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읽을 때는 제대로 읽어보겠다고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하며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신들이 끝없이 등장한다. 결국 정리를 포기하고 즐겨 읽는 거에 의의를 두며 읽었다.
외짝 신 사나이를 뜻하는 모노산달로스에 관한 신화 이야기가 신델렐라, 콩쥐팥쥐, 달마대사에까지 확장되어 이야기되는 부분에서는 절로 감탄사가 나왔고 신화나 전설에 신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는 사실은 흥미로웠다. 우리가 어딘가에 취업하려고 나의 지나온 역사를 한 장의 종이에다가 쓰는 이력서가 신발(履) 끌고 온 역사(歷) 기록(書)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정말 신발이 우리에게, 그리스인들에게 무엇을 의미했던 걸까?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신발 한 짝이 신화일지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이윤기 작가님,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다보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되면서 '나는 그동안 무엇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라는 의문과 반성을 하게 만들었다. 왜 이제야 이 책을 만난 건지... 아니 지금이라도 만나서 다행인 건가?!^^
낯선 신들의 이름의 등장부터 내가 잘 알고 있는 올륌포스의 신들까지 한 명 한 명에 관한 이야기가 5권을 통해서 눈앞에 그려지듯 펼쳐진다.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던 신은 여장했던 신들과 사랑의 여신 비너스와 헤라클레스이다. 사랑의 여신으로만 기억되었던 비너스, 아프로디테의 수많은 별명 중 하나가 '아프로디테 포르네'로 '음란한 아프로디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니 왠지 모르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의 무지에서 오는 배신감이니 어디에 하소연할 수도 없다.
여장겸험을 한 신으로는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아킬레우스가 있다. 그중 압권은 헤라클레스인듯하다. 그 몸에 여장을 하고 경호병이 다가오면 교성을 지르며 돌기둥 뒤로 숨는 것이 무료할 때마다 하는 짓이었다는 헤라클레스라니 정말 상상할 수가 없다. 이렇게 2권에서 나에게 웃음을 주었던 나에게 영웅으로 기억되었던 헤라클레스는 4권에서 다른 모습을 보인다. 가족들과 술을 마시던 중 헤라로부터 급파된 '뤼사(발광')로 인해 자신의 손으로 자식과 아내를 죽이게 된 헤라클레스는 죄를 씻기 위해 아르고스의 지배자를 찾아가 1신년 반(12연) 동안 종살이를 해야만 했다. 술을 마시고 뤼사로 인해 살인을 저질러 죄를 씻는 중에도 술을 계속 마시며 본인의 의사가 아녔다지만 또 다른 죄를 반복해서 짓는다. 죄를 씻으며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기대했던 헤라클레스의 반복된 그 모습에서 음주운전한 사람이 생각났다.
우리 민담과는 달리 그리스 신화는 '잘 먹고 잘 살았다'로 끝나는 법이 거의 없다고 한다. 뒤를 절대로 돌아보지 말라고 하면 뒤를 돌아봐 비극으로 끝나듯 '절대로'라는 말이 등장하면 설마...라는 예상이 항상 맞게 비극으로 끝이 났다. 그래서인지 끝이 좋은 이야기가 가뭄에 콩 나듯 나올 때면 그 기쁨이 절로 배가 되는 효과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