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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서 마음으로 - 생각하지 말고 느끼기, 알려하지 말고 깨닫기
이외수 지음, 하창수 엮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평점 :
처음이었다. 이런 사람은. 아니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 같다.
기인? 그런 생각이 든다. 소설가 하창수의 질문에 대한 이외수 선생의 화답으로 구성된 이 묘한 구성을 담은 책 ‘마음에서 마음으로’는 이전에 만난 적도 없고 그의 작품을 본 적도 없는 나에겐 생소한 경험을 제공했다. 생소하기보다 신비로운 세상으로의 한걸음으로 날 인도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외수란 묘한 철학자이자 소설가는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이외수란 이름으로 상징되는 감성마을로 찾아온 소설가 하창수의 질문은 하나하나 무겁고 또한 시의적절한 것으로 넘쳤다. 이 시대를 살면서 고민하는 모든 이들을 대변했다고 할까? 그의 질문은 예술, 인생, 세상, 그리고 우주라는 거대한 묶음들을 갖고 전개됐다. 모두 쉽게 답변할 수 없는 그런 주제들이면서, 과연 제대로 된 답변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의 거친 질문들이었다. 일종의 시대적 질문이랄까? 아무튼 용서가 없는 예리한 질문들이었다.
그런데 명쾌하다. 거의 모든 질문에 이렇게 분명하고 확신에 찬 채 답변할 수 있다는 점은 부럽기조차 하다. 이 시대의 진정한 멘토로 회자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개인적으로도 의문이 들었던 문제들에 대해 이외수 선생은 거침이 없었다. 아니 막히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예술 부분에서의 시작부터 강렬한 답변이 나오기 시작했다. ‘감성의 궁극은 사랑에 있고, 사랑은 반대말을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인상 깊은 이야기였다. 냉철한 이성으로 인해 파괴되는 현대사회의 비극을 이야기하면서 예술이 ‘서로를 사랑하고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보여주는 일’이란 그의 정의는 공동체적 가치를 담은 예술이야말로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한다고 외침으로써 개인적 취향으로만 자리매김하는 지금의 예술에서의 개인적 취향을 제대로 디스했다. 또한 ‘작가는 만물의 본성에 입각해 글을 쓰는 사람’이란 표현 역시 독자의 감성을 자극했다. 과연 현대인들, 아니 나는 그런 본성을 인식하며 살았을까? 또한 ‘내가 겪는 고통이 누군가의 행복이 되게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란 표현 속에 담긴 시대적 아픔을 갖고 예술을 해야 하는 작가 정신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예술이 왜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감상하게 만들어야지 해석하게 만들면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표현 속에서 예술은 어떻든 혼자만 즐기는, 난해한 상품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이외수의 인생은 처음 듣게 되는 비극의 이야기였다. 고통의 극단에서 그는 제대로 된 도덕을 배웠고, 사람도 아름답다는 것을 느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역설일지 모르지만 이외수의 고통이 우리 모두에게 행운이 된 셈이다. 그 속에서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본성이 아름다움이고 사랑이란 정의는 무척 아름다운 정의였다. 인간중심이 되어 이런 인식을 못한 현대인들에 대한 ‘헛똑똑’이란 비난은 그래서 안타깝다. 이성 중심이 과연 우리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을까?
세상이란 부분은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일으켰다. 이 부분에서 이외수는 세상과의 소통하는 모습의 그이며, 또한 멘토로서 세상 사람들과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내밀과 집약, 함축과 절제를 공부할 수 잇는 절호의 공간’이라고 평가하는 트위터라는 가상공간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면서 감성마을이란 강원도 화천이란 적막한 공간에서도 세상과 얼마나 훌륭히 소통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그 공간에서 자연에 대한 그의 관점은 특별했으며, 많은 관심을 일으켰다. ‘자연은 쉼 없이 순환하고, 순환은 조화를 이끌어낸다. 자연은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문제를 수정하고 보완해서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라는 부분은 자연이 왜 이외수의 마음의 중심인지를 알게 한다. 그리고 나 역시 자연을 다시 한 번 보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하다.
세상이란 부분에서 안락사, 자살, 우울증 등과 같은 한국의 위기를 나타내는 징후들에 대해 그는 놀라운 인식을 보여준다. 이런 부정적 문제에 대해 그는 삶을 다른 차원의 의미로 생각해 볼 것을 제안한다. 특히 개인적 차원이 아닌 ‘인간 전체, 지구, 우주적 차원’으로까지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 특히 ‘관계는 자신의 것만이 아니다. 자신이 생면을 내던짐으로써 연쇄적으로 자신과 관계되어 있는 사람의 삶에 좋지 않은 변화나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라는 답은 혼자만의 문제로만 생각했던 많은 문제들이 사실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정의 내려야만 하며, 그를 통해 보다 큰 인식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야 함을 이야기하면서 ‘각박한 현실을 여유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방법들을 찾았으면 좋겠다’라는 제안은 많은 것을 생각나게 만든다.
이런 제안들 속에서 그가 보는 세상은 사회과학자들도 수긍하게 하는 힘을 지닌 것들이다. ‘편차가 너무 커졌다는 사실이다. 좋은 쪽은 더 좋아졌지만, 나쁜 쪽은 더 나빠졌다’라는 현실에 대한 진단은 매우 정확하다. 정치인에 대해 ‘권위만 누릴 뿐, 모든 사람을 평화롭게 이끌어야 한다는 본분을 망각한 사람들 때문에 결국 정치가가 욕을 먹는 것이다’라는 진단은 그 어떤 청진기보다 좋은 것이다. 또한 공동체적 가치관을 담을 것을 소망으로 그리고 개인적 탐욕을 지닌 것을 욕망으로 구분한 대목은 욕망에 치우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이 뭔지를 보여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가 제시한 ‘익은 정치, 발효된 정치’는 무척 인상 깊은 표현이다. 여기에 더하여 이념에 대해 ‘어떤 이념도 그 사회나 국가나 세계를 위험에 처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그의 명쾌한 표현은 지금까지 앓고 있던 체증이 한 번에 풀리는 것만 같았다. 그는 많은 것을 알아서 멘토가 된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아서 멘토가 된 것임을 알게 해준다.
공감, 참 오랜 만에 듣는 단어다. 이성 만을 최고로 여긴 이 시대에 그의 소설들은 동의보다 공감을 얻으려는 것이었으며, 그런 그의 노력은 그의 작품이 단순히 대중성을 넘어 시대적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매력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독자에게 자신의 문제를 다시 고민하게 하는 것으로 ‘마음으로 다가가면 대상과 내가 쉽게 합일되고, 만물을 볼 대 즉각적으로 일체감이 형성된다’라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 그는 그냥 판매 1위를 기록하는 작가가 아니었던 것이다. ‘유한한 잣대로 무한한 것을 탐구하는’ 인간의 이성의 어리석음을 비판하면서 우주의 본성에 다가가라는 그의 권유는 역시나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그를 통해 생명 복제, 종교, 군대, 학교 등의 인간문제에 대해 나름의 지혜로운 판단을 한다. 이외수는 그래서 멘토다.
이외수의 신비적 감상은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황당하다고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의 그런 독특한 면이 그를 만든 하나이며, 또한 지혜를 얻은 주요 방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것은 이외수가 지금 존재하며, 지금도 세상과 소통하며, 앞으로도 지혜를 제시할 것이며, 또한 그의 매력이 계속 될 것이라 점이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생각하지 말고 느끼기, 알려하지 말고 깨닫기’라는 책은 다양한 매력을 갖고 있다. 이외수 특유의 세상 읽기를 통해 지금까지 갖고 있던 질문 하나하나를 마치 게임을 하듯이 해결한다. 또한 그런 문제를 나열하는 과정 속에서의 내용은 풍부함은 물론 그 표현력과 설득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함을 드러낸다. 그가 표현한 문장과 어휘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웠고 정확한 것들이었다. 무리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세상으로 끌어들이는 이외수의 표현력은 독자를 기쁘게 하며, 행복하게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기쁜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이런 혜택은 아마도 질문자 하창수의 능력에 기인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유익하다면 너무 계산적인 표현일 것 같다. 아마도 감성적으로 접근한다면 기쁘다는 표현이 제대로 된 것이리라. 그의 소설을 읽지 않은 본인의 타성과 게으름이 무척 야속하게 느껴진다. 시간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내가 아닌 좀 더 멋진 어른이 되기를 바라는 내 본성을 찾아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