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는 이렇게 나이 들기로 했다
신은경 지음 / 샘터사 / 2026년 4월
평점 :
흔히 기대하게 되는 노후 준비서나 자기계발서와는 결이 다르다. 이를테면 '아티스트 웨이'의 줄리아 캐머런을 떠올리게 하는 모닝 페이지 같은 구체적 실천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이 어떤 해법으로 제시된다기보다 한 개인의 생활 습관으로 흘러간다. 계속 느껴지는 건, 무엇을 가르치려 하기보다 이미 지나가고 있는 시간을 붙잡아 기록하려 한다는 점이다.
책 곳곳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대체로 작다. 뉴욕에서 공부하는 딸 이야기, 보스턴에서 임윤찬의 연주를 보러 갔다는 에피소드, 하버드대 언어학자 엘리스 교수를 다룬 리사 제노바의 소설(그리고 그것을 영화화한 '스틸 앨리스')을 보며 느낀 공포 같은 것들. 이런 구체적인 작품들이 튀어나올 때, 비로소 누군가의 실제 삶이라는 질감을 얻는다. 동시에 그 질감은 약간의 거리감도 만든다. 너무 구체적이어서 보편으로 환원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상적인 건 기억에 대한 반복적인 서술이다. 같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노인이 매번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장면, 그리고 그 상황을 설명하며 난 기억을 잘 못 해라고 말하는 그 사람의 태도. 여기서 단순한 연민이나 슬픔으로 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장면을 통해, 기억한다는 것이 곧 정체성의 핵심이라는 오래된 전제를 조용히 흔든다. 그게 무너질 때 인간은 무엇으로 남는가, 이 질문이 책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또 하나의 축은 줄이기다. 책을 정리하고, 가구를 내놓고, 공간을 반으로 줄여 이사하려는 계획. 이 대목에서는 곤도 마리에의 정리법 같은 것이 떠오를 수도 있지만, 이 책은 그것을 미학이나 효율의 문제로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판단력 자체가 흐려질 미래를 대비해, 지금의 자신이 미리 정리해두는 행위에 가깝다. 이건 냉정한 시선이다. 감상적인 미니멀리즘과는 결이 다르다.
문장 자체는 비교적 담담하게 감정을 밀어붙이기보다는, 한 박자 늦게 기록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오히려 빈 공간을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박사 학위 과정에서 겪은 좌절이나, 가족과의 관계에서의 감정 같은 것들이 더 깊이 파고들 수 있었을 텐데, 그 직전에서 멈춘다. 이건 장점이기도 하고 한계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과잉 해석을 막아주는 여백으로 작용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밀도가 부족한 서술로 느껴질 수 있다.
이 책이 결국 말하고 있는 건 잘 늙는 법이 아니라 어떻게 계속 살아갈 것인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약간의 가벼움이 생긴다. 집을 줄이고, 책을 정리하고, 앞으로 쓰고 싶은 글을 생각하는 장면들에서. 그 가벼움은 어떤 해방감이라기보다는, 더 이상 무언가를 쌓아 올리지 않아도 된다는 상태에서 오는 것처럼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그 지점이 가장 솔직하게 느껴졌다. 괜히 울컥할 것 같다가도, 막상은 그냥 담담하게 넘어가게 되는 그런 식으로.
이 책은 누군가의 삶을 따라가며 생각을 정리하는 독서에 익숙하지 않다면 조금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건이 크게 일어나지 않고, 문장이 독자를 끌고 가기보다 흘려보내는 쪽이기 때문이다. 읽다가 중간에 놓아도 크게 손해 본 느낌은 없지만, 끝까지 읽었을 때만 보이는 정서의 결이 있다. 그게 이 책의 방식이다. 약간은 느슨하고, 그래서 어떤 날에는 더 잘 들어오는.
그리고 이상하게도, 다 읽고 나면 책을 한 권쯤은 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이 맞는지 모르겟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