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롬파리 위드러브 - From Paris with Lov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제목과 내용의 불일치, 아마도 From Paris with Love란 제목은 반어법인 것 같다. 격렬하고 멋진 액션이 넘쳐났지만 영화 내부에 존재하는 사랑은 부차적이고 심지어 목적을 위한 수단 정도일 뿐이다. 인간의 허약한 관계가 폭로된 그런 영화다. 흔하지만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이혼이 넘쳐나고 타인에 대한 믿음이 낮아진 지금, 영화에서 보이는 그런 류의 관계는 사실 비극일 뿐이다. 그런데 이 영화, 그것만이 아니었다.
  신나는 폭력 속에 보이는 것은 동서양의 치열한 분쟁이었다. 그것도 미국적 시각을 통해 본 선과 악의 대결이랄 수 있었다. 프랑스 파리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일하는 정보요원들은 신나게 해외에서 액션을 겸비한 활약을 보여준다. 그런데 과연 영화의 배경이 프랑스인지 아님 어느 국제도시의 한가운데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프랑스 파리는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보지 않았으니 영화를 통해 추측할 뿐인데, 미국에서 파견한 정보원이 프랑스 입국 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터져 나온 프랑스에 대한 비난은 사실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1차, 2차 대전에서 살려줬다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장면은 아무래도 미국이 갖고 있는 프랑스에 대한 자존심을 표현한 것이리라. 사실은 사실이지만 미국독립전쟁 시, 프랑스가 도와준 기억은 왜 사라졌는지 알고 싶었다. 국제정치란 것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프랑스를 도와준 것도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바라볼 문제지 은혜를 알아라 하고 다그칠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미국적 시각이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 정보원이 총질을 하고 공격하는 대상은 프랑스인이 아니라 아시아 출신들로 이루어진 마약 단체이며, 그 이후 나오는 파키스탄의 회교 테러리스트들이다. 아시아에 대한 은근한 반감이 드러나는 대목이란 사실을 관객은 은연 중 느꼈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경영하는 중국식당에서 총질을 하는 장면이나 파키스탄 출신의 마약 밀매업자들을 상대로 한 ‘람보’식의 총질과 살해는 멋진 액션 뒤에 숨겨진 편향된 세계관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보면서 아시아인들의 무능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한두 명의 미국 정보원에 두 자리 수의 아시아 악당들이 맞고 넘어지는 장면은 가히 장관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의 설정은 무척 안타까웠다. 굳이 역사적 근원을 따져서 왜 회교도들이 폭탄테러를 하는지를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왜 매번 사건을 치고 문제를 만들고, 그리고 시체 하나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야 할 대상이 회교도인지 모르겠다. 미국의 만행에 눈감는 것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왜 하필 유럽의 한복판에서 그렇게 무참히 망가져야 하는지 영화를 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에서 공산주의 몰락 이후의 새로운 문젯거리로서 지목된 아랍 회교주의자들은 확실하게 악당으로 되어야만 했다. 과연 미국은 그들을 욕할 만큼 좋은 국가인지 물어보고 싶었다.
  영화는 너무 거칠다. 그 속에 보이는 선입견으로 가득한 미국적 시각도 그렇지만 그들이 다루는 다른 민족에 대한 거침은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터미네이터’ 역시도 기계인간에 대한 다른 시각을 만들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미국인들의 구미에 맞는 영화 스토리와 스트레스 해소를 하려는 듯 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보려니 좀 가슴이 아프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나만 그런 듯 하다. 그러나 가슴 아프다. 중국인이나 파키스탄인들이 먼 타국에서 미국의 멋진 총알대상이 된다는 것은 결국 또 다른 인종차별이라 할 수 있다.
  그나마 봐도 좋은 것이 있었다. 올바르고 정직한 한 미국 정보원의 인간성 파멸이었다. 상대를 배려하거나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알았던 젊은 첩보원은 그가 겪은 무섭고 파괴적인 상황으로 인해 거칠고 모진 인간으로 변해만 갔다. 그가 사랑했고 자신을 사랑했을 것만 같았던 사랑의 인간관계가 파괴된 이후, 인간적 성숙을 이루는 것과 같은 서사를 갖고 있는 것은 동조를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세상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 분노를 통해 성숙한다고 할까? 그나마 좋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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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ek 2010-03-15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007 위기일발(Form Russia with Love)>을 연상시키는 제목이었으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 수 있었을텐데... 제목의 뉘앙스를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렇다고 <위기일발 첩보원> 뭐 이런식으로도 지을 수 없고.
그나저나 예고편에서 본 존 트라볼타의 모습은 굉장히 충격이었어요!
>,.<

novio 2010-03-15 21:01   좋아요 0 | URL
트라볼타의 변신은 반길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기자의 변신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니까요. 아마도 영화 마지막에서 사랑을 갖고 프랑스를 떠날 수 있단 의미를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멋지게 일을 해결하고 좋은 만남도 갖고. 다만 사랑보단 우정이 더 좋지 않았나 생각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