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사정 볼 것 없다 - Nowhere to Hid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아름다운 폭력과 서정미, 그리고 뛰어난 연기력. 이제 이 영화는 한국의 고전이 됐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적과의 동침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그 망할 전쟁 때문에 모든 것이 엉망이 된 상황을 잘 형상화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셰티 - Machet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 포스터를 봤을 때, 유명한 배우들이 나오는 것도 놀랐지만 분위기가 어쩐지 B급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B급 영화다. 유명배우들이 나온다면 뭔가 그럴 듯한 분위기에서 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상식 아닐까? 하지만 이 영화, 보기도 전에 생각했던 그런 상황을 고스란히 재현했고, 그런 상식을 깨는 것을 미학이라고 이야기하듯 맘껏 B급 영화의 묘미를 선사한다.
  아마도 B급이란 표현 자체가 수준 낮다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다. 아니 그렇게 표현해서 재미를 선사해주고 작품성도 나름 만들어가는 기획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피가 낭자하면서 코믹하고 어설픈 그런 장면들이 넘치도록 하는 그런 영화 말이다. 어린이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구성, 세련되지 못한 내용, 그리고 어설픈 상활 설정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그저 그런 포맷을 지닌 영화로서 ‘마셰티’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 영화에 주인공 하기도 벅찰 그런 인물들이 주연도 아닌 조연으로 나온다는 것도 희한한 캐스팅이다. 정말 B급 영화처럼 이 영화 괴이하다.
  희한하게도 이런 B급 영화가 다루는 주제는 그런데 매우 묵직하다. 미국에서의 이민문제는 매우 첨예한 정치적 사안이다. 그리고 휘발성 가득한 민감한 내용이다. 멕시코와 미국 사이의 국경선에 담을 쌓고 아예 라틴계의 불법이민을 더욱 압박하려는 정치적 조치들이 난무하고 있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다 먹고 살자고 넘고, 그래서 먹고 살기 힘들다고 막겠다고 하는, 그런 충돌적 형국이다. 지금도 미국과 멕시코 국경들을 따라 거대한 담은 건설 중에 있다. 이럴 때, 이 영화는 흥미거리들만을 다루려는 B급 영화의 기존의 아성에 도전하는 듯, 매우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고 있다. 그것도 B급 영화 방식처럼 매우 투박하고 폭력적인 것은 물론, 거의 과격한 혁명에 가깝다.
  기괴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덕분에 괴이한 영상미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고 지금도 그것을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런 ‘썬 시티 시리즈’ 제작에 공동으로 참여한 로드리게스 감독도 그런 부류 중 하나다. 이번 영화는 아예 타란티노 감독과 합심해서 만들었던 영화 <그라인드하우스>에서의 예고편이었던 가짜 영화 <마셰티>를 진짜 영화로 만들면서 타란티노 식 장면 만들기에 충실했다. 아니 더했다. 영화 속의 영화, 즉 타란티노 감독과의 인연을 이 이상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또 다른 타란티노인 로드리게스 감독은 라틴계 미국인이다. 괴이한 영상을 타란티노 영화는 라틴 문학의 정수인 마술적 사실주의와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인지 라틴게인 로드리게스 감독이 타란티노 식 표현법을 차용하는 것이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 신화적이면서도 환상적이고, 그러면서도 잔혹하면서도 기이한 세상을 만드는 방식은 로드리게스 감독에겐 그다지 이상하지 않은가 보다. 
  히스패닉계가 갖고 있는 운명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론 라틴계의 불법 이민이다. 이 점에 대해 라틴계인 로드리게스 감독이 할 말이 많아 보인다. 사실 그의 이름 자체가 운명적으로 역설이다. First name은 영국식인 Robert이지만 그의 Last name, 즉 성은 Rodriguez다. 그는 분명 태생적으로 앵글로 아메리카와 라틴 아메리카란 두 가지 문화권이 결합된 미국인이다. 또한 텍사스 자체도 원래는 멕시코 영토였지만 미국과의 전쟁으로 멕시코가 빼앗긴 비극의 영토다. 사실 Texas란 이름 자체가 스페인어다. 알라모 전쟁으로 멕시코 너머의 영토가 된 이 지역을 중심으로 영화가 생산됐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가난한 라틴계의 삶이 터전이 되고 만 미국에서 다 쓰이다가 필요 없거나 미국 내의 백인들의 경제상황이 어려우면 그냥 내쫓기는 상황을 당해야 하는 불법라틴이민자들과 그는 같은 피를 나눠온 사이인 것이다. 그 지점에서 그의 영화는 단순한 오락거리 이상으로 넘어간다.
  밀림 속에서나 사용할 듯한 무자비해 보이는 칼인, 마셰티는 그런 편향된 결론 속에서, 보이는 이미지처럼 휘둘릴 때마다 핏물이 넘실거린다. 그 속에는 불법이민으로 어렵게 살고 실컷 이용당하다가 마약이나 정치와 관련된 이권에 의해 쉽게 내쫓기는 라틴계인들의 분노가 담겨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단물 다 뺏고 내쫓는 상황은 극단적인 분노를 일으키게 만든다. 악용된다는 것은 불법이든 합법이든 불편한 속내를 만드는 법이니까. 미국을 위해 봉사하다가 백인들의 음모에 악용되는 라틴계의 전직 경찰의 모습에서, 그리고 같은 라틴계인 불법이민자를 솎아내는 히스패닉계 이민경찰관이 사회의 정의와 미국의 법이 일치하지 못했을 때의 분노 표출과 선동하는 행동으로의 변화는 그런 불편한 속내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같은 핏줄이라서 들고 일어선다. 그리고 무자비하게 백인들을 살육한다. 그들이 사적 국경 수비대이든, 불법을 자행하는 범죄인이나 정치인이든 상관이 없었다.
  영화에서 행동을 보이자고 선동하는 영화 속의 주요 인물들은 섬뜩함을 보여준다. 영화는 B급 영화다운 즐거운 재미를 줘야 하는데 강한 사회성을 바탕으로 한 현실인식의 의미를 보여주고 이상하게 강한 호소력과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영화는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분노하고 있다. 불법이민에 대해 시시비비를 따지자면 복잡한 사회적 문제와 쟁점이 가득함에도 불구하고 여기선 이미 불법이민을 단죄하는 미국 백인계는 다 악당들이다. B급 영화의 편향된 사고가 전혀 다듬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결론이다. 이 영화를 본 미국의 백인들의 마음이 어땠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한국에서의 황인종이야 라틴계에 대한 동정으로 기울겠지만 백인의 마음은 뒤숭숭했을 것만 같다. 뭔가 바꾸지 않으면 크게 다친다는 식의 마카로니 웨스턴 B급 타란티노식 영화는 직설적이면서 협박 분위기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런 것들과 다른 것들로 화제가 됐다. B급 영화에 대니 트레조(마셰티), 로버트 드니로(맥로린 의원), 제시카 알바(사타나), 스티븐 시걸(토레즈), 린제이 로한(에이프릴)과 같은 거물들이 출현했고, 제시카 알바와 린제이 로한의 노출이 화제가 된 것은 영화 외적인 것에 너무 매몰된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화제성이 될만한 것들이지만 마셰티란 제목과 그것이 담고 있는 미국 내에서의 라틴계의 분노와 그 위험성이 더 부각되어야 할 것이고, 미국처럼 공존의 문화를 거의 이루지 못한 한국 역시 그런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문제의식을 일깨워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가 너무 가치와 교훈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설프게 여기면 안 될 것도 있음을 놓치면 안 된다. 마셰티는 그래서 마냥 웃고 즐겁게만 볼만한 것이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0.1퍼센트의 차이 - 인종과 반인종의 교차로에서 제3의 길을 찾는 아주 특별한 DNA 이야기
베르트랑 조르당 지음, 조민영 옮김 / 알마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발생하고 그래서 무능하거나 유능하다는 식의 비이성적인 결론을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유전학이다. 문제는 이 유전학 너머엔 불합리한 증오와 경계심, 그리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려는 인간의 탐욕이 존재한다. 사실 유전학이 만든 병폐는 2차 대전에서의 유태인 학살이나 흑인 노예와 같은 사례에 국한되진 않는다. 아시아에선 현재 한중일 간의 민족적 갈등을 구현하는 방식이 유전학에서 이야기되는 방법론과 하등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의 인류가 그렇듯 현인류 역시 이런 점에서 과거와 너무 닮아 있는 아쉬움을 갖고 있다. 아시아에서 한중일의 문제가 다민족 공동체로 확장하면서 공동의 유대감을 얻으려는 노력보다 배제하려는 노력이 이어지면서 동남아시아 민족에 대한 유전학적 민족론이 드세지고 있다. 계속 유전학이 악용된다.
  ‘0.1%의 차이’의 저자 ‘베르트랑 조르당’의 지적은 그 날카로움에 걸맞게 현시대의 인류에게 가슴을 아프게 한다. 가치를 갖고 사실을 연구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가치는 분명 결코 저버릴 수 없는 주제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통해 사회과학의 주장들을 입증하는 방법론이 현재 많은 의문점들을 해소하고 있다. 이 책 역시 그런 시도의 결과물이다. 통섭이라 불리는 이런 방법론의 가치를 잘 활용한 이 책은 DNA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례들을 통해 현인류의 무지와 위기를 조목조목 짚어 나간다.
  아프리카로부터 온 각지의 인간들은 공동의 조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지역적인 차이와 그로 인해 발생한 문화적 차이로 인해 분명 다양성이 발생했을 것이다. 그런 환경적 문화적 차이가 유전적인 변화를 일으켰으며, 또한 여러 차이들을 양산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차이 역시 지역적 환경적 공통점이 크다면 해소될 수 있는 것들이며, 특히 특정한 곳에서 폄하되거나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 역시 다른 지역에선 그 반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것일 뿐, 폄하될 필요는 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어떻게든 상대를 폄하하고 자신을 우월한 존재로 보이는 정치적 의도는 언제나 나와 같은 인간들을 내 편으로 만들고 나와 다른 것들을 상대편으로 구분하면서 편향적 속성인 인종이란 단어를 통해 상대를 탄압하는데 여념이 없다. 인간의 DNA에 이런 자극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은 안타까울 뿐이지만 현실이 이렇다. 최근 인종의 부정적인 요소로 인해 민족이란 단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지만 그렇다고 인종차별이란 부정적인 요소가 민족주의 내에서 사라진 것도 아니다. 우린 아직도 피부색으로 서로를 구분하고 다른 피부색의 사람들과 공유하길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적이고 환경적인 요소로 인해 갈라진 사람들의 묶음을 영원한 유전자적 속성으로 구분하려는 인간의 저의는 확실히 먹고 살기 위한 것이리라. 그러나 이런 것은 너무 치졸한 것이고, 결국 사회의 구심력을 깨뜨리고 파괴로만 가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지금도 이런 충돌은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다. 어쩌면 인종적 환타지를 통해 현실의 갈등을 정당화하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이리라. 그러나 문화적 구분점인 민족조차 상상으로 만든 공동체란 인식이 널리 인정되는 이 시점에서 어서 빨리 인종차이를 우월의 구분점으로 인식은 어서 제거되어야 한다. 차라리 즐거운 여행지를 떠나는 기분으로 문화적 차이를 바라봤으면 한다. 그래야 세계적으로 다양한 민족들이 어울려 사는 이 때에 좀 더 건설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철학교사 안광복의 키워드 인문학
안광복 지음 / 한겨레에듀 / 201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제나 드는 고민이지만 인문학은 어떤 차별성을 갖고 있을까? 교훈적인 삶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너무 막연하다. 철학이 대표적인 인문학의 한 분야인 것으로 아는데, 철학, 사실 잘 모르겠다. 살아가는 지혜를 찾는 것이라고 한다면 정치, 경제, 경영 등 무수히 많은 학문들이 다루고 있는 분야들이다. 서양철학에서도 철학자가 자연과학자인 경우도 허다했고, 그래서 자연과학이 철학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각자의 영역의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인문학이 이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것이라면 그 때 범주가 너무 넓어진다. 그렇게 된다면 철학박사를 경제학박사와 따로 수여하는 이유를 다시 물어야 한다. 자칫 학계와 교육계에서 자리를 마련하고 보전하기 위한 방편이란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어쩌면 이것으로 인해 철학과 인문학이 위기에 빠졌는지 모른다. 다른 경계선을 이루는 것들보다 철학에서 모든 학문들이 발현해서인지 일치점은 있어 보이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이 지점에서 인문학은 방황한다. 난 누구인가 하는 문제제기 말이다. 그러나 이런 고민, 그렇게 문제되는 것일까? 의학의 육체의 물리적 질환이나 증상을 치료하는 것이라면 인문학은 개인과 사회의 정신적 질환을 치료하는 것이리라. 심리학에 이런 것이 없진 않겠지만 인문학은 뇌와 심리에 다가서는 것이 아닌 보편적 문화와 인간적인 방법을 통해 치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인문학의 개성과 정체성에 조금 다가서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경제학, 정치학, 경영학 등의 사회과학은 물론 물리학이나 화학까지의 자연과학 등 서로 근접할 것 같지 않은 학문들의 모태로써의 인문학은 이런 학문들을 다시 결합시키며, 그것을 통해 인문학의 치료적 성과를 더욱 높이면서 학문이 나아갈 길을 새로 제시할 수 있는 역할도 기대할 수 있다. 즉, 인문학, 죽지 않은 학문이다.
  한국의 교육에서 가장 첨예한 대립과 갈등을 낳고 있는 고등학교 교사인 안광복의 책인 ‘키워드 인문학’은 유연하게 변하고 있는 인문학의 오늘을 보여준다. ‘키워드 인문학’이란 책은 사실 읽기 힘든 구석이 많다. 우선 일관된 주제의식을 찾기 힘들게 구성됐다. 아마도 신문사의 칼럼 위주의 작품들을 한 권으로 엮다 보니 그런 것 같다. 칼럼을 쓸 당시에 첨예하게 갈등한 것들을 적시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또한 칼럼의 특성상 지면의 한계로 인해 사회에 문제 제기하는 내용들은 있지만 그것을 치열한 논리나 구성을 통해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석을 내놓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철학박사 한 명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사회적으로도 문제제기를 통해 새로운 관점과 해결점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다. 또한 칼럼의 단점이자 강점인 당시 시기에 대한 접근이야말로 시의 적절한 도전이란 생각도 든다. 약점은 또 다른 강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앞서의 이야기보다 더욱 중요한 가치를 담고 있다. 모든 학문의 시작으로서의 당연한 권능이겠지만 통합과학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각 칼럼에서 다룬 여러 분야의 책들을 인용하는 형태를 갖추면서 사회적, 개인적 문제에 대한 통합적인 해결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정치, 경제, 심리, 심지어 물리학 등의 저명한 저서들을 동원하면서 각 책의 현명함을 유연하게 동원하면서 저자는 인문학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실증한다. 즉 전혀 다른 방법으로 보이는 학문들을 하나의 목적으로 통합하는 방식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이 책의 강점인 것이다. 오늘의 인문학이 가야 할 길을 적절히 제시하고 있다.
  학문의 목적 중의 하나는 현실 문제의 해법을 찾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현실에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방법이 큰 문제가 없다면 통합하고 새롭게 적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문학은 길거리에 나아가야 하고, 고차원적인 추상적 언어를 구사해서 많은 이들을 내쫓고 마는 우를 조선시대의 성리학처럼 저질러선 안 된다. 함께 할 수 있는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을 통해 지혜를 공유해야 한다. 갈등의 해법은 공유된 지식과 가치가 많을 때 가능하다면 이 책의 시도는 의미 있는 도전으로 보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