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쓸모 있는 수학적 사고 - 복잡한 세상을 꿰뚫는 19가지 생각의 기술
류쉐펑 지음, 이서연 옮김, 김지혜 감수 / 미디어숲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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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꽤 잘 설계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순한 교양서 느낌이 아니라, 나의 사고 습관을 흔들도록 짜여 있다. 특히 사례 배열 방식이 그렇다. 일상 → 공학 → AI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데, 이게 사람을 은근히 끌고 간다.


다만 끝까지 읽고 나면 분명해진다. 이 책은 수학적 사고를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로 제안하는 책이다. 그 점에서 공감과 거리감이 번갈아 온다.


가장 강하게 꽂힌 건 역시 완벽 추구 모델 vs 반복 수정 모델 부분이다.

여기서는 좀 웃음이 났다. 왜냐하면 이거, 실제로 대부분 이미 하고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름을 몰랐을 뿐.


책에서 말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하려 하지 말고, 일단 끝까지 가고 → 다시 돌아와 고친다.


이걸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게 Yann LeCun이나 딥러닝 쪽 연구 흐름이었다. 특히 SGD(확률적 경사 하강법) 같은 최적화 방식은 애초에 대충 근사하면서 점점 나아진다는 철학 위에 있다.


그걸 일상으로 번역하면, 이 책이 말하는 모델이 된다.


약간의 안도감이 들었다.

그동안 왜 나는 완벽하게 못 하지? 라고 느꼈던 방식이 사실은 비효율적인 이상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건 단순한 동의가 아니라, 약간의 해방감에 가까웠다.

이렇게 해도 되는 거였네.. 같은.


또 하나, 국소 최적 vs 전역 최적 이야기.


언덕 그래프 보면서 순간 멈칫했다.

이거 너무 많이 겪은 패턴이라서.


어느 정도 올라가면 여기가 최고 아닌가? 싶어 멈추는데, 사실은 더 높은 봉우리가 뒤에 있는 상황.


이걸 읽으면서 떠오른 게 의외로 예술사 쪽 사례였다.

예를 들어 마르셀 뒤샹 이후 개념미술 흐름이 한 번의 전역 최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이후에도 계속 다른 봉우리들이 생겨났다는 점.


즉, 우리가 이미 정점에 도달했다고 믿는 순간이 사실은 국소 최적에 불과할 가능성.


이 대목에서는 약간 씁쓸한 감정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이미 지나온 선택들을 다시 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거기서 더 갔어야 했나? 같은 생각.


결론적으로 이 책은 꽤 유용하다.

특히 사고를 정리하는 도구로서.


반복 수정

최적화

단순화

구조 파악


이런 키워드들을 일상 언어로 풀어준다는 점에서, 확실히 쓸모 있다.


다만 동시에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이건 어디까지나 하나의 프레임이다.

세계 전체를 설명하는 메타 이론은 아니다.


이 프레임으로 보면 많은 게 명확해진다.

근데 이 프레임만으로 보면, 중요한 것들이 사라진다.


그래서 이 책은 이렇게 읽는 게 맞다.


이런 방식으로도 생각할 수 있구나

여기까지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게 전부다

여기까지 가면 멈춰야 한다.


그 선을 잘 지키면, 이 책은 꽤 오래 써먹을 수 있는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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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인생 습관 - 정신과 의사에게 배우는 ‘내려놓기 기술’ 100가지
와다 히데키 지음, 홍성민 옮김 / 레몬한스푼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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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는 순간보다 하루 지나고 나서 더 또렷해지는 타입이다.


보통 자기계발서는 읽을 때는 되게 고양되는데, 하루만 지나면 휘발되잖아. 근데 이건 좀 다르다. 감정은 가라앉았는데, 대신 이상하게 행동을 조금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남는다. 거창한 결심 말고, 진짜 사소한 것들. 예를 들면 괜히 쌓아두던 짜증을 바로 풀어버린다든지, 사람한테 너무 맞춰주지 않는다든지, 식사나 운동을 과하게 안 한다든지. 그런 쪽.


이 책이 하는 얘기는 사실 새롭지 않다.

읽으면서 이건 나도 아는 얘긴데? 싶은 순간 많다.

근데 포인트는 그게 아니라, 그걸 어디에 놓느냐에 있다. 이미 알고 있던 상식들을 노년의 감각으로 다시 배열한다. 쉽게 말하면, 앞으로 줄어드는 시간과 에너지 안에서 어떻게 살 건지에 대한 기준을 다시 짜는 느낌이다.


특히 인상적인 건 세 가지 정도.


첫 번째는 감정 처리 방식.

여기서는 화를 참으라고도, 다 쏟아내라고도 안 한다. 그냥 짧게 쓰고 끝내라 쪽이다. 3초 정도만 화를 내고, 길게 끌지 말라는 식. 이게 되게 현실적이다. 감정을 도덕으로 보지 않고, 약간 자원처럼 다룬다. 오래 끌수록 손해라는 식으로. 좀 냉정한데, 그래서 더 납득이 간다.


두 번째는 인간관계.

이건 직설적이다. 부모-자식 관계조차도 거리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솔직히 좀 세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읽다 보면 이해는 간다. 가까울수록 서로를 당연하게 쓰게 되고, 그게 결국 스트레스나 의존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관계를 끊으라는 게 아니라, 너무 얽히지 말라는 거다. 이게 생각보다 잘 안 되는 부분이라 더 기억에 남는다.


세 번째는 건강.

이 부분이 의외로 좋다. 요즘 건강 관련 책들 보면 다 극단으로 가잖아. 식단 빡세게, 운동 빡세게. 근데 이 책은 그런 거 없음. 그냥 무리하지 말고 계속할 수 있는 걸 해라다. 먹고 싶은 건 먹되, 지나치게 억제하지 말고. 운동도 과하게 하지 말고.

한마디로, 오래 가는 방식을 택하라는 거다. 이건 진짜 현실적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전체적으로 말이 좀 단정적이다. 이렇게 해야 한다 식의 문장이 많아서, 근거가 충분히 제시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그리고 사회적인 조건인 돈, 환경, 관계 구조 같은 건 거의 안 다룬다. 철저히 개인의 선택 문제로만 밀고 간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는 너무 개인 책임으로 몰아가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그래도 이 책의 강점은 분명하다.

쓸데없이 희망을 부풀리지 않는다. 이렇게 하면 인생이 바뀝니다 같은 말, 거의 안 한다. 대신 덜 피곤하게 살 수는 있다는 쪽이다.

이게 크게 와닿는다. 요즘은 다들 인생을 바꾸려고 하는데, 사실 필요한 건 그게 아니라 지속 가능한 방식일 수도 있거든.


이 책은 새로운 삶을 약속하지 않는다.

대신 지금의 삶을 덜 소모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그게 거창하지 않아서 오히려 좋다.

사소하고, 반복 가능하고, 그래서 실제로 해볼 수 있는 것들.


다 읽은 후 아침이 조용했던 이유도 아마 그거다.

뭔가 시작된 게 아니라,

그냥.. 다르게 계속할 준비가 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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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풀리는 인생 2막 마인드셋의 비밀
이목원 지음 / 델피노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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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마인드셋, 비밀이라는 조합은 이미 자기계발 장르에서 거의 규격화된 문장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책이 크게 두 가지 중 하나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나는 성공 사례를 반복적으로 나열하며 독자의 감정을 끌어올리는 방식, 다른 하나는 습관과 태도의 중요성을 다소 상투적으로 강조하는 방식.


특히 마인드셋이라는 단어는, 개인의 의식만 바꾸면 삶 전체가 재구성될 수 있다는 과잉 단순화를 종종 동반한다. 나는 그 지점이 늘 불편했다. 삶은 그렇게 가볍게 재설계되지 않는다.


책을 펼친 곳은 커피숖이었다. 평일 오후였는데도 사람이 꽤 많았고, 바로 옆 테이블에서는 요즘 50대도 다시 취업 많이 한다더라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때 휴대폰에 서울시, 중장년 재취업 지원 확대. 이런 우연한 병치는, 이 책을 읽기 위한 배경으로는 정확했다. 기대는 낮았지만, 상황은 지나치게 적절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책은 완전히 새롭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공허하지도 않다. 예상했던 공식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그 공식이 꽤 집요하게 반복되면서, 하나의 리듬처럼 작동한다.


핵심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외적 동기가 아니라 내적 동기를 중심에 둘 것.

둘째, 습관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과 구조의 문제로 설계할 것.

셋째, 인생 2막은 어떤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장기간에 걸친 미세한 이동일 것.


이 세 가지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일종의 축이다. 예를 들어, 새벽 기상이나 독서 습관, 직업 전환 사례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 중요한 건 그 자체가 아니라 지속 가능성이다. 저자는 계속해서 그걸 오래 할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내적 동기에 대한 설명이다. 외부 보상인칭찬, 승진, 돈은 행동을 시작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유지시키지는 못한다는 주장. 사실 익숙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걸 구체적인 생활 단위로 끌어내린다. 예컨대 독서 인증, 기상 인증 같은 챌린지 문화가 왜 오래가지 못하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은 의외로 설득력이 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책은 구조를 거의 다루지 않는다. 노동 조건, 자본의 문제, 사회적 안전망 같은 것들 말이다. 모든 변화를 개인의 선택과 반복으로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 책에서 말하는 인생 2막은 사실상 새로운 삶이라기보다는, 기존 삶의 리듬을 재편하는 방식에 가깝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이 강조하는 내적 동기라는 개념은 결국 자기 서사의 재구성에 가깝다. 내가 왜 이걸 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서사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 이건 단순한 자기계발을 넘어, 일종의 존재론적 문제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그 깊이까지 들어가지는 않는다. 대신 안전한 선에서 멈춘다. 이 점은 아쉽지만, 동시에 이 책의 한계이자 전략이다.


이 책에는 비밀 같은 것은 없다. 대신 반복 가능한 패턴이 있다.

그리고 그 패턴은 생각보다 지루하고, 생각보다 현실적이다.


결국 인생 2막이라는 말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선언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계속하겠다는 선택에 가깝다.


이 책은 그 선택을 위한 최소한의 설계도를 제공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무시하기도 어려운 정도의 설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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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나이 들기로 했다
신은경 지음 / 샘터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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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기대하게 되는 노후 준비서나 자기계발서와는 결이 다르다. 이를테면 '아티스트 웨이'의 줄리아 캐머런을 떠올리게 하는 모닝 페이지 같은 구체적 실천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이 어떤 해법으로 제시된다기보다 한 개인의 생활 습관으로 흘러간다. 계속 느껴지는 건, 무엇을 가르치려 하기보다 이미 지나가고 있는 시간을 붙잡아 기록하려 한다는 점이다.


책 곳곳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대체로 작다. 뉴욕에서 공부하는 딸 이야기, 보스턴에서 임윤찬의 연주를 보러 갔다는 에피소드, 하버드대 언어학자 엘리스 교수를 다룬 리사 제노바의 소설(그리고 그것을 영화화한 '스틸 앨리스')을 보며 느낀 공포 같은 것들. 이런 구체적인 작품들이 튀어나올 때, 비로소 누군가의 실제 삶이라는 질감을 얻는다. 동시에 그 질감은 약간의 거리감도 만든다. 너무 구체적이어서 보편으로 환원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상적인 건 기억에 대한 반복적인 서술이다. 같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노인이 매번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 그리고 그 상황을 설명하며 난 기억을 잘 못 해라고 말하는 그 사람의 태도. 여기서 단순한 연민이나 슬픔으로 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장면을 통해, 기억한다는 것이 곧 정체성의 핵심이라는 오래된 전제를 조용히 흔든다. 그게 무너질 때 인간은 무엇으로 남는가, 이 질문이 책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또 하나의 축은 줄이기다. 책을 정리하고, 가구를 내놓고, 공간을 반으로 줄여 이사하려는 계획. 이 대목에서는 곤도 마리에의 정리법 같은 것이 떠오를 수도 있지만, 이 책은 그것을 미학이나 효율의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판단력 자체가 흐려질 미래를 대비해, 지금의 자신이 미리 정리해두는 행위에 가깝다. 이건 냉정한 시선이다. 감상적인 미니멀리즘과는 결이 다르다.


문장 자체는 비교적 담담하게 감정을 밀어붙이기보다는, 한 박자 늦게 기록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오히려 빈 공간을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박사 학위 과정에서 겪은 좌절이나, 가족과의 관계에서의 감정 같은 것들이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었을 텐데, 그 직전에서 멈춘다. 이건 장점이기도 하고 한계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과잉 해석을 막아주는 여백으로 작용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밀도가 부족한 서술로 느껴질 수 있다.


이 책이 결국 말하고 있는 건 잘 늙는 법이 아니라 어떻게 계속 살아갈 것인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약간의 가벼움이 생긴다. 집을 줄이고, 책을 정리하고, 앞으로 쓰고 싶은 글을 생각하는 장면들에서. 그 가벼움은 어떤 해방감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무언가를 쌓아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상태에서 오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그 지점이 가장 솔직하게 느껴졌다. 괜히 울컥할 것 같다가도, 막상은 그냥 담담하게 넘어가게 되는 그런 식으로.


이 책은 누군가의 삶을 따라가며 생각을 정리하는 독서에 익숙하지 않다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건이 크게 일어나지 않고, 문장이 독자를 끌고 가기보다 흘려보내는 쪽이기 때문이다. 읽다가 중간에 놓아도 크게 손해 본 느낌은 없지만, 끝까지 읽었을 때만 보이는 정서의 결이 있다. 그게 이 책의 방식이다. 약간은 느슨하고, 그래서 어떤 날에는 더 잘 들어오는.


그리고 이상하게도, 다 읽고 나면 책을 한 권쯤은 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이 맞는지 모르겟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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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척학전집 : 사랑은 오해다 ㅣ 세계척학전집 4
이클립스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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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사랑을 이해하려고 했던 걸까, 아니면 통제하려고 했던 걸까.


'세계척학전집: 사랑은 오해다'는 사랑을 감정의 순수한 상태로 두지 않고, 끊임없이 분해한다. 리머런스, 애착 유형, 선택의 편향, 과거 경험의 반복 구조. 사랑을 하나의 현상이 아니라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본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건 John Bowlby의 애착이론이다. 어린 시절의 관계 경험이 이후의 사랑 방식에 지속적으로 개입한다는 관점. 그런데 이 책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단순히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행동한다라고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걸 인지한 이후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선택의 문제를 밀어붙인다.


예를 들어 책에서 말하는 리머런스. 강렬한 집착적 끌림이 사라진 이후에도 관계가 유지된다면, 그것은 사랑일까, 아니면 관성일까. 이런 질문은 이론적으로는 흥미롭지만, 실제 삶으로 끌고 오면 곤란해진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관계는 이 경계 위에 있기 때문에.


이건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걸 느꼈다.


반복해서 드러내는 핵심은 명확하다.

사랑은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남는 것이라는 점.


감정은 사라진다. 흥분은 식는다. 환상은 깨진다.

그 다음에도 남아 있는 게 있다면, 그건 선택이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Alain Badiou의 사랑 개념이 겹쳐진다. 사랑을 사건으로 보고, 그 이후의 지속을 진리의 구축으로 이해하는 관점. 이 책 역시 비슷하게 말한다. 사랑은 어떤 순간의 강도가 아니라, 그 이후에도 계속 유지되는 결정들의 축적이라고.


그런데 여기서 더 냉정한 층위가 드러난다.

우리는 정말로 선택하고 있는가, 아니면 선택한다고 믿고 있는가.


이 질문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책을 다시 펼쳤다가, 몇 줄 못 읽고 덮었다.

집중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집중이 너무 과도하게 걸려서 오히려 멈추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문득, 아주 사소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오래 전, 아무 이유 없이 어떤 사람에게 계속 연락을 기다리던 시간.

지금 생각하면 분명 리머런스였고, 그때는 그걸 사랑이라고 믿었다.


이 책은 그런 기억들을 조용히 끌어올린다.

그리고 말한다.


그건 오해였을 수도 있다고.


이 문장은 누군가에게는 해방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약간 잔인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오해였다는 걸 알게 된 이후,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서 다시 선택이 등장한다.


더 나은 조건, 더 안정적인 관계, 더 확실한 미래. 이 모든 것을 고려하고도, 특정한 사람을 계속 선택하는 것. 혹은 반대로, 아무리 감정이 남아 있어도 그 선택을 중단하는 것.


이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판단과 결단의 문제다.


그래서 이 책은 일종의 착각을 깨뜨린다.

사랑이 우리를 움직인다는 믿음.


오히려 반대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선택한 것을, 나중에 사랑이라고 부르는 건 아닐까.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는데,

읽기 전과 같은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느낌이 남는다.


이 책은 끝까지 읽고 나면 뭔가를 배웠다기보다,

뭔가를 더 이상 모른 척할 수 없게 된다.


읽다가 멈추고,

생각하다가 다시 읽고,

결국은 내 이야기를 꺼내게 만드는 책.


아마 이 책의 가장 정확한 효과는 이것이다.


사랑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사랑에 대해 더 이상 쉽게 말할 수 없게 되는 것.


그 불편함을 견디는 사람만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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