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적어도 두 번
김멜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7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817/pimg_7044601582642768.jpg)
차라리 인간 따윈 그만두고
로봇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로봇은 남자 여자 구별 없이 그냥 로봇일 뿐이니까
<적어도 두 번>은 김멜라 작가의 첫 소설집으로 각양각색의 짙은 매력을 품고 있는 일곱 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첫 편부터 인터섹스라는 생소한 주제로 나를 이끌던 이 책을 다 읽었을 땐 인간의 바닥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읽던 소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책이었던 <적어도 두 번>은 정말 나에게 생소한 경험을 하게 만들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조차도 기분이 묘한 만큼 강렬한 책이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817/pimg_7044601582642769.jpg)
<적어도 두 번>의 차례를 보며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유추해보다가 해설이 있는 걸 보고 '아... 이 책 어렵겠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난해하거나 어려운 책들엔 꼭 해설이 함께 있는 거 같은 느낌적 느낌?!... 미리 겁먹고 읽기 시작한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817/pimg_7044601582642770.jpg)
<적어도 두 번>의 첫 번째 이야기 [호르몬을 춰줘요]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IS(인터섹스)로 태어난 구도림이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매해 태어나는 아기 1,000명 중 2명은 인터섹스고 우리나라 47만 명의 아기 중에 적어도 799명이 주인공과 같은 인터섹스라고 한다. 사춘기가 되면서 튀어나온 버섯으로 인해 자신의 성을 결정해야 했던 도림이는 자신이 누구인지 대답해 줄 사람을 찾아 이태원으로 간다. 과연 내가 구도림처럼 인터섹스로 태어났다면 어떤 성을 선택했을까? 생각하고 생각해봐도 선택하기 힘든 문제이다.
난 물어볼 사람이 필요하다고요.
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817/pimg_7044601582642771.jpg)
[적어도 두 번]은 레즈비언 여성인 '나'가 시각장애인 이테에게 성적 접촉을 하고 유파고에게 그 사건의 과정을 설명하는 구조로 쓰여진 글이다. 정말 '나'가 말하듯 이테가 직접 행한 자위일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읽는 나의 입장에서는 범죄자의 변명처럼 들려왔다. 추한 행위를 이 말 저말 끌어다 그럴듯하게 포장해나가는 듯했던 설명들 정말 '나'가 말한 상황들이 사실일까?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817/pimg_7044601582642772.jpg)
'나'는 묻는다. 유파고는 여자의 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고... 만약 딸이 있다면 유파고가 딸을 목욕시킬 때 딸의 몸을 얼마나 알고 있냐고... 딸의 클리토리스를 알고 있냐고... 그리고 읽는 사람이 불편할까 봐 자위는 지위로 클리토리스는 클리토리'우'스로 바꾸어 말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나에겐 오히려 이런 부분들이 더 불편했고 읽을수록 작가가 뭘 이야기하고자 한 거지?!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만들었던 두 번째 이야기였다.
[물질계]는 아홉 살부터 집안을 말아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커온 '나'는 그 저주를 피해 물리법칙 세계로 발을 들이지만 논문조차 끝내지 못한 조교로 살아간다. 하루하루를 버티며 산다는 말이 맞는 듯한 여성학자로서의 '나'의 삶은 어느 날 '레즈비언 사주팔자'라고 쓰인 전단지를 보게 되고 그로 인해 레사를 만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레사는 사주팔자 명리학은 자기에게 적용하는 성찰이고 수양이지, 남에게 악담을 퍼붓는 게 아니라고 했다.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면, 그게 모여 사주팔자가 된다고.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817/pimg_7044601582642773.jpg)
[모여 있는 녹색 점]은 친구인 미아가 비행기 사고로 실종된 후 불면증에 시달리는 해연을 남편 강투의 시점에서 풀어놓은 이야기이다. 사귀는 남자친구의 이름을 붙인 물고기를 키우고, 기복이 심한 미아는 해연과 맞는 거 하나 없는 거 같은데 절친인 거 보면 신기하다고 생각해왔던 강투였다. 그런데 그 사고 이후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해연을 보며 둘 사이의 감정이 무엇이었을지 되돌아본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817/pimg_7044601582642774.jpg)
[에콜]은 조직을 원하고 조직 문화를 신뢰하며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싶어 해 해마다 시험을 치루지만 매번 탈락하는 수험생 '나'가 주인공이다. '나'가 사는 집의 옆집 여자의 전화 통화의 이야기가 들려오면서 그 여자의 사생활과 직업을 알게 된다. 매번 "있어요?"라고 묻는 초조한 옆집 여자의 목소리에 "있어요. 여기 사람 있어요."라고 대답하고 싶어진다는 '나'처럼 나도 모르게 함께 대답해지고 싶어진다.
[스프링클러]는 스프링클러 감열체를 수리하던 세방은 본인이 점검했던 곳에서 연달아 화재가 일어나자 일을 그만두게 된다. 만약 본인의 퇴직금이 바닥나지 않았다면 형 세준에게 엄마의 사망보험금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국은 엄마의 사망보험금의 수령 기간이 끝나가자 형을 찾아 후쿠시마로 가게 되었던 세방은 지진 속에서 돌아가신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 한다.
[홍이]는 '홍이'라는 이름을 물러 받은 동물들이 하나씩 차례대로 잡아먹히게 된 사건을 풀어 놓았다. 경찰이라는 직업을 가진 중경은 보신탕을 먹는 선배들 속에서 구역질을 참아가며 백숙을 먹는다. 사촌 '홍이'는 동물을 잔인하게 죽여 사체를 전시해놓는 범죄를 계속 저지르고 고통받는 개 짖는 소리에 고통받으면서 삼촌은 술에 의존해 지낸다. 가족의 부양을 위해서라면 폭력을 수행하면서도 감내해야 한다는 삼촌의 당위가 아들 홍이에게도 마찬가지로 드러난다.
난 예쁜 애들만 골라 죽였어. 몸에 흉터가 있거나 못생긴 애들은 그냥 풀어줬어. 예쁜 애들을 죽여야 사람들이 더 끔찍해하니까.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0817/pimg_7044601582642775.jpg)
<죽어도 두 번>은 김멜라 작가가 본인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어떻게 한번 설명해보려고 한 시도들이라고 한다. 각자의 색이 강하게 담겨 있던 일곱 단 편의 이야기 어느 것 하나 나에겐 쉬운 게 없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설 부분도 읽어가며 '아.. 여기선 이 부분을 설명하고자 했구나'하며 책에 한 발자국 다가가 본다. 그런데도 아직 낯설고 생소한 건 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