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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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원래 새로 접하게되는 풍경이나 주변의 사회적 상황을 자신의 내면에 비추어 지극히 사적으로 해석하기 일쑤인 개인적 체험의 과정이다. 이를 통해 한 개체로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자각하기도 하고 때론 약삭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이치를 깨우치기도 한다. 바람의 딸 한비야의 여행도 처음에는 그러하였다. 그런데 이제 한비야에게서는 조금 다른 냄새가 난다. 그동안 보여준 여행의 기록들은 한 인간이 어떤 거역할 수 없는 벽(癖)에 사로잡혀 지구를 세 바퀴 반씩이나 돌아보고도 또다시 떠나고 싶어하는 바램으로 꽉 찬 것이었다면, 그리하여 약간은 센티하고 사치스런 단 맛이 느껴졌다면 이번 저작에서는 단순히 개인의 내면 치료용이 아니라 타자와 인류 사회의 아픈 구석까지 속속들이 어루만지듯 시선이 가 닿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다가가 특유의 친화력으로 하나가 되어 제 몸같이 보살피는 모습에서는 그야말로 인간미가 물씬 풍겨나고 있다. 어쩌면 구수한 장맛 같기도 하고 질리지 않는 향이 그윽하게 배어 나오고 있는 듯도 하다.  그녀의 삶이 깊어지듯 여행의 의미도 더욱 심장해지고 있다.

오지 여행가와 긴급 구호 활동가, 둘 다 어떤 고난이 닥칠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담대히 나아간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지만 관심과 지향이 개인적 범주에 머물고 있는지 아니면 자아의 영역을 벗어나 다른 대상에게까지 눈길을 돌리고 있는지에 따라 성격이 확연히 구분되는 일이다.  국제 NGO 조직인 월드비전 소속으로 극심한 위험 지역에 파견되어 긴급 구호 활동을 벌이는 것은 이미 여자 혼자의 몸으로 오지 여행을 통해 허다한 고난을 이겨낸 한비야에게 어쩌면 그다지 새롭거나 힘겨울 것도 없는 일이지만 그 의미와 책임감의 무게는 이전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차대할 것이기에 심적 부담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비야가 이제 그만 풍찬노숙의 힘겨운 생활을 접고 편히 안식할 때도 되었는데 왜 저리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목숨을 담보로 아무런 보상도 없는 그 험한 일을 하고있는지 가끔 의아해질 때가 있다. 타고난 방랑벽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하기엔 뭔가 미흡한 면이 있고 사회적 명사의 반열에 오른 자로서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천하고 있다는 정신적 자기 만족감을 향유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기엔 너무 불순하고 지나친 감이 든다. 아마 짐작컨대 그것은 한비야의 심성에 기인한 듯 하다. 오지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도 이미 보여주었지만 그는 타고난 인도주의자이다. 접하는 이가 누구이건 간에 살갑게 다가가는 천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여행의 과정에서 경험한 모순적 사회 구조와 그 희생양으로서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연민 등 사회적 의식에 눈뜨게 된 것도 이러한 활동을 하게 된 하나의 계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제 연륜이 들어서인지 타자의 처지에 공감하여 동병상련의 정을 쉬이 느끼는 지경이 된 것도 하나의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긴급구호 현장에서 만나는 이들에게 외부자, 시혜자로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동류의식을 느끼며 자기와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일원으로 스스럼없이 대하고 있다. 우월적 시선이 아닌 함께 비를 맞아주는 동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친근하게 다가가니 상대방도 부담감과 자격지심을 떨치고 도움만 받는 궁핍한 존재에서 비로소 하나의 인간으로 당당하게 서서 오히려 한비야에게 배려의 손길을 뻗치기도 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타고난 심성에다가 세상의 어두운 면을 보면서 깨우치게된 사회에 대한 의식과 살아온 연륜까지 더해져서 어쩌면 무모해 보이기도 하는 일에 기꺼이 나서게 된 것이리라.

오늘도 일상에 틀에 옭죄어있는 우리들 상상력의 한계를 훌쩍 넘어 안온한 휴식에의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고 주저 없이 고난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한비야 그녀에게서는 이제 푸근한 누이와 엄마에게서 느낄 수 있는 모성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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