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칠드런 - 2014 제8회 블루픽션상 수상작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6
장은선 지음 / 비룡소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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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인위적인 관념이다. 시대라는 것도 인간의 편의에 의해 거칠게 재단된 시간의 덩어리일 뿐이다. 여기까지 과거이고 이쯤부턴 현재라고 어떻게 단정지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 구분은 물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연속적인 흐름을 일시정지시킬 수 없고 상호 연관된 일들을 별개로 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혼란스런 것은 시간이나 시대는 순차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미 과거에 소멸된 줄 알았던 일이 시간을 되돌린 듯 현실에서 버젓이 자행되는 시대착오적 모습도 종종 발견되니 말이다. 나이브하게 말하자면 우린 모두 시간여행을 경험하며 살고 있는 셈이다.

 

미래 사회를 암울하게 진단하는 디스토피아론은 언제나 있어 왔다. 어쩜 예언자적 식견과 안목을 지닌 이들의 경고와 대안 제시 덕분에 인류는 그나마 멸망하지 않고 오늘에 이른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디스토피아란 미래에 맞을지도 모를 부정적인 모습이란 데 방점이 찍혀있다.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밀레니얼 칠드런]의 시점은 미래다. 새벽이 배정된 학교를 무대로 서사가 진행된다. 그런데 하나 같이 기시감이 느껴진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다. 이를테면 하루 열다섯 시간 이상 주입식 교육과 강제 자습에 시달리는 학생들,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하고 패거리를 이뤄 폭력으로 울분을 해소하는 아이들, 지배 이데올로기에 무조건 순응하는 게 미덕이라고 세뇌하는 교사, 너무 낯익은 모습 아닌가? 먼 미래, 디스토피아에서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 여기, 우리 사회에서 날마다 자행되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작가는 시점을 바꿔 패러디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처참한 현실을 대해 발언하고 있었다. 바람직한 미래의 모습은 실현되지 않고 시대착오적 폐습이 무한반복될 뿐인 뼈아픈 모습을 그린 것이다. 특히 체제의 모순을 절감하면서도, 순응할 때 주어질 달콤한 보상에 눈이 멀어 어떤 의미 있는 실천도 꾀하지 않는 우리의 허위의식을 건드린다.

 

하여 앞부분 몇 쪽만 읽고도 작가의 의도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약간 걱정스런 면도 솔직히 있었다. 자칫 메시지만 강조하다 르포르타주마냥 딱딱하고 지루한 얘기가 지지부진 이어지는 건 아닐까 우려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곧 기우였음이 드러났다. 심각한 얘기만 늘어놓아선 감정이입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작가는 잘 알고 있는 듯했다. 마음결을 빨아들이기 위한 장치들을 여럿 배치해두었는데 특히 등장인물의 심리적 갈등 묘사에 무척 공을 들이고 있다. 기득권 유지 기구로 작동하는 학교의 비민주적 실상을 파악한 새벽이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악어에게 제시했을 때 악어는 오히려 새벽에게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밑바닥에서 출발하자고 역제안한다. 흠칫하며 번민에 휩싸인 새벽의 모습이라니. 악어와 의기투합하여 사태 해결을 도모하는 과정에서 방법론의 차이를 두고 갈등하는 모습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인류의 선의에 호소하자는 새벽과 물리적 방법으로 대상을 제압하자는 악어, 그 팽팽한 신경전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며 이야기는 점차 고조된다. 갈등 상황에서 벗어나 단호한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심리적 흐름도 개연성 있게 그리고 있다. 새벽이 심경을 정리할 수 있었던 계기는 친구들의 따가운 일갈이었다. 새벽을 향해 살인자나 다름없다고 질타하던 악어의 눈빛과 맨발이 삐져나온 이오의 시신이 겹쳐지며 새벽은 결단한다.

 

작가는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추리적 요소도 가미하고 있다. 때론 지적인 게임으로 서사를 몰고 가기도 한다. 주어진 시간 내에 보안 시스템을 뚫고 시스템 접속이 가능한 포스트로 침투하여 암호와 비번으로 차단된 메트릭스에 로그인하는 과정은 스릴 만점이었다. 별별 기기묘묘한 아이디어가 다 동원되어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작가는 비관 일변도로 흐를 것 같은 분위기에 한 줄기 서광을 비추며 절망에만 빠져 있지 않게 이끌기도 한다. 암울한 현실,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벽 앞에 좌절하고 있을 때 가느다란 희망의 동아줄을 슬몃 건네준다. 성사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던 새벽의 시도가 반향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여주어 다시 우리를 고무하며 끌어당긴다. 메트릭스를 통해 학교의 실상을 외부로 알리고 국제기구에 고발한 새벽의 목소리에 조금씩 메아리가 울리기 시작하며 기자들이 몰려오고 여론은 술렁거린다.

 

한마디로 어둡고 답답한 얘기였다. 참혹한 미래, 아니 오늘 여기 우리의 뼈아픈 구석을 이보다 더 리얼하게 그릴 순 없달 정도였다. 그래서 읽기가 꺼려지고 때론 멈칫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갈수록 얘기의 결에 자연스레 빨려들게 되었다. 작가는 딱딱한 골격에 살을 붙이고 피가 돌게 하고 맞춤옷을 입혔던 것이다. 때론 추리물인가 싶다가, 더러는 성장소설 냄새도 풍기고, 어떨 땐 아릿한 사랑 얘기를 버무려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맥락이 단절되지 않게끔 끌고 갔다. 서사 속에 녹여낸 메시지가 이물감 없이 스며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바람직한 미래를 꿈꾸기 위해선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이제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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