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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미술관 - 영혼의 여백을 따듯이 채워주는 그림치유 에세이
김홍기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작가 김홍기의 이력은 무척 다양하다. 전혀 현실적이지 못한 그의 다양한 이력은 처음 책을 들어가는 이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경영학과에 진학했지만 영화인이 되기 위해 연극영화과를 복수전공했고, 다시 회사에선 복식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복식에 대한 눈을 떴다. 그 이후 정말 기이하게도 뉴질랜드로 넘어간 후 발레학교에서 발레를 배웠고 그런 연후에 다시 귀국 후 연세대 경영대학원에 입학 후 1년, 또 다시 Canada의 밴쿠버의 UBC에서 MBA를 마쳤다. 다양한 삶을 살았다고 해야 할 지, 아니면 다양한 스펙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기인이거나 독특한 인생을 살기 위해 그런 다양한 변주곡에 몸을 담지는 않았다. 보다 좋은 인생을 살기 위해 그는 노력했고 앞으로도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그가 세상에 대한 위로와 안식을 주기 위해 책을 썼다.
‘하하 미술관’은 회화를 통해 사람들의 정신적 안식과 위로를 주려는 의도로 쓰인 에세이다. 개별화된 현대인은 육체적 고통은 물론 정신적 고통에 나약하다. 모든 현대의 구성원들이 홀릭에 빠져서 개인화된 인간관계는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만 국한시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간의 대화가 단절되고 소통단절이 심화되면서 위로해주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입장을 견지할 수 없다. 심지어 가족까지도 구성원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구성원이 힘들어 쓰러지거나 극약을 먹는 상황에 이르러서야 심각성을 인지한다. 그 전까지의 단계에선 험난한 정글에서 사는 인간들처럼 그런 것은 이겨내야 한다는 함성만을 지를 뿐이다. 그래서 함께 있어도 위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관계 속에서 미술작품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단절된 속에서의 현대인들의 다양한 모습과 의견을 담고 있다. 조장은의 여성들의 모습에서, 그리고 주정아의 그림들에서 볼 수 있는 화난 얼굴들은 자신들의 불만을 터뜨리는, 즉 할 말을 다하고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완 다르게 이상선의 사랑으로 우는 모습들에서 또 다른 정직한 모습과 대면한다. 또한 앞서의 여자완 다르게 고달픈 샐러리맨들이 된 30-40대 남자들의 모습을 담은 구본주의 작품들은 일상 속에 허덕거리는 남편들의 왜소하고 안타까운 모습을 담고 있다. 이런 솔직한 모습 속에서 현대인들이 어떻게 살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우리들이 뭘 하고 있는지 알아야 치료가 가능하기에 작가는 현실을 직시하는 작품들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솔직함만으로 우리들의 사연을 쉽사리 위로 받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들이 갖고 있는 잃어버린 낭만들에 시선을 돌림으로써 우리들의 소망을 보여 준다. 연애와 행복한 가정에 대한 이상을 갖고 있는 여성을 보여주고 있는 김혜연의 작품들과, 다양한 바비의 이미지를 통해 높은 미적 기준에 대한 여성의 염원을 그린 정두희의 그림, 그리고 냉정한 현대로 인해 낭만화된 과거를 꿈꾸도록 이끄는 김소연의 그림들은 현대인들이 더 이상 가기 힘든 향수로서의 세계로 이끌고 있다.
그러나 앞의 두 가지의 이미지들로 작가가 현대인을 위로하려는 것은 아니다. 현실과 낭만 사이에서 방황하는 주부들을 통해 현대인이 앓고 있는 우울증은 그 부작용인지 모른다. 이런 개인들에 대해서 작가는 화가 전영근을 통해 ‘여행’의 가치를 일깨웠고, 상처를 담고 시간적 성숙을 통해 고통을 벗어나길 조언하는 김순철의 ‘항아리’ 이미지를 우리들에게 제시한다. 이것은 작가 서정희 작품들에서 표현된 ‘발효의 시간’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시간에 자신의 슬픔에 정직하기를 권하는 저자의 생각은 권경업의 붕대를 감은 여인들에서의 눈물을 통해 표현한다.
하지만 이런 개인의 성숙만으론 우리들의 트라우마는 치유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밝힌다. 현대인들이 주변에 시선을 돌리기를 저자는 당부한다. 김정아가 표현한 발레리나들의 관계를 통해 저자는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신자유주의에 의해 치열하게 전개되는 사회에서 동료들의 관계까지 위기에 빠진 지금, 작가는 관계 개선을 통한 복된 인생을 만들기를 제안하는 것이다. 왕열 작가의 ‘동행’이나 ‘신무릉도원’에서의 하얀 새들이 환기시키는 것은 바로 동료애와 그 열매인 것이다. 서로 이해하고 서로 돕는 관계야말로 그가 제안하는 위로인 것이다. 이런 관계는 한 개인에게 많은 행복을 줄 것이다. 그래서 하늘에선 비가 아니라 몸에 좋다는 이영조의 ‘토마토’가 내리게 될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이 책의 표지모델인 이순구 작품들의 환한 웃는 얼굴들을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웃음은 작위적인 것이 전혀 안 보인다. 한국의 전통적 그림에서의 웃음을 재해석했다는 이순구의 작품은 아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돼가고 있다. 거리낌 없고 기쁘기 그지 없어 보이는 이순구의 작품은 어쩌면 웃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잘 될 것만 같다. 어쩌면 웃는 것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하는지 모른다. 진정한 위안은 웃음이니까. 그런 웃음들을 이끄는 것이 의외로 가장 가깝고 소탈한 것이란 것을 작가는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렵지만 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웃는 얼굴이 다소 흉악해 보이는 나도 좀 노력을 해서 웃을 수 있도록 이끄는 관계를 만들고 그래서 신나게 웃도록 해보고 싶다. 나중에 ‘하하 미술관’과 유사한 책이 나올 때 표지모델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