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피쉬2 - Jungle Fish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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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편일률적인 청소년 영화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괜히 고등학교 학생들의 이야기엔 낭만과 순수, 그리고 아름다운 세상 등이 연상됐다. 편견이라면 편견이겠지만 청소년 영화엔 그렇게 제작되는 것이 좋아 보였다. 아마도 청소년이라면 어른들의 그늘진 마음이 결코 투영되어서도 안 되고, 그런 것을 알기엔 어린 것 아닐까 하는 정도의 생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아니면 그들이 결코 인생에 있어 쓴 맛을 나중에 확인해야지 지금은 아니란 생각도 하고 있었을 것 같고, 아니면 어른이라서 좀 창피하단 생각이 들 것도 같고, 아니면 그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불행한 인간사를 모를 것이란 생각도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정글피쉬2’는 나의 편견을 여지없이 파괴해 버렸다.
  솔직히 형편없었다. 고등학교 학생들의 서사에 맞춰 연기자들은 고등학교 학생이거나 조금 높은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래서인지 연기력은 아직 미숙했고, 흡인력은 떨어졌다. 우울한 얼굴들은 있었지만 좀 어설펐다는 것이 솔직한 평이다. 그리고 영상이나 구성 역시 아쉬움이 짙게 느껴졌다. 극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했고, 갑작스런 전환에 당혹스러웠고, 여러 가지 면에서 어설펐다. 아마도 연기자만큼 감독이나 제작진 역시 신인이었던 것 같다. 영화 상에서 말이다.
  이런 약점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깊이 몰입하게 됐다. 그것은 영화 속에 보이는 고등학교의 현실 때문이었다. 과한 표현이나 과한 사건, 그리고 과한 따돌림 등이 있었겠지만 본질적으로 언론에서 이미 듣거나 봤던 내용과 유사했다. 정글피쉬란 어휘 자체를, 영화를 보고 인터넷 사전으로 찾을 만큼, 영화는 어른인 나에게 매우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영화 속에서 봤던 사회가 바로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일치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철저하게 경쟁으로만 내몰린 한국사회는 인간미를 상실했다. 아니 어쩌면 한국사회는 일제시대는 물론 조선시대부터 언제나 불법적인 거래가 판쳤는지 모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자유주의란 거대한 파괴적 회오리 앞에서 한국 사회는 승자독식사회로 길들여졌고, 이기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걸쳐 퍼졌다. 그래서 거친 경쟁 앞에서 편법과 불법이 동원되는 것이 일상화됐고, 그런 내용은 연일 언론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그것도 넘치게 말이다. 도덕성이나 인간미란 단어가 과연 한국사회에 존재하긴 한 것인지 의심될 정도로 엉망인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런 한국사회에 포함되어 있는 학교라도 열외가 될 리 없다. 정글피쉬란 의미가 이리저리 휘둘리는 물고기를 비유한 것이라면 아주 적절한 표현이었다. 세상에 사는 것이 세상에 사는 것이 만족스러워서 사는 것이 아님을 정글피쉬란 단어로 기막히게 표현한 것이다.
  불법과 편법이 넘쳤다. 특히 학생들의 윤리적 교육을 담당해야 할 고등학교가 과연 세상에 존재하기는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탐욕의 그물망에서 허우적거렸다.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선 무슨 짓이라도 하는 사회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영화 속의 고등학교는 학생들조차 탐욕으로 물들게 했다. 자연스레 자신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은 학생들을 ‘왕따’시키고, 그런 학생들을 삭제시키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부정입학 학생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밝히려는 학생을 죽음으로 모는 장면은 결코 과하게 보이지 않아 보였다. 정말 지금 어느 고등학교에서 벌어질 것만 같은 슬픈 사연이었다. 
 

 

   친구란 것이 허황된 인간관계 같아 보였다. 경쟁과 비리 앞에 친구는 부차적인 존재였다. 영화는 의문의 죽음을 찾는 이들의 힘든 노력이 보였다. 하지만 고교생의 정직함을 외면하고 자살로까지 이끈 이 역시 바로 친구였던 학생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만으로 구성되지 않았다. 부정입학으로 장사를 한 학교가 부적격자로 낙인 찍힌 학생들을 어떻게 소외시키고 배제시키는지 영화는 현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었다. 학교의 목적이 학생의 소외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좋은 입시학교란 이미지를 얻기 위한 나름의 비책임이 분명하다. 그래야 돈을 버니까.
  영화가 보여주는 세상은 가혹하기 그지없다. 현실의 학생들의 고충과 고민, 그리고 그들의 우울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는 과한 몸짓 같지만 다소 과했을 뿐, 그다지 비현실 같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이 이 사회를 고칠 수 있으리라 다짐하는 장면에서 어른으로서 착잡함과 함께 오늘을 사는 비애감도 느꼈다. 학교를 벗어난다고 그런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더 거칠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가 곧 부정직한 사회의 본질을 비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는 슬프다. 속편이 더 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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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정치학 - 공정무역 커피와 그 너머의 이야기
다니엘 재피 지음, 박진희 옮김 / 수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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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커피는 이중적이다. 삶의 고귀함을 상징하듯, 우아하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생활의 여유를 느끼는 모습은 현대인이 꿈꾸는 이상적인 삶이 됐다. 그런 커피이기에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주저 없이 커피를 선택한다. 하지만 그런 커피 뒤에 숨어있는, 아니 미지의 세계인 생산자들의 이야기는 이상하다. 환상을 만드는 이들이 생활에 힘들어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기에 커피는 가혹한 현실을 발판으로 만드는 동화 같은 것이다.
  ‘공정무역,’ 어느 순간 유행어처럼 사용된 어휘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정확한 의미는 알지 못했다. 그냥 좋은 무역 정도로만 느껴진 이 무역형태는 그러나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고,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또한 목적이 무엇이든 아직도 진행형인 무역이다. ‘공정’이란 어휘가 존재한다는 것은 부당함과 불공정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또한 관련된 분야에 어렵게 생활하고, 그래서 삶의 터전까지 잃어버린 이들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화려하게 커피를 즐기는 소비자와 달리 생산자들의 생활은 매우 어렵고, 그래서 부차적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 이 책의 문제제기의 근원이다.
  공정무역은 기본적인 인권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경제적 기반이 부실한 남반구의 생산자들에게 최소한의 경제적 가치를 제공함으로써 다양한 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점이 착안점이다. 즉, 남반구의 생산자들의 현재의 수익을 확보해주고 높여줌으로써 그 지역에 자립기반을 갖추도록 돕고, 그것을 통해 자연환경을 보호함은 물론, 생물의 다양성 확보와 원주민들의 문화를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또한 엄격한 기준을 제시, 질 좋은 상품을 계속 공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줌으로써 높은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내용이다. 그것을 통해 원주민 생산자들이 커피 생산지에서 떠나는 것보다 그들이 계속 있음으로 해서 얻을 수 있는 혜택은 이보다 더 많은지 모르겠다.
  문제는 과연 이것을 가능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생산자들의 경제적 수준은 공정무역으로 조금 나아진 것뿐, 아직도 그들의 경제적 기반의 확대는 요원한 실정이다. 공정무역의 기준에 맞추면 맞출수록, 생산비는 여러 가지로 인해 늘 뿐이고, 공정무역으로 거래되는 비율은 거의 지표상으로도 무의미할 만큼 크지 않다. 여기에 공정무역을 추진하는 단체와 세력은 다양한 만큼 의견통일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면서 통합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한계에 가장 문제는 스타벅스와 같은 국제기업들이 공정무역을 통해 커피를 유통 판매하면서도 그 비중은 그리 크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단순한 홍보 수준으로만 악용, 기업들의 이미지 세탁을 위해 사용되는 상황이다. 어쩌면 시장에서 이익을 쫓는 기업과 경쟁하는 공정무역은 책의 부제목처럼 악마와 손을 잡는 상황일지 모른다. 그만큼 한계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문제다. 저자가 제시하는 끊임없는 제안과 목표 속에 담긴 것은 그래도 공정무역은 희망이란 사실이다. 공정무역이란 방법은 지금까지 많은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작지만 성과도 있었다. 그 성과를 더욱 키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중요성은 원주민 생산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시고 소비하는 북반구 소비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환경보호는 이제 미래가 피해선 안 될 문제이고, 남반구의 경제적 희생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점차 줄어드는 이 때, 북반구의 자성과 함께 기업들의 탐욕을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시장의 폭력성이 신자유주의의 확대로 그 폐해가 드러난 지금, 무엇인가를 모색해야 하고 공정무역도 약점이 있지만 계속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특정인들의 희생으로 얻어진 결과물이 얼마나 취약하게 되는지를 인류는 많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런 우를 극복하기 위해 공정무역이 갖고 있는 장점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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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투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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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 노리개로 전락한 인간군상이 소통부족으로 인해 서로 협력했던 인간관계가 어느 순간 서로의 불신 속에 내몰리는 것을 보면서, 영화의 모습은 현대인의 실상을 보는 것만 같았다. 불신 속에 허우적거리면서 칼질을 하는 모습은 감독의 의도처럼 몸부림을 뿐이었다. 엉망으로 살게 된 인간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를 보여주는 과거의 모습들은 시대적 배경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 대단하지 않았다.
  제목을 보고 많은 이들이 화려한 액션을 기대했겠지만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을 영화에서 그렇게 만끽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무거운 심리 영화를 고려하면, 외관상의 폭력보다 더 무서운 공포를 느낄 것이다. 같은 동료끼리 서로 죽여야 하는 기막힌 운명 앞에 인간이 어떤 생각으로 행동하는지를 이 영화를 통해 뼈저리게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이 영화는 정말 혈투다.
  비운의 조선의 왕인 광해군 때의 역사적 사례를 갖고 만든 이 영화에 출연하는 모든 이들은 파멸로 가게 된다. 심지어 영화 속에서 주연이 아닌 이들도 역사적으로 파멸하게 되는 것은 역사적 진실이다. 인조반정 후 북인은 소북이든 대북이든 모두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들이다. 심지어 광해군 역시 종이나 조를 붙이지 못한 왕으로 남겨진 것을 보면 이 영화는 비극적 인물들로만 구성된 매우 무서운 공포물이다. 모두가 죽을 수밖에 없는 영화.

 

 

  소통부족이 영화 속에서 가득했다. 불신이 가득했지만 어쨌든 ‘헌명(박희순)’과 ‘도영(진구)’는 친구였다. 이미 개죽음이 될 운명 속에서도 서로 힘을 합쳐 오랑캐군을 상대로 싸웠고, 조선군의 궤멸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헌명은 부축 속에서 객잔으로까지 간 그들은 그때까지 친구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름다울 것만 같던 과거의 원인들이 그들을 갈라놓고 만다. 복잡한 정치적 문제가 도화선이 되어 그들의 관계는 엉망진창이 됐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서로 칼부림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친구였기에 가능할 수도 있었던 소통기회가 전혀 일어나지 못했단 점이다. 과거의 친한 관계라는 허명 뒤에 담긴 당쟁의 편가르기와, 사랑과 시기라는 인간의 본성 앞에, 가식적으로 쌓인 누더기 같은 친구관계였는지 모른다. 단지 어렵게 사는 자신을 키워준 감사함이 친구라는 가식적인 관계를 그나마 지탱해주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감사하다는 의미를 통해 덮어버리며 만든 친구관계는 진흙 위에 쌓은 공든 탑이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 좋은 관계 뒤에 숨죽여 있던, 과거에 쌓였던 시기와 질투, 그리고 묘한 불운들이 겹쳐지면서 서로 돌아올 수 없는 관계로까지 악화되고 말았다. 마치 지금의 현대인들이 갖고 있는 소통부족에 의한 파멸처럼 말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조선이란 과거를 빌린 현대극으로 발전한다.
  이런 양반들의 인간적인 반목 속에서 영화는 시대적 문제제기를 더한다. 전장에서 도망친 조선군 ‘두수(고창석)’의 사연은 민초들의 비극을 대변한다. 마치 오늘의 서민으로 투영되면서 그가 겪었던 억울한 이유는 영화를 단순한 소통부족이 아닌 서민의 우울한 자화상을 또한 겸하게 된다. 객잔이란 단순한 공간 속에 벌어지는 사건과 사연은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었다. 정말 놀라운 구성과 각본 속에서 말이다.  

 

 

  영화는 전쟁터란 현실 속에서 과거를 투영하는 역순행적 구조를 갖고 있다. 차디찬 백설의 배경 이 잿빛의 세상으로 비춰지면서 그 속에서의 인간들의 모습은 처량하고 냉랭했다. 객관적 시각을 위해 어두운 듯한 앵글 속에서 그들이 겪고 있는 인간적 불신이 보였다. 그와 대비되는 과거의 장면은 한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마치 과거는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듯 말이다. 그러나 현재의 결과를 입증시키는 과거의 모습은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에서도 위험한 정치적 도박이 보이기 시작했고 출세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가 보였으며, 친구라고 하기엔 상처투성이의 말투와 경험이 있었다. 아름다운 과거 역시 전쟁터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그때든 이때든 인간관계는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매우 인상적인 영화였다. 영화의 각본은 물론 찍어낸 영상들은 냉정한 관조를 이끌어내듯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영화 ‘The Road’에서 허무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했던 영상이 이 영화에서도 적절히 사용된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하는 감독의 의도를 독백을 듣듯 이끌어내고 있다. 아니면 세상에 대한 과감한 비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소통을 위한 노력이 강조되고 있다는 느낌도 많이 들었다. 주요 연기자 세 명이 보여주는 시너지효과 역시 이 영화의 백미일 것이다. 뛰어난 연기력으로 정평이 나 있는 고창석과 박휘순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진구의 거듭된 성장은 매우 인상적이었고 그의 미래가 기대될 정도다. 영화 ‘마더’에서의 특유의 냉소적인 연기가 이 영화에서 더욱 빛을 발한 것 같다. 이런 연기자와 함께 감독 박훈정의 존재는 ‘황해’의 나홍진 감독처럼 매우 부각되는 존재다. 나 감독과 마찬가지로 박 감독이 잿빛으로 장식된 비극적인 세상을 비슷하게 담아낸 수작들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위기에 빠진 한국영화에서 단비 같은 존재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의 다음 작품이 매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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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2월 4주

  방송이든 영화든 언제나 사랑의 주인공들은 젊다. 특히 20대가 대다수인데 종종 어린 10대가 사랑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다. 가장 많은 영화 수요층이 젊은이들이라는 것이기에 가능한 제재다. 이렇게 되다 보니 연세 드신 노인분들이 사랑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매우 드물다. 이런 사랑을 시도하는 것도 낯설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대중성을 얻기 힘들어서 제작 단계에서부터 반려될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런 인식에 과감히 도전하는 어른들의 로맨스를 담은 영화들이 상영된다. 무척 인상적인 시도다. 고령화시대에 색다른 인생을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고, 편견에 사로잡힌 인생을 박차고 나가서 어르신들도 더욱 활기차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영화다. 그것을 통해 삶이 얼마다 더 풍성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영화들에 포함된 것이 ‘그대를 사랑합니다,’’하비의 마지막 로맨스,’ 그리고 ‘죽어도 좋아’이다.  

 

죽어도 좋아 



  2002년 이 영화가 개봉됐을 때, 말도 많았던 영화다. 나이가 먹은 어르신들이 나누는 대화가 매우 농도가 짙었고, 말만 어르신들이지 사실 젊은이들 캐릭터라고 해도 전혀 문제되지 않을 그런 영화다. 나이든 어른신께서 공원에서 자신의 이상향을 만나셨다는 기발한 발상은 한국영화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창출했다고 해도 전혀 틀리지 않았다. 편견과 타성을 깬 이 영화는 특히 만나자마자 바로 동거를 한 내용은 물론, 격렬한 사랑을 하면서 아들 하나만 낳아 달라는 대사는 정말 기발한 것인지 철없는 것인지 모를 만큼 기특한 재미를 제공한다. 나이가 들어도 인간의 본성을 살아있다는 것을 묘한 구성으로 보여준 영화다. 특히 이 영화는 어디까지가 동화인지 모르지만 분명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적이다. 이런 특이함 덕분에 24회 청룡영화상(2003) 후보신인감독상(박진표),과 함께, 2회 대한민국 영화대상(2003) 후보신인 남우상(박치규), 신인 여우상(이순예), 신인 감독상(박진표) 등을 수상, 단순한 화제를 넘어 수준 높은 영화로 자리매김했다.  



하비의 마지막 로맨스 

 



  나이 들어 충격을 받은 어느 노신사의 비극이 이 영화의 도입부이다. 딸이 결혼한다는 말에 매우 설렌 마음에 뉴욕에서 런던으로 날아갔지만 친아빠인 자신이 아닌, 새아빠와 함께 딸이 결혼식장에 들어설 것이란 사실에 충격을 받고, 여기에 회사로부터 해고통보가 더해진다. 아마도 오늘날의 가장의 비극을 짧지만 굵게 형상화했다. 이런 불행 속에서 노신사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에게 아무것도 남겨진 것이 하나도 없는 그때, 그가 새로움을 준비해야 할 그때, 사랑이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어준 것은 바로 사랑이다. 말년에 자신의 주변사람들로부터 귀찮은 존재로 하락한 하비에게 용기를 준 이는 사랑의 상처에 두려움을 떨며 스스로의 내면에만 집착하고 있는 케이트다. 그와 그녀는 그렇게 힘들어 어려울 때 만나며, 서로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존재로 재탄생한다. 최고의 배우들인 더스틴 호프만과 엠마 톰슨은 말년의 연인들을 매우 실감나게 형상화했다. 특히 비현실적일 수도 있는 내용을 우리 모두가 공감하는 영화로 만든 것은 그 둘의 힘이 컸다. 무엇보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는 활력일 것이다. 그리고 쉽게 포기할 만큼 인생은 매우 무가치한 것이 아님을 자각하도록 이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나 보다. 어른들의 사랑이 이제 아무 거리낌없이 나오고, 또 반응 역시 나쁘지 않다. 미래의 젊은이들 모습을 볼 수 있어서인지, 아니면 사랑엔 국경은 물론 나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여서인지, 아니면 이혼도 많은 시대에 사랑을 위한 인생의 시간이 따로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어른들의 사랑이야기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영화에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어른이 되어서도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알콩달콩한 사람을 할 수 있는 캐릭터로 무장했다는 사실이다. 즉 나이에 비해 매우 젊은 분들이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옛 감정을 계속 간직하고 있는 구성은 좀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그런 낭만적인 사랑으로 이 영화는 더욱 힘을 받은 것 같다. 강풀의 만화를 원작으로 했고, 김수현 작가의 극찬을 받았다는 다양한 Gossip 거리들도 있을 만큼 많은 이들의 관심을 일으켰다. 그리고 어른이 됐어도 사랑을 통해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영화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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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2-27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볼만한 영환가 보군요.
아직 저 사람들만큼 안 늙어봐서일까
저들의 사랑을 머리로는 인정할 수는 있어도
왠지 쓸쓸하다는 생각을 해요.
예전에 이 비슷한 영화를 본적이 있는데 제목이 영 생각이 안 나네요.
둘 다 치매에 관한 얘기가 나오던데...
하나는 <노트북>이었나?
아, 나야말로 치맨가봐요. 흑~

그래도 이 영화는 비슷한 연배끼리의 사랑을 다루기나 하죠.
<라벤더의 향기>던가? 그 영화는 정말 쓸쓸하더군요.ㅠ

novio 2011-02-27 17:23   좋아요 0 | URL
저도 어르신은 아니라서 잘 이해는 안 됩니다. 영화 만드는 감독들도 얼마나 이해했는지 솔직히 궁금도 하구요. 혹시 자신들의 연배의 사랑을 과감히 확대해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한국에서 사랑은 국경도 사라지고 있는데 이젠 연령의 한계도 사라지고 있는 듯 합니다. 타인의 시선으로 행복할 수 없는 이 시대, 저렇게라도 거침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게 진정한 행복의 길이 아닐까 생각도 들구요. ^^

stella.K 2011-02-28 15:34   좋아요 0 | URL
앗, <라벤더의 연인들>이었어요.
정신머리하군.ㅠ
 
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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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폭력이 물리적 폭력보다 더 혈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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