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형제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영화에서의 인물들은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됐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한국에서 살기에 힘든 이유를 갖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공작원으로 남파된, 소위 간첩이라고 하는, 북한 공작원, 그리고 그를 쫓지만 공명심에 눈먼 경찰, 그리고 이후 그들이 잡아 들이려는 외국인 노동자와 해외 결혼여자 등 한국사회에 적응하기에 힘들어서 낙인이 찍힌 사람들이 그들이다. 소위, ‘루저’들이다.
  그런 그들은 남한에서 살려고 한다. 각자의 원래 의도가 무엇이든 치열하게 남한에서 살려고 했고, 또한 그들 상당수는 쫓기고 있다. 생존을 위해 도망해야 하는 그들은 분명 한국사회에선 2등 국민일 뿐이다. 그런 그들을 상대로 돈을 벌어야 하는 전직 국정원 직원 이한규(송강호) 역시 그렇게 우아하게 보이지 않는다. 먹고 살기 위해 국제결혼이나 막노동 등을 해서라도 머나먼 타국에서 생존하려고 아등바등 하는 사람들을, 돈을 받거나 현상금을 위해 사냥하듯 잡아들이면서, 경찰이나 그들을 착취한 이들에게 넘기는 악덕 인간사냥꾼을 하는 전직 국정원 팀장에게서 남한이란 세상의 냉혹함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런 그 옆에 적의 동태를 탐지하려는 목적으로 함께 있기를 자처한 남파 간첩 송지원(강동원)의 생활은 불안할 뿐이다. 오랫동안 남한에서의 그의 생활은 언제나 쫓겼고 또한 불안의 연속이었다. 그런 둘의 불안한 동거는 무척 기묘했다.
  불안한 동거, 그들은 함께 산다. 그러나 간첩과 전직 국정원 팀장의 동거는 음모에 기인한 것일 뿐 상대에 대한 호감을 갖고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상대를 알기 위해 위험한 호랑이굴로 들어갔고 상대의 정체를 알면서도 더욱 큰 포획을 위해 그를 받아들인 전직 국정원 팀장의 동거는 그래서 우울하다. 이미 상대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고자 하는 행태를 위해 마련된 동거였기 때문이다. 상대를 알아야 생존할 수 있는 정글의 법칙을 남북한에서의 자신이 소속된 국가기관으로부터 철저히 교육을 받아서인지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서로간의 진실을 감추기 위한 억지스런 웃음들은 관객으로 하여금 소름이 끼치게도 하고 가련하게도 보인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감시하기 위해 함께 산다.
  이렇게 사는 그들이 공존하는 어느 오피스텔의 방은 결국 감옥이 된다. 상대를 철저히 감시하기 위해 추적하는 장면은 그들의 우아하지 못한 삶의 연장이 무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의 불행한 인연으로 그들은 서로를 옭아맬 것들만 찾아 다녔고, 자신의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그리고 상대에게 가장 큰 아픔을 선사하기 위해 그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계속 위장된 생활을 서로 반복하게 된다. 어쩌면 한반도에 함께 공존하는 남한과 북한이란 적대국이 갖고 있는 생활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은 사실 그렇게 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변한다. 그렇게 함께 사는 가운데 서로에게 확인할 수 있는 인간적인 매력은 그들에게 잔잔한 파문을 던지며, 어느 순간 상대의 가치와 인간미, 그리고 상대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아마 영화가 보여주려는 부분이 여기서부터 시작일 것이다. 배려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상대에 대한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인간관계로 그들은 발전하게 됐고, 함께 살면서 한 때 적이었던 대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리고 지금 그들은 어떤 상황에 몰렸고 또한 어떻게 버림받았는지를 알게 되면서 그들은 또 한 번 변한다. 그리고 그들은 친하게 된다. 

  이런 그들의 묘한 우정은 번잡한 형식은 없었지만 자연스레 의형제로서의 관계로까지 확대된다. 그래서 상대를 위한 추석의 제사상에 자신이 아닌 의형제의 부모에게 절을 하는 장면은 그들의 진보된 관계를 확인하는 자리가 된다. 그리고 그들의 과거의 관계가 무엇이고, 또 어떻게 흘러왔던지 간에 지금 성장한, 성숙된 의형제라는 관계로의 진보는 분명, 관객은 물론 한국사회가 꼭 가고 싶어하는 이상적인 단계일 것이며, 추석 이후의 다양한 긴장과 볼거리는 그들의 우아해진 관계를 증명해주는 자리가 된다. 
  남북한에서 적으로서 만난 두 남자의 진보된 관계 발전은 관객들로 하여금 무척 강한 인상을 줬을 것이다. 또한 그런 관계 뒤로 보게 되는 ‘라이 따이한’과 어려운 국가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들 역시 이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내용들이다. 어쩌면 분노로 얼룩졌던 남북한 관계 역시 발전할 수 있는 만큼 해외이주노동자들과의 관계 역시 진일보한 측면으로 발전할 수 있고, 그리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로의 발전을 넌지시 던져주고 있다. 아마도 감독의 마음엔 남북한만의 갈등이 아닌 남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공동체 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이 영화에 숨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의견에 동감한다.
  영화의 줄거리와 구성만이 이 영화의 볼거리는 아니다. 그 가운데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송강호, 말이 사실 필요 없다. 영화의 수준이나 흥행성에서 혹시 문제가 생겼을지언정 연기력으로 악평을 받은 것은 아마 없을 것이다. 억지로 찾자면 그의 초창기로 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강동원은 조금 달랐다. 2009년에 이어 올해도 인기몰이를 하는 ‘전우치’는 그의 코믹한 매력이 빛이 났지만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연기력이 보였다. 그런데 이번의 ‘의형제’에선 놀라운 변신을 보여줬고 아마도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배역을 얻은 것 같다. 일년도 안 되어서 그는 더욱 Upgrade된 채로 우리들에게 온 것이다. 그의 발전된 변화를 볼 수 있어 좋았고, 그의 다음 작품이 무척 기대된다. 그리고 실망시키지 않을 것 같다는 확신이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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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ek 2010-03-24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俠'이 아닌 '관계'에 관한 영화였군요. 장훈 감독이 김기덕 감독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영화를 찍은 것 같아 다행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novio 2010-03-24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관계에 관한 영화입니다. 한국 영화의 새로운 모습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