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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돌아가기
최영건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4월
평점 :
새벽, 불 꺼진 방. 출판사에서 보내온 사랑으로 돌아가기를 펼쳤다. 별 기대 없이 하루의 끝에서 몇 장 넘겨보려던 책은, 생각보다 더디게 읽혔다. 문장마다 무언가 잠겨 있었고, 그 느린 속도는 내 마음의 리듬과 묘하게 겹쳐졌다.
오이의 ‘카밍 시그널’ 이야기를 읽다가, 오래전에 떠나보낸 강아지가 떠올랐다. 조용히 나를 바라보던 눈빛, 아주 작게 떨리던 귀끝의 온기. 그 체온이 아직도 손바닥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했다. 문득, 그리움은 되살리는 일이 아니라 꺼내놓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다 문득, 오래전 겨울밤이 떠올랐다. 눈이 내려 버스가 끊긴 날, 아버지가 두꺼운 외투 위로 담요를 둘러쓰고 역 앞까지 걸어와 날 기다리던 모습. 별말 없이, 그냥 "가자" 한마디. 춥고 어두운 길을 함께 걸었던 그 시간이, 불현듯 마음 깊은 곳에서 떠올랐다. 사랑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표현보다 동행, 말보다 발걸음.
또 어떤 문장에선, 익숙하면서도 낯선 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잘 살아온 걸까, 아니면 그저 버텨왔을 뿐일까. 책은 그런 질문에 사랑이란 반드시 크고 분명할 필요는 없다고. 무언가를 향해 아주 잠시 마음을 멈추는 것, 그 자체가 사랑의 시작일 수 있다고 얘기한다.
“돌아간다는 건 과거로의 후퇴가 아니라, 다정함의 자리로 되돌아가려는 의지다.”
이 문장에서 오래 머물렀다. 다정함은 뒷걸음질처럼 보이지만, 사실 인간다움의 회복을 위한 조용한 전진이다.
사랑으로 돌아가기는 크고 극적인 감정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잊고 있던 감각과 지나간 얼굴들, 오래된 기억들을 조심스럽게 불러낸다. 그렇게 작은 순간들이 쌓이며 마음이 조금씩 풀린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놓치기 쉬운 것들. 말 없이 건네는 시선, 무심한 기다림, 스쳐 가는 따뜻함. 이 책은 그 조각들을 다시 엮어 하나의 결로 보여준다.
이 책은 나에게 조용한 회복의 경험으로 다가왔다. 지금보다 조금 더 다정한 내가 되고 싶다는 바람. 누군가에겐 그저 하루의 한 페이지일 수 있겠지만, 내게는 잊고 지냈던 마음의 감정을 되살려준 시간이었다.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았지만, 이 글은 오롯이 나의 조용한 새벽, 그리고 한 권의 책과 함께한 체험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