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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양자역학 때문이야
제레미 해리스 지음, 박병철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4월
평점 :
요즘은 밤 9시 무렵이 되면 자연스레 책상 앞으로 향하게 된다.
시끄러운 하루가 잦아들고, 휴대폰 알림도 뜸해지는 시간.
그 조용한 틈에 읽은 책이 이게 다 양자역학 때문이야!였다.
읽고 난 뒤엔 누구에게 설명해야 할지 한참을 멈춰 있었다.
양자역학이라는 낯선 단어가 나를 뜻밖에도, 묘하게 사적인 세계로 데려다 놓았기 때문이다.
표지엔 까만 고양이가 장난스럽게 눈을 치켜뜨고 있다.
처음엔 이 일러스트가 가볍게 느껴졌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며 그 고양이가 결국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너 지금 이 우주가 진짜라고 믿고 있어?’라고 묻는 것처럼.
한때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시기가 있었다.
불면의 밤이 길었고, 나는 살아 있다는 감각을 믿지 못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당신이 죽는 현실은 당신이 인식할 수 없다'는 문장을 봤을 때,
오랜 시간 굳게 닫혀 있던 문 하나가 살짝 열리는 듯했다.
많은 우주들 중에서 내가 살아있는 우주만을 인식할 수 있다는, 양자역학의 다세계 해석. 그 낯설고도 기묘한 위로.
책은 마치 실험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듯, 현실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나의 시점으로 끌어당긴다. 어떤 관측자가 있는가에 따라 현실이 결정된다는 설명은, 예술을 할 때의 감각과도 닮았다. 누가 보느냐에 따라 작품이 완전히 달라지는 순간처럼.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죽은 고양이와 살아 있는 고양이가 동시에 존재하는 슈뢰딩거의 실험을 수식과 그림으로 설명한 부분이었다. 그 단순한 이미지가 오래도록 머릿속에 맴돈다. 그 상자 속 고양이는 사실 나 자신이었다. 무수한 가능성 속에 살아남은, 단 하나의 나.
결국 이 책은 단순한 과학 입문서가 아니다. 나와 우주 사이의 틈, 혹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감각을 포착해낸 에세이에 가깝다. 쉽게 읽히면서도 쉽게 닫히지 않는 책. 가끔 어떤 책은 나에게 말 건네기 위해 이 우주에서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지는데, 이 책이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