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2월 5주

성장통 成長痛  명사  <신어, 2003년> (국립국어원 '신어'자료집에 수록된 단어) 

[명사]① <의학> 어린이나 청소년이 갑자기 성장하면서 생기는 통증. 또는 그와 비슷한 현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주로 양쪽 무릎이나 발목, 허벅지나 정강이, 팔 따위에 통증이 생긴다.


‘성장통’이란 말이 2003년에 나온 신조어라는군요.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겪는 다양한 통증을 이야기했지만 이제 육체적 고통보다 성장 과정에서의 정신적 고통을 이르는 말로까지 확장하고 있는 말 같네요. 최근 영화에선 어린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는 피할 수 없는 이 정신적 고통을 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세상과의 접촉은 어른이 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마냥 행복하지도 않지만 이것을 이겨내야만 하는 것 역시 청소년이 해야 할 임무입니다. 이런 책임을 느끼면서 세상과 접촉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며, 그를 통해 책임감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어른은 책임의 동의어와 같기에 그런 세상과의 접촉은 건강한 어른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과정일 것입니다. 이런 중요한 과정을 담은 영화들이 세 편이나 있네요. 그 영화들은 [에반게리온: 파], [바람], 그리고 [천사의 속삭임]입니다.  
 

에반게리온: 파 

어른으로 가는 험난한 길을 형상화한 대표적인 영화가 [에반게리온: 파]입니다. 영화 에반게리온은 많은 대조를 갖고 있는 영화입니다. 전통과 현대의 대립, 세대간의 대립 등 무거운 대립들을 다룬 영화입니다. 그 중 아버지와 아들, 신지와의 대립은 이 영화에서 가장 큰 대립입니다. 책임을 중시하는 기성세대의 눈엔 젊은 세대의 개인주의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성장통의 핵심은 나 아닌 타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런 사람들과 더불어 살면서 짊어져야 하는 공동체 내에서의 책임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어른은 바로 책임감을 우선시하는 삶을 살게 되는 인생의 단계입니다. 결코 원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을 짐으로 의식하는 시기가 바로 성장통을 겪는 시기입니다.  


에반게리온은 신지의 정신적 고통의 원인이 바로 이 성장통입니다. 세상과 단절한 곳에서 살고 싶어하는 신지이지만 아버지로 대변되는 사회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강요는 신지의 고통의 원인 중 가장 큰 것입니다.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은 곳에서 살고 싶은 신지에겐 에반게리온을 몰아야 한다는 것은 가장 싫어하는 책임입니다. 그나마 아버지의 관심을 얻기 위한 정도이기에 에반게리온 초호기를 탈 뿐, 인류를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그의 모습은 철저한 개인주의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신지도 점차 타인을 알게 되고, 그러면서 책임에 대한 가치와 의무감을 배우며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관계에 눈을 뜨게 됩니다. 
 

바람 

[바람]은 의외의 신선한 바람을 한국영화에 던져주었습니다. 청소년을 위한 영화였지만 19세 등급을 받아서 아쉬움을 전해 준 이 영화는 제멋대로인 어느 고등학교 학생이 좀 더 거칠게 세상과의 조우를 하게 되고 폭력과 담배, 그리고 폭력배 등으로 상징되는 거친 사회에 가깝게 가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가족 구성원들과의 거리감이 생기고 자신만을 위한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건강의 문제를 알게 됐고 가족이란 존재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슬픈 성찰을 합니다. 즉 개인만 존재했다고 생각했던 세상에 아버지의 헌신과 가족의 사랑이 자기 주변에 있음을 좀 늦은 시간에 알게 되면서 어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됩니다. 한국적 성장통의 모습을 가장 잘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그러면서 가족의 가치와 인생에서의 책임, 그리고 긍정적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주연배우 정우씨의 실제 이야기가 모티브가 되어서인지 영화에서의 리얼리티는 즐거운 낭만 속에서도 기막히게 형상화됩니다. 또한 고등학교에서의 재미있으면서도 풍자적인 모습은 아련한 향수를 들려주는 것 같으면서도 사회에 대한 적나라한 비판을 담고 있습니다. 폭력서클 등의 모습에서 정글 같은 이미지를 풍기면서도 유쾌한 고교 생활을 재미있게 묘사해서 보는 동안 결코 지루하지도, 무섭지도 않습니다. 그 속에서 한 고등학교 학생의 성장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천국의 속삭임 

 
소년 마르코는, 세상과의 관계가 시작할 때의 어린 시절, 가장 고통스런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즉, 시력을 잃게 됩니다. 똑똑했으며, 좋은 부모님이 있었던 이 어린 소년은 시력을 잃게 되면서 행복했던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어린 소년은 가정을 떠나 시각장애인용 기술을 익히면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고 새로운 접촉과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에겐 어른으로 가는 과정이 혹독하기만 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세상에 대한 그의 첫 반응은 ‘짜증’이었습니다. 과거의 즐거운 한 때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기에 매시간은 너무 싫었고 그래서 세상과의 문을 닫으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그 소년 앞에 나타난 소년들은 세상을 눈으로 본 적이 없는 소년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위해 그들이 전혀 보지 못한 세상을 들려줌으로써 마르코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들려주고 그들에게 기쁨을 들려줌은 물론 그 자신 역시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지혜와 어른스러움을 얻게 됩니다. 또한 그들을 통해 마르코는 다시 세상으로 다가갑니다. 좀 더 어른스러워지면서…
 

이 영화는 현재 생존하고 있는 이탈리아 최고의 음향감독 미르코 멘카치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사회적 파장도 커서인지 이탈리아 장애아 교육 정책 법령을 바꾸게까지 합니다. 이런 소년 미르코의 기적과도 같은 이야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몰린 어느 장애인의 세상과의 접촉을 따뜻한 시선으로 구성한 감동적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로 세상으로 다가갈 소년, 소녀들의 미래가 좀 더 편안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