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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이벤트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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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들으려 하지만 다른 인터넷음악사이트와 너무 달라 음악 듣기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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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행 - 하얀 어둠 속을 걷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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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시작부터 느낄 수 있는 강한 흡입력과 불운한 매력이 영화 마지막까지 유지됐다. 공포와 기묘한 불운, 그리고 14년 전과 후로의 시간의 기이한 배치는 영화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강한 매력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관객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말이다. 괴이한 원인, 아니 가증스런 원인과 그 희생으로 인해 시작된 이 영화는 그 원인에 의한 비극적 관계와 그로부터 잉태된 탐욕, 그리고 이후의 공포스러우면서도 슬픈 사연들로 뒤엉켜 있었다. 빈곤, 성폭력, 파괴된 가정, 희생을 통해서라도 얻고 싶은 탐욕, 그리고 희생을 의미하는 ‘팜므 파탈’ 등 불운한 것으로 상징되어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또한 비밀이란 코드에 둘러싸여 영화 마지막까지 긴장을 양산시킨다. 또한 인간의 내면적 심리에 강한 영향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이 영화는 어쩌면 신비로움이란 코드 역시 쥐고 있는 지 모르겠다. 그러나 긍정이 아닌 비극의 신비로움이 이 영화의 비밀의 정체다. 
 

  우아함을 지켜주는 검은 불행. 그래서 ‘하얀 어둠을 걷다’인가 보다. 영화는 야멸찬 진실을 하얗고 우아하게 형상화한다. 그러나 그런 우아함 속에 감추어진 거친 속내는 잔혹동화였다. 우리들의 현실을 날카로운 칼로 도려내는 듯, 영화에서 보여준 현실은 냉혹을 담고 있는 거짓말로 만든 사회다. 약자이기에 성적 노리개로 전락한 어느 미소녀의 하얗고 우울한 모습, 그리고 그것을 보고 괴로워하는 가해자의 가족, 그리고 딸을 노리개라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는 절박함을 갖고 있는 희생자의 엄마 등 영화의 거의 모든 캐릭터들은 현실에 대한 가혹함 앞에 무기력하게 서있을 뿐이다. 
 

  괴기한 탐욕의 희생자가 세상에 대응하는 방식은 하나였다. 그렇게 된 자기의 현실과 배경에 대한 증오와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 그것이었다. 이를 위해 육체적 헌납은 물론, 자신의 과거를 송두리째 바꿨으며, 자신의 과거의 가족을 소멸시켰고, 또한 믿을 수 없는 미래를 담보로 자신을 사랑하는 상대를 악용하는 것이었다. 즉 팜므 파탈이다. ‘카르멘’으로 대표되는 캐릭터로 문학에서 자주 이용하는 이 팜므 파탈 이미지는 이 영화에서 아름다운 백조의 모습으로 관객의 시선을 이끌고, 우리들이 되고자 하거나 갖고자 하는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그러나 그 이면의 모습에서, 관객은 당혹감과 고민, 그리고 현실의 냉혹함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엄연한 현실임을 자각한다. 

  우아함을 선사 받은 ‘미호’는 ‘지아’라는 과거의 어두운 비극을 지우고 아름다운 흰 옷 뒤편에 숨겨진 물질에 대한 탐욕을 얻기 위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인다. 이런 그녀를 위해 14년 전 사건의 모든 것을 만들었던, 그녀를 사랑하는 ‘요한’은 그녀의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들을 파멸하면서 그녀를 위한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이름의 요한이란 이름을 가진 그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아니면 자신의 어두운 현재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현대인처럼 말이다. 이런 그들의 중간 어디쯤에 자식을 잃어버린 과거로 얽매인 형사 동수 역시 그 무엇도 해결할 수 없는 방황하는 어느 현대인이다. 다시 한 번 수사를 하면서도 그의 목적은 뚜렷하지 않았다. 억지스런 표현이라면 형사란 책임감과 아니면 죽은 아들에 대한 미련? 하지만 그는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범인을 잡아, 관련자들의 비극을 끊지도 못했고, 어둠 속에 헤매고 있는 성자의 이름을 지닌 요한도 구원하지 못했다. 그는 어설픈 집착만을 보였다. 어쩌면 그는 마지막까지 아무 것도 못하는 무기력한 현대인을 상징하는 것만 같다. 또한 그 역시 순수한 마음을 지닌 지아를 버린 미호의 욕망의 희생자인지 모른다. 
 

  폭력에 의해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혀 타인의 희생을 발판으로 그것을 이루려는 미호와 사랑과 과거의 슬픈 인연으로 인해 불편한 탐욕을 이루기 위한 말 잘 듣는 살인기계가 되어 버린 요한, 그리고 잡지도, 잡을 수도 없었던 무기력한 형사 동수의 모습은 가혹한 현실 앞에 철저하게 파괴된 현대인들의 자화상처럼 느껴졌다.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희생해야 했던 것들은 어쩌면 그들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해줄 수도 있었던 긍정적 원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들 것 얻지 못했다. 의도하지 않은 상실을 경험하고 그들은 가슴 어느 곳에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갈 불행한 자들이었다. 
 

  무섭다. 영화의 내용 하나하나는 비밀스런 포장지로 감춰진 욕망과 그 앞에 무기력하게 파괴되는 현대인이 보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탐욕을 위해선 결국 타인의 희생을 요구해야만 하는 지금의 이데올로기가 다시금 여기에서 재현되고 있어 보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팜므 파탈의 욕망이 영화 후반기로 부각되고, 그 욕망을 위해 타인을 희생하는 자의 여린 마음과 언뜻 드러나는 인간적 양심, 그리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그의 비관적 인생관들을 관객들은 불편하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시체 위에 피는 꽃들은 결국 시들게 된 것을 관객은 결국 목격했다는 점이다. 

  부자이자 딸이 있는, 과거가 있는 남자의 아내가 된다는 것은 물질적 탐욕을 상징한다. 팜므 파탈에게는 사랑은 부차적인 욕심일 뿐이다. 특히 파멸되고 희생된 경험을 가진 자에겐 말이다. 희생되고 파멸을 경험한 자에게 인간적 매력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일 것이다. 어쩌면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 늘어나는 현대인에게, 사랑은 조건에 좌우되는 것이라고 팜므 파탈은 냉정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욕망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아름다운 백조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과거의 내면적 Trauma를 지닌 미호는 보여준다. 그리고 그녀의 행동과 판단은 지독한 역설이면서도 너무도 타당한 진실임을 지금까지 살아오고 앞으로도 살아갈 관객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관객들은 그런 냉혹한 진실을 긍정할 만큼 사회는 슬픈 서사를 계속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력한 사랑을 위해 헌신하는 요한은 어쩌면 현대인이 생각하는 로망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는 파괴된다. 살인하면서도 잔인하지 못한 그의 우울한 모습에서 살인해야만 하는 당위성보단 그런 그에게 밀어닥친 불운한 운명이 너무 야속해 보이기만 하다. 그래서 불운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가 범인으로 잡혀야 하는 역설적 당위가 이 영화에서 존재하고 만다. 하지만 그는 악용되고 희생됐고 잡히지 못한다. 그는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그의 불행은 그러나 누구를 사랑해서 탄생했다기보다 물질주의 앞에 무력하게 무너진 인간의 아름다운 정서로만 느껴질 수는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름다운 사랑을 담은 로맨틱 서사이겠지만 현실은 누군가의 물질적 탐욕을 위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영화가 던져주는 이야기는 너무 아프다. 잔혹동화의 결말이 언제나 불행이듯, 영화 마지막에 보이는 피의 색은 그래서 너무 짙고 붉었다. 그가 본 여인의 모습은 미호가 아닌 지아였던 것은 갈망했지만 얻을 수 없는 인간의 순수한 내면일 것이다. 이미 미호에겐 그런 매력적인 지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질 앞에 인간미가 얼마나 허약한지 너무 서글프게 구체화했다. 
 

  이 영화의 매력은 멋진 서사에만 있지 않다. 고수의 연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그의 주변엔 한석규와 손예진이란 뛰어난 배우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고수에 매력이 이 영화의 핵심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는 상처 입은 어느 남자이자 잔인한 살인을 하기엔 너무 연약해 보이는 심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사랑이란 덫에 잡혀 있는 불행한 남자의 복합적인 캐릭터를 뛰어나게 연기했다. 그는 영화에서 웃지 않았고 언제나 누군가를 처다 봤다. 그러나 영화 어느 곳에서도 그의 사랑에 대한 답변으로 방긋 웃는 어느 여자의 미소를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같이 찍힌 사진에서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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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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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잘 읽히는 베스트 셀러 소설인 1Q84를 읽는다고 결정한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인기 있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노벨문학상 후보에 점차 거론되고 있는 이상, 하루끼의 작품은 실망시키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좀 아쉽다면 그의 이전 작품을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정도. 그래서 그가 바라보고 그가 창작한 세상을 경험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그리고 1Q84 1편을 다 읽었다. 그런데 좀 당황했다. 그의 소설은 예상 밖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었다. 
 

  소설의 인물들은 그다지 유쾌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도시 속에 살면서 동경하고 있는 것을 품안에 안고 사는 도시인들이라고 할까? 특히 주인공들은 말이다. 과거 이상한 종교집안 출신이면서 그 집을 나와 독립해서 살면서, 살인하고도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는 '아오마메'나, 어릴 때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를 자신의 친부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학원 수학선생 '덴고' 역시 희한한 인간들이다. 덴고는 어린 학생의 작품을 개작하면서 범죄라는 인식을 하는 덴고는 아무리 좋게 봐도 현실 적응자라고 보기 어렵다. 대충 도시에서 살면서 사회와의 충돌을 피하면서 사는 마이너러티 정도로 보인다. 이런 두 주인공의 마음 속에 담겨 있는 세상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다. 어딘지 모를 상처 입은 존재들로서 사회에 대한 비관적 인식과 함께 현대사회에서 독특한 사고를 지닌 자들의 유형이다. 
 

  이런 그들을 둘러싼 배경의 인물들 역시 괴이하긴 마찬가지다. 성폭력에 대한 응징으로 살인을 교사하는 ‘버드나무 저택’ 노부인과 그녀의 명령을 받을 때 무슨 짓이라도 할 '다마루', 그리고 책의 편집자이면서, 대놓고 작품을 개작하라고 요구하는,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처럼 타인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고마쓰’와 일주일 동안 좋은 아내로 있다가 금요일 낮에 섹스 한 번 하겠다고 덴고에게 오는 연상의 걸프렌드 등 현재 자신들이 위치하고 있는 곳에서 결코 행복할 수 없어서인지 일탈을 다양하게 하고 있는 인간들로 넘친다. 또한 사회에서의 시시비비를 가릴 줄 알면서도 자신의 목적을 위해 불법을 묵인하는 '에비스노' 선생 역시 어쩌면 비슷한 인간군형에 속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자신의 은밀한 비밀을 갖고 있는 이들로 뭉쳐져 있는 곳이야말로 현대인들이 살고 있는 세상일 것만 같다. 사연과 비밀 많은 세상, 이것으로 현대 사회는 느릿하면서도 계속 변하고 있는 것이다. 속임 받는 자와 속임을 자행하는 자들이 뒤엉킨 세상, 그 속에서의 인간들은 매우 불안해만 보인다. 
 

  소설 전체에서 압도적으로 느낄 수 있는 사회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어쩌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세상의 진면목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모더니스트이다. 사회 속에서 사는 사람들의 가련한 모습을 담고 그것들을 중심으로 서사를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인지 아오마메가 갑작스레 느꼈던 사회의 미묘한 변화와 밤 하늘에 갑작스레 떠있는 두 개의 달은 현대인이 알지 못하는 사이 변화되고 있는 사회로의 대유일 것이다. 소설에서의 1984년이란 과거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지만 변화의 일면을 담고 있는 점에서 현대와 같다. 즉 소설에서처럼 평범하면서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오게 되는 변화의 시기일 것이다. 소설에서 나타난 고민은 바로 그런 변화를 느끼기 시작할 때 인간은 불안과 공포, 혹은 미래에 대한 염려를 보여준다. 
 

  그런 혼란한 시기에 어떤 행위이든 만족스런 것은 없을 것이다. 사회적 당위 자체가 물음의 대상이 되는 순간, 현대인은 어떤 것에 기댈 수 없고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아마도 두 개의 달이 떴음을 주위의 사람들에게 물어볼 용기조차 사라진, 혹은 자신감조차 사라진 ‘아오마메’의 모습에서 유추되는 인간들이 1Q84라고 표현된 사회든, 2009년의 현재이든 만연해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자신들의 행위는 그 어떤 기준으로도 평가될 수 없다. 기준은 행동에 영향을 줄 때 힘을 발휘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경찰이 찬 총이 지금 현시점에서 타당한 것인가 아닌가를 따질 만큼 현실에 대한 혼돈이 빚어질 때, 사회적 혹은 내적 기준은 그 순간부터 타당성과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믿어야만 행복할 것 같던 세상은 더 이상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 그래서 아오마메와 덴고가 만나는 세상은 위험하고 불안하면서도 결코 벗어나기 힘든 그물이 된다. 그 그물을 벗어난다 해도 과연 그것이 행복을 보장해줄 지는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겁하든 불법이든 어떤 것도 그냥 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판단할 기제가 없다는 생각이 앞서면 말이다. 
 

  그러나 그런 행동들이 자신감과 확신이 사라진 사람들에게 만족과 행복을 줄 수 있을까? 아마도 소설의 작가는 긍정적이지 않을 것만 같다. 특히 1편에서는 말이다. 그들은 언제나 그리워할 뿐, 그 어떤 것도 해결할 수 없는 그저 그런 인간들일 뿐이다. 자신을 이끌 어던 지침이나 믿음이 사라진 현대인의 고뇌 속에서, 그에 대한 해법 역시 아득하긴 마찬가지다. 
 

  무기력한 인생을 사는 덴고와 적극적이지만 세상의 기존 질서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아오마메는 다르지만 같은 속성이 존재한다. 현실에 대한 냉소가 그것이다. 1편에서의 덴고와 아오마메는 기존 질서를 믿지 않으며, 또한 그에 기대어 살지도 않고 그에 따라 자신들의 행복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제도나 공권력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자기 멋대로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갈 것이다. 편집장 고마쓰가 만든 세상에 쉽게 끌려 다니는 그의 모습에서 잘못됐지만 억지로 떠밀려가는 그의 모습에서 약해만 가는 현대인이 있다면 성폭력을 한 자들에 대해 이독제독(以毒制毒)으로 사형을 집행하는 아오마메의 모습에서 현실의 부도덕을 질타하는 현대인의 비감이 서려 있다. 둘 다 세상이 정해놓은 질서에 따라봐야 결국 불행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서슴없이 하는 것이다. 
 

  이런 그들에게 새로운 기연이 갑작스레 다가온다. 오는 과정은 다르지만 괴이하고 공포스러운 ‘리틀 피플’이란 존재가 지배하는 곳이다. 기이하고 아름다운 매력의 ‘후카에리’의 ‘공기번데기’를 개작하면서 덴고가 만나게 됐다면, 아오마메는 불행한 성폭력을 당한 10살의 ‘쓰바사’를 통해서이다. 서로가 다른 길을 따라 만난 사회이지만 이 두 주인공이 맞닥뜨린 사회는 사이비 종교와 혼탁한 정치, 그리고 잘못된 믿음으로 뒤범벅이 된, 인간의 탐욕과 잘못된 판단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1편에선 그 세계와 마주치게 되는 이 둘의 우연한 만남으로 이야기를 종결한다. 
 

  두 주인공이 만나는 사회가 무엇이든 현실에서의 사생아일 것이고 잘못된 관행과 제도, 심지어 만행이 정당화되는 사회일 것만 같다. 왜냐 하면 후카에리와 쓰바사라는 내면적 trauma를 지닌 인물들이 그 사회에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불행한 영혼들을 관련하여 등장하는 덴고와 아오마메, 두 주인공 역시 현실이란 공간에서 결코 행복한 존재들은 아니다. 소설에서의 저자가 제시하는 현실이나 ‘리틀 피플’의 세상 모두 만족할 만한 사회는 아니기 때문이다. 고통을 받는 자들이 고통을 당한 자들을 위해 뛰는 이상한 소설이 바로 ‘1Q84’인 것이다. 그 둘이 경험하는 두 가지 세상은 현실과 이상향의 공존처럼 되어 있는 것이 아닌 공통의 문제를 갖고 있는 세상들임은 분명하다. 
 

  양쪽의 세상에서 그들은 힘들고 방황할 것만 같다. 그리고 행복을 그리워할 것이며 또한 따뜻한 마음의 이성을 기대할 것이다. 마치 현대인처럼 말이다. 다만 그런 방황 속에서 힘든 여정이지만 세상에 대한 희망을 찾았으면 한다. 살아가는 공간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면 그들의 마음 속에서의 갈망을 현실적이면서도 현명하게 처리하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말이다. 과연 그런 서사로 2부가 구성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인간을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과의 연대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자 방법이다. 그런 연대 속에서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 소설의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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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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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상이 공존하면서 인간의 이야기를 참 아프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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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에 휴식을 묻다 : 52명의 작곡가가 말하는 휴식 [10CD]
드뷔시 (Claude Achille Debussy) 외 작곡, 바렌보임 (Daniel Ba / 소니뮤직(SonyMusic)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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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놀랬다. 10장 CD의 가격이 24300원일 뿐만 아니라 음반 퀄러티의 대단함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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