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풍경 - 김형경 심리 여행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예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은 스포츠 중계방송이라도 화면 구성이 평면적이거나 내용이 일상적인 수준의 밋밋한 것이면 시청자를 사로잡지 못한다. 그리하여 눈과 귀를 붙박아 리모콘에 손이 가지 않게 하려고 갖가지 아이디어가 동원된다. 그 가운데 컴퓨터 그래픽이나 가상현실 효과 차용 등 현란한 편집 기법도 눈에 띄지만 여러 대의 카메라를 요소요소에 배치하여 박진감 있고 입체적인 생생한 화면을 실감나게 보여주는 것이 더 흡인력이 강한 듯하다. 특히 수중에서 벌어지는 경기는 더욱 그러하다. 공중, 입수면 및 수중 내부 등 다각도로 설치된 카메라가 경기 현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석구석까지 또렷하게 부각시켜 흥미진진하게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아름답고 멋진 것만은 아니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중계를 볼 때면 종종 불편해지곤 한다. 우아한 자태와 절묘한 동작에 매료되어 여운을 음미하고 있자면 얼마 가지 않아 금방 환상이 깨져버리고 만다. 풀장 바닥에 설치한 카메라가 포착한 뜨악한 장면이 미감(美感)을 해치는 것이다.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물 속 발동작을 클로즈업한 것인데 우아함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풍경이었다. 그것은 아등바등 어떻게든 버텨 보려는 치열한 생존 본능 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다. 수면 위에서 펼쳐지는 예술적이고 세련된 연기와는 동떨어진 형이하학적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그걸 보고 있자니 이제껏 감탄했던 아름다운 모습조차 의미 없게 여겨졌고 오히려 추해보이기까지 하였다.


<사람 풍경>에서 김형경은 로마 카타콤의 얽히고설킨 지하 미로에 압도되었다가 출구로 나온 다음 지상을 감쪽같이 덮고 있는 잔디를 보고 발밑에 그토록 이질적이고 거대하며 복잡하고 위험한 세계가 있을 거라는 사실을 도무지 상상할 수 없겠다며 아찔해한다. 그리고 그 순간 한 인간의 내면에도 표출되지 않는 독립된 세계가 존재하며 그것이 우리 생의 비밀을 더 많이 쥐고 있는 무의식의 영역임을 명료하게 이해하게 된다. 그 대목에서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중계 장면이 겹쳐지며 나의 잠재된 내면도 마치 음산한 지하 묘지나 수중의 부산하고 때론 어이없어 보이는 발짓과 다를 게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절로 무릎이 쳐 졌다. 그 후로 김형경이 뿜어내고 있는 자장(磁場) 안에 여지없이 빨려들어 버렸다. 그리하여 특유의 감성이 배어 있는 유려한 문체 속에 오롯이 녹아 있는 심리학의 세계를 쫓아가다가 나의 내면을 이끌고 있는 한 가닥 결을 발견하게 되었다. 여리고 미숙한 아이가 한 쪽 끝을 잡고 나를 함부로 당기고 있었다. 세살에서 성장이 멈춰버린 조그만 아이가 빤히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왠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이전의 감정과 행동들이 또렷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였구나!  탄식이 절로 나왔다.


아이는 자기애(自己愛)적 사랑에만 집착하는 편집을 지니고 있었다. 타인의 정서나 감정, 반응에 대해서는 무신경으로 일관하고 오로지 자신의 사랑 표현에만 급급했었다. 그간 아무 생각 없이 사랑이랍시고 행했던 일들이 상대방을 얼마나 성가시게 했을지, 더러는 스토커 같은 집요함에 치를 떨게도 만들었으리라. 그리고 그게 사실은 상대방을 진실로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비친 나의 이미지를 사랑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자각도 뒤따랐다. 그러니 이해나 공감이나 배려라고는 없는 일방적인 자아도취일 따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게 보이지 않았다. 사랑의 감정을 제대로 키우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보니 그 아이가 표출했던 분노도 자기애적 방어 기제가 작동한 것이었다. 겉으로 태연한 척 남을 배려하고 미소를 지었지만 그것은 드러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고 나머지 9할은 내면에서 들끓고 있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를 일이었다. 자신은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이며 언제나 선하고 정당한 판단을 하는데 수준 미달로 여겨지는 타인이 수시로 자기를 비판하고 지적하는 것에 분노와 저항감이 남다를 수밖에. 그런 무의식에 억압된 분노를 종종 가까운 이웃에게 터뜨려 관계를 망치곤 하였다. 나의 본의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상대방은 실망감으로 가슴이 미어졌을 것이다.


또 그 아이는 질투와 시기심의 화신이었다. 사랑의 대상을 독점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늘 불안하고 곁에 있는 것을 확인해야 안심이 되었다. 또 자기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남의 존재가 용납되지 않았다. 내가 최고인데 네가 감히 나보다 낫다니 그럴 수는 없었다. 분노와 모욕감과 수치심 때문에 우울과 혼란과 불안이 고조되어 상대를 제거하고플 만큼의 파괴적인 감정이 끓어오르곤 하였다. 또 불특정 다수의 유복한 자들에게 근거 없는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했었다. 그리하여 상대적 박탈감으로 늘 배가 아팠다.


아이는 병리적 의존 증세도 보였다. 누군가가 전폭적인 애정을 보여주고 엄마처럼 전능한 존재가 되어 자신의 문제를 요술같이 해결해 주기만을 바랬다. 자신의 입장을 주장하고 심리적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서 극복해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역량이 박약하였다.


그는 위험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낄 때 그 상황이나 대상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삶의 한복판에서 벗어나려고만 했다. 회피 방어 기제가 작동한 것이다. 자아와 세상의 바깥에서 서성이며 늘 겉돌기만 했다.


나는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인정중독증 환자였다. 인정받는데서 정체성을 찾았으며 인정받기 위해 일 중독자가 되었고 그럼에도 늘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끼면서 불안해했다. 아아! 이처럼 나는 유아적 환상에서 비롯된 온정주의적 세상 인식에 머물러 있던 어른 아이였다. 내 속에는 깨인 의식으로도 알아차리기 어렵고 맘대로 길들여지지도 않는 아이가 여럿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기괴하게 일그러진 형상으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며 오들오들 떨고 있는 허기진 아이인 채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아이를 사랑한다. 아니 사랑해야만 한다. 아이의 존재를 알았으니 이제 소중하게 보살피고 키워 나가야 할 책임이 나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중자애(自重自愛)할 것이다. 중심을 잡고 타인의 칭찬에 들뜨거나 외부의 비판에 흔들리지 않는 초연함을 지니도록 가다듬어 나갈 것이다. 나의 긍정적 측면을 거짓 겸손이나 우월감 없이 인정하고 부정적 속성도 열등감이나 비하감 없이 깨끗하게 시인할 수 있도록 부단히 정신적 단련을 해 나가겠다고 마음먹는다. 트라우마에 억눌려 거짓되거나 확장되고 위축된 자아를 극복하고 나의 나 된 모습을 제대로 세워나갈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볼썽사나운 물 속 발동작도 무심히 보아 넘기려 한다. 그것이 부인할 수 없는 우리의 실상인 것을 어쩌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냉정하게, 어쩌면 뻔뻔할 정도로 나를 다잡아 나가고자 부단히 자기 암시를 할 것이다. 나르시시즘이나 환상 없이 헛된 기대나 욕망도 접고 나와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나갈 것이다. 그래야 무의식에 억압되어 앳되게 머물러 있던 어른 아이의 틀을 벗고 환골탈태하여 진정한 내면, 본래의 모습에 조금이나마 근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에 비로소 빛나는 지혜와 창조의 문을 열 수 있는 작은 틈새가 어렴풋이 보일 것이다.


이동 통신 단말기 광고에서 김태희가 원빈에게 말했다. “나의 문제점 둘, 오빠의 문제점은 여섯 가지” 원빈이 받았다. “어째서 내건 여섯 가지야?” 그래도 김태희는 문제점투성이인 원빈이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나의 문제점은 여섯 가지가 넘는다. 그래도 내가 나인 것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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