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의 어둠/의외의 선택, 뜻밖의 심리학/자본주의 역사로 본 경제학 이야기>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토요타의 어둠 - 2조 엔의 이익에 희생되는 사람들...
MyNewsJapan 지음, JPNews 옮김 / 창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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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선정적이라고 느꼈다. 그냥 인기에 목마른 어느 저자의 치밀한 판매전략이라고 느껴졌다. 또한 다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체념도 한 몫은 했을 것이다. 삶이 각박해진 21세기의 시작을 기점으로 세상은 나 아닌 다른 이들의 이야기와 세상에 무관심해졌고 또한 각박한 삶이 연이어지다 보니 솔직히 귀찮아한다. 자기 일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서 어둠이란 단어가 제목에 있을 때, 다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푸념도 했고, 그리고 저자에 대한 비난도 했을 것이다. 각박해진 삶 때문에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또한 일종의 ‘귀찮니즘’이 두드러진 이 시점에서 일본의 대기업에 대한 실상을 소개한 이 책은 그렇게 귀찮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책을 읽는 순간, 세상에 대한 무서운 진실을 알게 된 것만 같다. 그리고 묘하게 겹치는 한국의 실상, 그것은 사실상 신자유주의가 세상에 무엇을 남겼는지 하는 공포를 일깨웠던 것이다.
  2010년에 도요타 자동차의 전세계적인 리콜 사태가 벌어졌고 그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미국으로부터 시작한 이 리콜 사태를 보면서 처음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시작이 된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연이어지는 다른 나라에서의 리콜, 그 중엔 한국도 있다. 묘하게 겹치지만 어떤 점에선 국가 이익에 우선한 리콜 사태라고 해도 틀릴 성 싶지는 않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바로 도요타 자체에 있었다는 것을 책, [토요타의 어둠]이란 책을 통해 알게 됐다.
  대기업이 휘두르는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작은 북한’이란 표현처럼 토요타 회사에서의 생활은 가히 군대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형편 없는 다다미의 네 장 반짜리 독신기숙사에서 토요타 사원의 첫 시작을 하게 되고, 세상과 결별한 채, 거의 모든 생활을 토요타의 업무에 의존하게 되는 사원들의 모습은 세계경제대국 일본의 한 단면을 보는 것만 같았다. 최근의 경제불황에서 발생한 것이라면 몰라도 그들은 경제 신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시작된 것이고 지금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다는 것도 놀랍다. 또한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의한 과로사의 한 예는 소설 속의 어느 불운한 주인공의 말년을 보는 것만 같아서 씁쓸했다. 잘 살 것만 같았던 일본인들의 일상에 대한 신화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또한 노조에 대한 탄압은 일본의 수준 낮은 기업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그런 경향이 국제적으로까지 문제를 일으키는 필리핀 등의 사례를 보면서 일본은 그냥 잘 살고 GDP 높은 국가일 뿐이란 느낌을 받았다.
  여기에 소비자의 목숨을 개의치 않는 판매전략은 오늘날의 전세계적인 리콜 사태의 진정한 주범이란 것도 마침내 느꼈다. 그들은 그렇게 형편없는 기업인 셈이다. 누군가 죽어도 개의치 않은 그들의 만행은 솔직히 공포스러웠다. 자동차는 어쩌면 흉기인 셈이다. 운전사가 어쩌지 못하는 흉기 말이다. 이런 위험한 기업을 후원하다시피 하는 일본의 정부와 관료는 전형적인 문제아들의 사회임을 보여준다. 소위 부정부패가 만연했던 구한말의 모습을 되새김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할까? 그들은 그렇게 공모하고 있고, 그렇게 타인을 가혹하게 다루고 있으며, 자기들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에 절어있는 것이다.
  일본, 돈은 많겠지만 잘 사는 나라는 아닌 것만 같다. 한 가지 예로만 평가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어느 누군가가 있겠지만 문제는 그런 위험한 기업을 통제할 수 없는 일본의 기형적인 신자유주의 국가 시스템에 있고, 이를 묵인하고 그렇게라도 자신만 먹고 살면 된다는 일본 국민들의 이기주의가 숨쉬어 있다. 이런 시스템이 발목 잡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에 우선한 기업우위정책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 일본 사회는 바다 건너 매우 위험해 보인다.
  신자유주의는 최근 들어 그 악폐를 전세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장과 기업이 모든 인류를 살려줄 것이라는 잘못된 신화가 꺾이는 요즘, 토요타의 어두운 단면은 역시나 기업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 없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느끼게 한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짓이라도 서슴지 않는 그들은 분명 통제되어야 할 대상인 것은 분명하다. 또한 토요타가 한 짓은 한국의 재벌들의 만행과 많은 부분에서 겹쳐 있다. 구사대란 명목으로 노동자들을 두들겨 팬 재벌들의 만행에 대한 자료는 풍부하다. 한국의 재벌들은 또 다른 토요타를 꿈꾸고 있다는 증거들 말이다. 그리고 그런 만행에 눈감고 나만 무관하다면 상관 없다는 일본인의 마음 역시 한국인들에겐 많을 것이다. 한국인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다. 그리고 또한 토요타가 사회에 끼친 부정적인 현상들을 아무 탈이 없었으면 하고 겪고 살고 있을 것이다.
  위험하다.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육체적 생존을 추구하려는 모습은 ‘올리버 트위스트’란 소설에서 나오는 비참한 인간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고, 결국 모두가 힘든 인생을 살고, 또한 사회가 파멸해갈 수도 있다. 한국의 인구가 주는 이유 역시 알고 보면 멋대로 굴고 있는 재벌의 만행을 다루지 못하는 무능한 사회의 통제 시스템이며, 한국은 너무나도 기묘하게 일본과 닮아 있다. 어쩌면 일본의 하락을 답습하는 것 역시 무관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두 나라는 과거의 은원으로 인해 서로 으르렁거리면서도 사실은 형제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언젠가는 해야 할 대기업과 재벌에 대한 통제를 할 수 있는 장치를 사회적으로 마련하지 않으면 국제적인 시장에서 한국의 재벌의 제품 역시 리콜을 당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보호주의를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런 기업의 만행을 국내에서 살고 있는 소비자들이 계속 당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자성 역시 매우 필요한 것이다. 그것을 하지 못하는 동안, 한국 역시 잘 사는 겉모습만 있을 뿐, 사실은 위험사회의 어느 누구일 뿐이란 것을 조만간 몸으로 느낄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우린 위험한 곡예를 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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