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 이야기 - 고대영웅들의 화려한 귀환
서영교 지음 / 살림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신라인 이야기’란 책은 내가 접근해보지 못한 새로운 내용들을 담고 있다. 삼국시대의 삼국은 물론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알 수 있도록 해주었다. 신라의 탄생과 부흥 과정에서 약자였던 신라는 내부적 갈등을 잘 치유하면서 외부적 국제관계를 십분 이용, 마침내 통일 왕국을 완성하는 과정은 무척 인상 깊었다. 약자였기에 슬펐던 일도 있었지만 그런 위태로움을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는 현자들의 잇따른 출현은 확실히 신라의 복으로 보이며 역사에서의 보편성보단 특수성이 종종 강한 힘을 발휘할 수도 있음을 확인했다.
  동시에 ‘신라인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다만 신라 성골과 진골이란 귀족층의 독특한 인적 구성에서의 차이점이 있었지만 결국 평범한 인간들이 겪는 생활과 감정이 주된 내용이다. 이러기에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상상력을 통해 가공된 은밀한 사생활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고통과 문제의식을 근거로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이 내 주목을 가장 많이 끈 부분이다.
  신라 집권층의 성골과 진골의 구성방식과 그들이 핏줄을 이어가기 위한 김씨들만의 근친혼, 그리고 근친혼에 따른 복잡한 가계구도 등은 내가 알지 못한 부분이었다. 이런 근친혼은 혈족의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방편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특수한 관계 역시 인간의 일반적 속성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혈연관계 역시 최고의 자리인 군주와 권력자로의 도전을 막지 못했다. 그래서 비극이 곳곳에 도사리면서 폭발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선덕여왕의 슬픈 죽음은 최고의 여왕이란 칭송을 받는 한 여인에겐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또한 김춘추와 김유신의 쿠데타 등은 이 책의 흥미를 더했다. 하지만 이런 칼부림은 최고자리를 위한 불가피한 희생인 것처럼 보였다. 군주는 한자리이고 권력자 역시 소수가 차지하기 마련이다. 이를 얻기 위해 도전하는 자들은 같은 혈족임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자신들에 유리할 경우 망설임이 조금 있더라도 결국 반역을 실행에 옮겼다. 결국 혈족이 그들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와 통제, 그리고 전통 등이 군주와 권력자들을 살려주는 것임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또한 진골들의 근친혼이 빚어낸 슬픔은 평범한 이들보다 더 한 고통을 담아냈다. 애장왕, 흥덕왕, 헌덕왕 등 통일신라 후기에 빈번한 왕들의 교체 뒤엔 근친혼에 따른 복잡한 가계구도가 자리잡았다. 숙부와 결혼도 할 수 있는 그런 집안에서 왕위찬탈이 벌어지자 자기 오빠를 죽인 자가 자기 남편인 경우까지 발생했다. 이것을 좋아해야 할지 아님 부정해야 할지 관련 진골집안의 여자들은 고통을 안고 살았다. 하지만 이런 고통이 그녀들의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았다. 적과의 동침이 될 수 있는 이런 관계 속에서 그 어느 누구도 편안함을 꿈꿀 수 없었다. 결국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낸 이런 기이한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피폐해 갔고 전국적인 위기로까지 번지게 됐다. 즉 모두의 비극으로 간 것이다.
  신라는 특별한 나라는 아니었다. 다른 나라들처럼 강성해졌다가 약해져서 없어진 국가일 뿐이다. 이런 국가에 대해 돋보기를 들이밀 듯 저자는 그들의 역사를 기반으로 해서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있을 법한 개연성을 갖고 신라인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저자의 고백처럼 이 책은 엄격한 과학적 근거자료로 작성되기 보단 현대인들의 삶을 유추해서 개연성을 가미한 책이다. 그러나 역사적 자료란 것 역시 반대되는 근거의 발견으로 쉽게 뒤집어 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단일한 역사적 진실이 존재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차라리 문학적 상상력이 과거의 역사를 더욱 생동감 있게 보일 수도 있다. 또한 과거의 역사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주는 것은 역사 그 자체에 있기보단 공유감이 더 큰 요소일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만든 문학적 개연성을 통한 공유감 획득은 신라인이란 과거의 인물들이 바로 우리 옆에서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인간들처럼 보이는 이유라고 여겨진다. 인간은 역시 인간일 뿐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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