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함께 읽기
강준만 외 지음 / 돌베개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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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기회에 느닷없이 다가온 실존적 만남이 삶의 지향을 바꿔놓는 일이 더러 있습니다. 나에게도 그러한 경우가 몇 번 있었는데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접하게 된 행운도 그중 하나일 것입니다. 서점 진열대에 놓여있던 <나무야 나무야>라는 책을 별 뜻 없이 집어들어 눈길 가는 대로 몇 군데 읽어보다가 그만 저릿하게 감전된 듯 한동안 마음결을 추스를 수 없게된 경험을 한 다음부터 신 선생님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의 자장 안으로 빨려들어 그 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부단히 스스로를 살피며 세계와 역사에 대해서도 나름의 수준에서 숙고하는 습관을 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나무야 나무야>에 매료된 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강의>에 이르기까지 신 선생님의 글이란 글에는 흠뻑 빠져 무작정 읽었었는데 어느 정도 냉정해진 다음에야 신 선생님의 글이 왜 이토록 사람을 빨아들이는 마력을 지니고 있는지 비로소 곰곰이 따져보게 되었습니다. 먼저 빼어난 글 솜씨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는데, 이는 신통한 답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신 선생님은 분명 대단한 필력을 지닌 분이긴 하지만 단순히 문장력 하나로 뭇사람들의 마음을 흡인할 수는 없는 것이기에 충분한 이유라고 보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또 하나 떠올려본 것은 선생님의 파란만장한 삶의 곡절이 흥미를 유발한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또한 합당한 이유가 되지 못함을 금방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굴곡 많았던 우리 근, 현대사에서 선생님 못지 않게 역사의 격랑에 휘말려 좌충우돌하셨던 분들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여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신영복 함께 읽기>의 제2부 "신영복을 말한다"를 읽다가 환해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따스하고 여린 심성이 촉촉하게 배어있는 선생님의 삶의 모습이 글 속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여 그런 심성에서 우러나온 곡진한 행동이 글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었기에 머리보다 몸이 먼저 알아보고 그 울림에 공명하였던 것입니다.

따뜻하고 여린 심성을 지니셨던 선생님은 어느 누구하나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눈높이를 맞추셨습니다. 성공회대의 사제 후보생들에게는 사제의 세계로 입문하는 동행이 되어 주었고, 교사들에게는 선배 교사가 되어 교육에 대해 같이 속살거렸으며 입주 과외 집의 유치원 아이에게는 딱 그 수준의 소꿉놀이 친구가 되어주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감방에서 무식하고 험상궂은 도둑놈들에게는 그들의 하소연을 살갑게 들어주는 동네 형님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마음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진솔하게 들려주는 글이었으니 어찌 따뜻한 가슴을 아는 이들에게 큰 울림이 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 선생님의 글을 제대로 접하게 되면 누구든지 가슴 서늘해지면서 그간 지녀왔던 사고체계의 작동이 중지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후로는 홀로 결단하여 선생님이 삶으로 보여주었고 글로 간곡하게 일깨웠던 세계로 스스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내밀한 고백들, 간절한 영혼의 회복을 보여준 많은 얘기들이 제2부 "신영복을 말한다"에 빼곡하게 들어있었습니다.

하여 선생님의 삶의 모습과 그것이 오롯이 배어있는 글은 우리들 냉랭하게 굳어버린 심성을, 일그러진 모습을 또렷하게 비쳐주는 거울이었습니다. 내면의 미성숙과 탐욕과 어리석음이 고스란히 드러나게 하는 감어인(鑒於人)이었던 것입니다. 무감어수(無鑒於水) 감어인(鑒於人)의 그 인(人)이 바로 신영복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꿈꾸는 더불어 숲의 세계, 선량한 사람들의 땀 냄새가 솔향기와 섞이고 솔바람 은은하게 날리는 곳으로 언제까지나 함께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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