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콘서트 1 - 노자의 <도덕경>에서 마르크스의 <자본론>까지 위대한 사상가 10인과 함께하는 철학의 대향연 철학 콘서트 1
황광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곳곳에서 아우성이다. 인문학의 기반이 송두리째 붕괴될 지경이라느니, 철학이 사라진 야만의 시대라느니 등등 오늘 여기의 지적 풍토를 비관적으로 진단하는 목소리 일색이다. 물론 이런 개탄을 일과성의 호들갑스런 엄살쯤으로 여겨버리려는 움직임도 일부 있기는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분위기에 압도되어 항변이 거의 잦아든 지경이라 하겠다.

돌이켜보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경쟁과 효율의 논리가 지배적인 미덕으로 자리잡게되었고 그 결과 작은 일에도 심사숙고하여 지혜를 구하고자 하는 유형의 인문학적 행동방식은 폄하되며 뒷전으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철학을 포함한 인간의 정신문화를 다루는 분야는 GDP를 증가시키는데 직접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판단 하에 완전히 논외로 취급받게 된 것이다. 이런 추세는 거의 40여 년 이상 일관되게 지속되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가 겪고있는 극단적인 상황은 아무런 위기 징후도 없다가 어느 순간 우연히 벌어진 것이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철학이 정부나 기업, 더구나 일반 대중들로부터 배제되어 그들의 삶의 방식과 유리되게 된 데는 이런 외적 여건 못지 않게 철학자를 비롯한 인문학 종사자들 내부의 체계적 준비 미흡과 적절한 대응 전략 부재도 한 몫을 하였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철학을 학자들의 전유물로 여겨 그들만의 암호 같은 체계 하에서 내부 재생산에만 급급해온 것이 그 동안 학계의 관행이었다. 하니 점점 대중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되고 급기야 백안시되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렇게 될 때까지 내부에서 자기 갱신 노력은 기울이지 않고 지적 특권의식에 매몰되어 문화 권력의 단 맛에만 취해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상황을 스스로 불러왔다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이제 철학계의 반성적 성찰과 새로운 모색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외면하는 대중들만 탓할게 아니라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다가가는 노력을 먼저 기울여야할 때다. 최근 이러한 인식에 공감하고 있는 이들이 타개책의 일환으로 대중적 철학 서적 출간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 소프트 혹은 에세이라는 이름이 곁들여진 인문학 관련 서적 출간이 시대의 한 트랜드로 떠오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향이 분명 고무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최근에 나온 대부분의 저작들은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데만 치중한 감이 없지 않아서 공허함을 떨칠 수 없다. 삶의 곡절이 배어있지 않는 경박한 담론에 그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그러나 철학이 그 기반을 현실적 토대 위에 둘 때에야 비로소 대중의 가슴에 스며들어 그들의 실제 삶에 의미 있게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황광우의 <철학 에세이>는 이런 두 가지 미덕을 겸비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쉽고 재미있게 흥미를 유발하는 것에만 급급하여 머리로 기교를 부린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아니 손과 발로 쓴 것이다. 민중의 삶을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부대끼며 함께 해 온 그의 삶의 역정이 글 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그러면서도 유머와 재치, 기발한 아이디어 등 대중의 관심을 흡인할 수 있는 특장을 두로 망라하고 있는 것이다.

황광우는 대중의 눈높이를 겨냥한 기획 차원에서 흥미를 유발하기 위한 장치를 글 곳곳에 다양하게 깔아두고 있다. 이를테면 철학자의 사상의 진수를 직설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그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발굴하여 실감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글 전체에 생동감과 기복이 느껴져 집중력을 잃지 않고 저자의 의식을 따라갈 수 있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친구의 탈옥 제의를 거부한 소크라테스나 토마스 모어, 또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되 기득권 층에게는 가혹하리 만치 엄정하게 허위 의식을 질타하던 예수 그리스도 등 순결한 영혼을 지닌 철학자들의 사람 냄새 배어있는 뭉클한 이야기는 압권이었다. 또 콘서트처럼 소프트하고 리드미컬하게, 때론 스타카토로 더러는 유장한 흐름으로 의미 심장한 부분을 부각시키고 있다. 더구나 인상적인 것은 스코프(scope)와 시퀀스(sequence), 즉 내용의 범위와 배열을 대중들의 의식 수준을 감안하여 재구성함으로써 주제의 일관성을 꾀하면서도 생기발랄하게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서두에 소크라테스와 공자를 배치했다가 마지막 부분을 공자와 동시대인인 노자로 마무리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는 시간 순서와는 무관하게 독자들로 하여금 누구나 흐름을 따르다보면 자연스레 주제를 파악하고 지적인 향상을 꾀할 수 있게끔 몰아 가고 있는 것이다.

또 민중과 더불어 아픈 시대를 살아온 이답게 황광우는 철학을 고답스런 관념의 유희 차원에서만 다루고 있지 않다. 오늘날 우리들이 안고있는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창조적 아이디어를 제공함은 물론 직접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기까지 하여 싸늘하게만 보이는 철학에 따스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온고지신의 지혜가 말뿐이 아님을 여러 사례들 들어 적시하고 있어서 철학이 진정 현실에서 필요한 것임을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철학 콘서트>는 철학, 더 나아가 인문학에 등을 돌려버린 대중을 은근하게 부르고 있는 사이렌(siren)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강권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지 않고 스스로 재미를 느끼고 의미를 발견하게 하여 자장 안으로 빨려들 듯 철학을 구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내게는 인문학의 위기니 철학의 부재니 하는 아우성이 대중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부족을,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지혜의 결여를 자인하는 탄성으로 들린다. 그 비관론자들에게 적어도 황광우의 삶과 글을 한번 접해보고 이야기하라고 넌지시 일러주고 싶다. 콘서트장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또렷이 비쳐보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창조적 아이디어의 일단이라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편의 콘서트에는 여러 요소들이 망라되어 있다. 그것은 형식면이기도 하고 내용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작가의 지향과 의식의 깊이가 반영되어 있게 마련이다. 황광우의 그것은 철학으로부터 떠나버린 대중들을 다시 이끌어 철학이 결코 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님을, 삶과 유리된 것은 더더구나 아님을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