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2월 4주

 

    지금 세기말적인 우울함으로 가득 찬 영화들이 많습니다. 아마도 현재 살고 있는 이 지구의 위기가 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2009년은 미국 월가의 금융위기에 따른 경제적 고통이 심화된 해였습니다. 그런데 이 위기가 조만간 끝날 것 같지 않은 것입니다. 현재 젊은 20대에겐 ‘88만원 세대’라는 불운한 꼬리표까지 붙어있는 상황에서 미래는 무척 우울하게만 보입니다. 그렇다고 30-40대가 행복한 것도 아니고, 50대 이상은 노후에 대한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지샐 것입니다. 이런 경제위기에 전세계적으로 밀어닥친 환경피해는 지구가 과연 언제까지 인류의 터전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고 태평양의 도서 국가들이 언젠가는 물밑으로 가라앉을 것이란 이야기도 이젠 동화 같은 이야기로 치부하기도 힘들게 됐습니다. 자연보호는 이제 생존을 위해 지금 당장 필요한 운동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암울한 분위기는 국경을 넘는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적 탐욕을 제어하지 못한 인간의 본능적 문제가 자리잡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영화 속에 보이는 세상은 자못 우울합니다. 그런데 이런 우울한 영화들 중 세 편은 매우 흥미로운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불운한 이야기지만 지구 멸망, 아니 인류 문명의 멸망의 이야기들이 세 가지 서사로 구성될 수 있는 것들이 있네요. 인류의 멸망 전, 그리고 멸망, 그리고 그 이후의 모습이 그것입니다. 모든 작품들이 다 볼만한 뛰어난 장점들을 갖고 있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세 편의 작품이 인간의 성찰과 반성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진지한 철학 역시 갖고 있는 좋은 작품들입니다. 인간이 지금의 방식으로는 결코 미래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그 작품들은 멸망 전, 멸망, 그리고 멸망 이후를 의미하는 [에반게리온: 파], [2012], 그리고 [더 로드]가 그것입니다.  


에반게리온: 파
 

 

 

    일본 TV Animation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극장판입니다.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에 의해 창조된 이 영화는 10년이 넘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로부터도 극찬을 얻었던 영화 [에반게리온:서]를 다시 새롭게 각색한 이 영화에선 지구가 이미 ‘세컨드 임팩트’의 충격으로 인해 인류의 절반이 사라졌다는 가정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인지 지구의 불안은 푸른 빛에서 붉은 빛으로 변한 바다의 색을 통해 암시되는 것 같네요. 시작부터 불운해 보이기만 한 이 지구에 정체불명의 ‘사도’라는 존재가 인류의 멸망을 재촉하면서 지구를 공격해 옵니다. 이처럼 미지의 존재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제작된 ‘에반게리온’이란 전투 로봇엔 중학교 나이밖에 안 되는 소년과 소녀들이 파일럿으로 참가하게 됩니다. 이 어린 이들의 어깨에 인류의 운명이 짊어져 있습니다.  

    언뜻 보면 청소년들을 위한 만화영화로만 여겨지지만 이 영화에는 다양한 상징들과 현대의 문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즉,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의 충돌,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 책임성이 약화된 남성과 점차 강인해진 여성의 출현, 그리고 현실에 대한 부적응 문제와 인간의 본원적 모성에 대한 갈망, 그리고 인간의 대한 지독한 불신, 비민주적 사회, 소외된 자들의 그늘 등 관객들에겐 대단히 어려운 주제들이 영화 한 편에 녹아 들어 있습니다. 그런 내용들 속에서 보이는 인간성의 복원과 그 희구는, 보는 관객들을 숙연하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주인공 ‘신지’라는 캐릭터의 변화와 성장은 영화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으며 여자 파일럿 ‘레이’는 우리 모두의 이상향을 담는 듯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2012

 

    정말 멸망할지 아님 멸망하다 도중에 그칠지는 극장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겠죠. 그러나 이 영화는 멸망하는 지구, 혹은 위기에 빠진 인류와 그 문명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듯 합니다. 전작 [Independence Day], [Tomorrow] 등에서 지구의 멸망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줬던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는 지구의 위기를 보여주는 블록버스터 재난영화 전문감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이 부분에선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인간에 대한 경고를 담은 영화입니다. 즉, 이 영화는 인간의 잘못으로 인한 자연의 복수가 영화의 배경입니다. 그러나 자연재해를 기반으로 할지언정 인간에 의해 자행된 불미스런 행동들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또한 정부에 대한 불신도 그 한가운데 어디쯤에 있기도 합니다. 감독은 자연재해에 대한 인류의 대처는 그다지 우아하지 못할 것임을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지구의 멸망을 암시했다는 고대 마야 문명의 기이한 경고를 기반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재난 종합선물세트라는 별칭을 얻었을 만큼 대단한 장면들을 담아냈습니다. SFX와 CGI의 마스터라 할 만큼 위기라고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화려한 재난 액션이 인상적입니다. 특히 LA의 지진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입니다. 땅이 갈라지고, 대형빌딩들이 무너지며, 유람선이 뒤집어지고,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은 3D 영상으로 봐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특히 인간의 아늑한 휴양지인 ‘옐로스톤 국립공원’이 지진과 화산폭발로 무너지는 장면은 인간의 낙원이 인간에 의해 어떻게 무너지는 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영화의 설정은 주인공인 잭슨 커티스(존 쿠삭)는 인류 멸망을 대비하기 위해 진행해 오던 강대국 정부들의 비밀 계획, 즉 3년 동안 선별된 지구인을 피난시킬 계획을 알게 되는 것에서 시작하니까요. 그렇다고 잭슨의 행동이 인류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2012년이 되자 결국 전세계는 멸망하기 시작하는데, 그는 정부 계획을 안 이후, 무너지는 LA에서 가족을 구해서 피난길에 오르는 정도일 뿐이죠. 이 부분에서, 인간의 무력감을 느낄 수 있고 개인주의를 느낄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공존을 위한 희생이 아닌 <2012>의 가족들은 희생자들을 하나하나 밟으며 살아남는 이기적 생존을 선택합니다. 결국 멸망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현대인의 이기적 행태를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자성을 이끌어 냅니다.   

The Road 

 

 

    이 영화는 인류가 만든 문명의 멸망 이후의 황량함을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잔인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그러면서도 또한 인간적인 휴머니즘에 새로운 희망을 기댄 영화입니다. 폐허 이후 이성을 상실한 사람들이 나오는 이 영화는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후보인 ‘코맥 매카시’가 2006년 발표하여 ‘퓰리쳐상’을 수상했던 소설을 영화화한 것으로, 메카시 소설의 대표적인 속성인 잔혹성을 가장 현실감 있게 그림으로써, 인간의 극한의 비극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 있는 가족의 사랑은 괴로운 위기 속에서 인류의 마지막 희망 찾기의 영원한 해결책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설의 탄탄한 내용을 영화가 잘 소화했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영화의 완성도는 이미 합격을 받았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영화의 시작은 잿더미가 된 세계입니다. 그런 험상궂은 세상 속에서 살아남은 아버지와 아들은 굶주림과 혹한을 피해 무작정 남쪽으로 길을 떠나게 된다는 것이 이 영화의 기본설정입니다. 공포에 질린 아들(코디 스미스 맥피)과 그를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아버지(비고 모텐슨)는 어려운 환경에 내동댕이쳐진 부자의 가련한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어쩌면 현대의 위기에 빠진 가족의 모습을 상징하기도 한 이들의 관계와 상황은 영화를 극한의 위험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특히 이 둘을 노리는 인간사냥꾼들의 위협은 지구가 황폐한 이후, 변해버린 인간들의 잔혹한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결코 만나고 싶지 않은 우리 인류의 모습이기도 하고, 인간의 문명 이전의 본 모습이기도 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그들 둘의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는 필수용품들인 물과 기름, 식량 등을 보호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게도 됩니다. 가족에게 혹은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구 멸망 이후의 비극을 강렬하게 형상화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또한 거친 환경에서의 사투는 살아남은 자들이 공포가 된 세상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멸망 이후의 모습을 상상하기 싫지만 ‘만약’이란 단어 앞에 놓인 우리들은 이 영화를 통해 인간의 자성이 왜 필요한지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족은 물론 인류의 생존이 과연 가능한지, 아님 실패할지는 극장 안에서 확인해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최악은 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면 그에 대한 올바른 실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편의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 OST 들) 

 

 

 

    현재 기후변화에 의한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점차 핵무기에 버금가는 무서운 재난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설사 재난이 먼 미래에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그 변화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나올 것이며 지구와 인류는 점차 위기에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이를 막기 위해 인류는 반성해야 하고, 또한 건전한 공동체를 위해 우린 단결해야 합니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는 [에반게리온: 파]에서 시작해서 [2012]를 거쳐, [더 로드]의 상황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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