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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서울 사찰 여행 - 조선 불교 이야기 ㅣ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15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5년 5월
평점 :
서울 종로는 오래 살아온 내게도 언제나 낯선 얼굴을 드러낸다. 사찰을 그다지 깊이 생각해본 적 없는 내게 이 책 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서울 사찰 여행(책읽는고양이)은 내가 살던 익숙한 동네를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책을 펼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탑골공원의 '원각사지 10층 석탑' 얘기가 나왔는데, 순간 마음이 뭉클했다. 어릴 적 아버지 손 잡고 탑골공원에 갔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기 때문에. 유리벽 안에 보관된 저 탑이 왜 저기 있는지,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몰랐던 그 시절의 나는 그냥 뛰어놀기 바빴다.
황윤 작가는 서울 곳곳에 흩어진 사찰과 그 흔적을 따라 걸으며, 조선 시대 불교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조계사의 웅장한 대웅전이 일제강점기 이후에 세워졌다는 사실이나, 동대문(흥인지문)이 단순한 성문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를 품은 곳이라는 사실을 이 책에서 처음 알았다. 내겐 그냥 늘 지나가는 길 위의 풍경이었던 동대문 근처에서, 고모와 함께 평화시장 골목에서 국수 한 그릇 먹고 나면 걸었던 길이 더 선명해졌다. 책을 읽는 내내, 무심코 지나친 동네 구석구석이 얼마나 깊은 역사를 품고 있었는지 새삼 깨닫고 반성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책 속에 담긴 사찰 이야기가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조선 초부터 이어진 연등회 이야기를 읽으면서 종로 한복판에서 매년 보던 연등 축제가 떠올랐다. 왜 종로 거리에서 매년 연등 축제가 열리는지, 그 유래를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된 기분이다. 이런 깨달음 덕분에 책을 다 읽고 나니 당장이라도 종로를 다시 천천히 걸어보고 싶어졌다.
작가는 책의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책에 담지 못한 사찰들을 직접 찾아보라고. 그래서 다음 주말엔 이 책을 들고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종로의 구석구석을, 예전에 지나쳤던 사찰과 골목길들을 천천히 다시 걷고 싶다.
종로를 익숙하게 걸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분명 이전에 알던 종로의 모습이 완전히 새롭게 다가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