즈 출간 20주년을 기념하고 이윤기 작가의 타계 10주기를 기르기 위해 시리즈 다섯 권이 한 권으로 묶여 나온 특별 합본판으로 1200쪽의 벽돌책이다. 처음에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리꿍도서로 올라왔을 때 책의 분량에 놀라 신청하지 않으려 했다가 재미있다는 압도적인 댓글로 인해 신청을 하게 되었고, 리꿍 새임님과 함께 읽어내려가기 시작했으며 3주에 걸쳐 완독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책을 단 1도 읽지 않은 신화 신생아인 나에게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세계에 푹 빠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나에게 정말 재미있다고 주위에, 그리고 둥이들에게도 읽어보지 않겠냐고 권하기 바쁘게 만들었다.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서' 1장부터 흡입력이 상당해 다음날 출근만 안 했다면 그 자리에서 다 읽고 자고 싶을 만큼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책이었다. 정말 그 신청이 신의 한 수가 되는 순간이다.

미궁은 거기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신화도 그 의미를 읽으려고 애쓰지 않는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뜻에서 신화는 미궁과 같다. …… 필자의 해석은 필자의 실타래이지 독자를 위한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는 아니다. 모쪼록 독자가 나름대로 지니고 있는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로써 미궁 진입과 미궁 탈출을 시도해보기 바란다. …… 테세우스의 아리아드네가 아닌 '나'의 아리아드네를 만나야 하지 않겠는가? 독자는 지금 신화라는 이름의 자전거 타기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라. 일단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기 바란다. 필자가 뒤에서 짐받이를 잡고 따라가겠다.

p.15~17




처음 읽을 때는 제대로 읽어보겠다고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하며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신들이 끝없이 등장한다. 결국 정리를 포기하고 즐겨 읽는 거에 의의를 두며 읽었다.

외짝 신 사나이를 뜻하는 모노산달로스에 관한 신화 이야기가 신델렐라, 콩쥐팥쥐, 달마대사에까지 확장되어 이야기되는 부분에서는 절로 감탄사가 나왔고 신화나 전설에 신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는 사실은 흥미로웠다. 우리가 어딘가에 취업하려고 나의 지나온 역사를 한 장의 종이에다가 쓰는 이력서가 신발(履) 끌고 온 역사(歷) 기록(書)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정말 신발이 우리에게, 그리스인들에게 무엇을 의미했던 걸까?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이 신화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이윤기 작가님,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다보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되면서 '나는 그동안 무엇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라는 의문과 반성을 하게 만들었다. 왜 이제야 이 책을 만난 건지... 아니 지금이라도 만나서 다행인 건가?!^^

낯선 신들의 이름의 등장부터 내가 잘 알고 있는 올륌포스의 신들까지 한 명 한 명에 관한 이야기가 5권을 통해서 눈앞에 그려지듯 펼쳐진다.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던 신은 여장했던 신들과 사랑의 여신 비너스와 헤라클레스이다. 사랑의 여신으로만 기억되었던 비너스, 아프로디테의 수많은 별명 중 하나가 '아프로디테 포르네'로 '음란한 아프로디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니 왠지 모르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의 무지에서 오는 배신감이니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다.

여장겸험을 한 신으로는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아킬레우스가 있다. 그중 압권은 헤라클레스인듯하다. 그 몸에 여장을 하고 경호병이 다가오면 교성을 지르며 돌기둥 뒤로 숨는 것이 무료할 때마다 하는 짓이었다는 헤라클레스라니 정말 상상할 수가 없다. 이렇게 2권에서 나에게 웃음을 주었던 나에게 영웅으로 기억되었던 헤라클레스는 4권에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 가족들과 술을 마시던 중 헤라로부터 급파된 '뤼사(발광')로 인해 자신의 손으로 자식과 아내를 죽이게 된 헤라클레스는 죄를 씻기 위해 아르고스의 지배자를 찾아가 1신년 반(12연) 동안 종살이를 해야만 했다. 술을 마시고 뤼사로 인해 살인을 저질러 죄를 씻는 중에도 술을 계속 마시며 본인의 의사가 아녔다지만 또 다른 죄를 반복해서 짓는다. 죄를 씻으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기대했던 헤라클레스의 반복된 그 모습에서 음주운전한 사람이 생각났다.

우리 민담과는 달리 그리스 신화는 '잘 먹고 잘 살았다'로 끝나는 법이 거의 없다고 한다. 뒤를 절대로 돌아보지 말라고 하면 뒤를 돌아봐 비극으로 끝나듯 '절대로'라는 말이 등장하면 설마...라는 예상이 항상 맞게 비극으로 끝이 났다. 그래서인지 끝이 좋은 이야기가 가뭄에 콩 나듯 나올 때면 그 기쁨이 절로 배가 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스의 신전을 드나들면서 나는 내 마음속에도 신전을 하나 들어 앉힌다. 이 신전은 나의 마음에 들여앉힌 것인 만큼 독자들은 여기에 들어와 절하지 않아도 좋다. 독자들 마음에 이런 신전을 하나 들여앉힌다면 더욱 좋은 일일 터이다. 이 신전은 사람을 섬긴다. 사람에 대한 경건함을 섬긴다. 인간에 대한 예의를 섬긴다. 신화를 꼼꼼히 읽는 일은 내 마음속에 자리한 그 신전을 찾는 일이다. 나는 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경건을 다하는 일, 마음을 여는 일이 바로 신들의 마음을 여는 일,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p.502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퓌그말리온을 떠올리며 그 만남이 유쾌한 만남이 될 수 있게 만들려고 애쓰는 편이다. 이렇게 해서 만난 사람이 나를 불쾌하게 만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유쾌한 상상은 내 삶을 늘 유쾌하게 한다. 나는 아프로디테를 믿는 것이 아니라 퓌그말리온의 꿈과 진실을 믿는다.

p.515

행복을 느낀다면 그냥 느끼면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미래를 알고 싶어서 안달을 내시는 마음자리에는 행복이 깃들 수가 없습니다.

p.991

우리가 넘어야 하는 산은 험악할 수 있고, 우리가 건너야 하는 강은 몰살이 거칠 수도 있다. 우리가 건너야 하는 바다도 늘 잔잔하지는 않다. 하지만 명심하자. 잔잔한 바다는 결코 튼튼한 뱃사람을 길러내지 못한다. 신화적인 영웅들의 어깨에 무등을 타면 우리는 더 멀리 볼 수 있다. 내가 영웅 신화를 쓰는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p.1033

이윤기에게 신화는 세상에 대해 알아가고, 인간에 대해 알아가고, 곧 나에 대해 알아가기 위한 도구였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이윤기가 알게 된 것을 우리도 알 수 있게끔 도와주는 통로였다. 왜?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니까. 세상의 수많은 상징을 잉태한 신화를 알면 세상이 보이고, 그것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인간을 알면 인간이 보이고, 그 속에 있는 내가 보인다. 보이면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면 애정이 생긴다.

p.1194




벽돌책도 그리스 로미 산화 이야기도 처음이었지만 길다고는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 중간중간 이윤기 작가님의 여행 에피소드와 신화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다는 설화(민담) 이야기,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에 신화의 흔적이 남아있는 단어들의 의미, 이야기 속에서 생겨난 별자리 등 다양하게 풀어놓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긴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기억하려고 읽으면서 하나하나 정리했으면서도 총정리를 할 때 너무 많이 길어지는 듯해 많은 것을 담지 못해 그저 아쉽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이 계시다면 꼭 읽어보셔서 이 여운을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죄송하게도 이야기가 끝나고 맺음말에서 이윤기 작가님의 타계 소식을 접했다. 이 책에서 접한 이미지를 유럽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다시 만나 자신이 <예수와 사마리아 연인> 앞에서 숨이 멎는 듯한 경험을 했듯이 독자들도 그렇게 뜨거운 해후를 경험해보기를 원했던 이윤기 작가님, 그리스 로마 신화에 첫 발을 이윤기 작가님의 책으로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 소망을 저 또한 이루어 보고 싶게 만드신 이윤기 작가님, 다른 책으로도 끊임없이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 ㅜㅜ



영원한 이별은 내게 더 이상 '아빠'라고 부를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바쁜 일상을 소소히 전자우편에 담아 보내도 '쉬엄쉬엄 하려므나' 짤막한 답장조차 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회> 6권은 없다는 뜻이다.

p.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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