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산장 살인 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산장 3부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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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모험적 시도로 파문을 일으키는 히가시노 게이고. 장르를 넘나들고 파격적인 플롯을 선보이며 소재나 캐릭터 설정에서도 전작의 그림자를 말끔히 지우곤 하는 그의 상상력과 생산성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되는지 경탄스러울 정도다. 매번 파고가 가팔랐지만 이번 파도는 특히나 쓰나미급이었다. 결말을 접하고 한동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단단히 한 방 먹었단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찝찝하지 않았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번번이 게이고에게 허를 찔리곤 했던 뼈아픈 경험이 있는지라 이번엔 정말 제대로 맞붙어 보고 싶었다. 독하게 마음먹고 장면 하나, 사건 전개과정의 사소한 흐름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예의주시했다. 그랬더니 얼핏 윤곽이 잡히는 것 같아 이제 됐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갈수록 눈앞이 흐려지며 여러 갈래 중첩된 그림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영락없어 보이던 인물이 어느새 멀쩡하게 선량한 사람으로 다가오고 의외의 돌발 사건도 터졌다. 이런 상황 변화 과정을 지켜보며 나름의 추리력을 발휘하여 용의선상에 올렸던 인물이 몇 있다.

 

거칠게 예단하는 것 같지만 도모미의 죽음이 사고사가 아니라 피살이었다고 못 박으면 맨 먼저 의심의 눈길이 가는 곳은 시노 유키에이다. 초입에서 아름다움을 감상하고플 정도로 빼어난 외모를 지녔다고 할 때부터 비중이 남다를 것 같아 마음이 쓰이더니 갈수록 심증이 굳어지는 걸 느꼈다. 유키에는 다카유키와 도모미의 연애 시절에 함께 어울렸던 외사촌이다. 그런데 다카유키를 바라보는 눈빛이 뭔가를 갈구하듯 예사롭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쩜 도모미의 연적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이면 누구나 선망할 남성성을 듬뿍 지니고 있는 다카유키가 끔찍이도 아껴주는 도모미. 그녀에게 부러움과 더불어 질투심을 느끼지 않았을까? 질투가 공격 성향으로 바뀌어 혹 도모미에게 해코지한 건 아니었을까?

 

두 번째로 혐의가 가는 인물은 도모미의 아버지이자 산장 모임에 일행을 초대한 모리사키 노부히코였다. 그는 처음부터 의외의 발언으로 분위기를 다운시킨다. 뜬금없이 딸이 살해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단순 사고가 아니었다고 단정하며 말이다. 일련의 사건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그는 너무 담담했고 사태를 의연하게 헤져나가는 모습에서 오히려 작위적인 느낌까지 들었다. 산장으로 불러 모은 사람들 모두 도모미 사건 관계자라는 것도 의심스런 대목이었다. 뭔가 의도한 게 있었던 건 아닐까? 혹 딸을 살해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아님 딸 살해범을 색출하기 위해 거짓 설정을 한 건지도 모르겠다. 일부러 극한 상황을 조성하여 모인 사람들의 밑바닥 속마음을 꿰뚫어보려고 말이다. 여러 모로 묘한 냄새가 났다.

 

또 억측이 지나친 건 아닐까 우려하면서도 인질범 진에게도 코를 벌름거리고 싶었다. 뭔가 구린 게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유키에가 안전하게 방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안심하는 모습에서 혹 둘이 연인관계는 아닐지, 그러면 도모미와 모종의 관계로 얽혀있는 건 아닐지 슬쩍 연결고리가 느껴지기도 했다. 연인이 다른 남자에게 새로운 감정을 느낀다면 간접적으로 충격을 주어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고자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추리가 중반부로 접어들며 벽에 부딪쳐 버렸다. 마당 흙바닥에 발로 썼던 구조 신호가 감쪽같이 지워지고 인질범 다구가 누군가가 건네준 수면제를 먹고 잠에 곯아떨어지는 등 의외의 돌발 사건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으니. 그리고 범인이 누군지 돌아가며 지목하게 된 상황도 명료한 추리를 방해했다. 해결의 실마리를 잡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더욱 꼬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특히 노부히코의 비서인 시모조 게이코의 치밀한 조사와 논리적 추리는 오히려 독이었다.

 

더더구나 혼란스러웠던 것은 인질 사건이 길어지는 와중에 의외의 변수가 발생하여 묘한 기류가 형성된 때문이다. 잡힌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갈수록 인질 상태의 위험과 불편함보단 도모미 살해범과 산장 살인범 쪽으로 관심이 급격하게 옮겨졌다. 자신들의 처지를 까맣게 잊은 채.

 

뭔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함정이 있는 것 같다고 되뇌며 곱씹어 봐도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한 번 더 쥐어짜며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고 달라 붙었다. 그러다 본래 범인의 캐릭터는 냉혈한이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누가 가장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는지 짚어보았다. 끝까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시크하게 군 놈이 진범 일테니.

 

또 게이고의 작품 속 설정은 하나도 허투루 넘길 게 없다는 점에 착안하여 뭔가 암시하는 상징물은 없었을까 따져 보았다. 얼핏 다카유키가 산장으로 들어서려할 때 출입문 위에 걸려있던 장식용 가면이 떠올랐다. 그 가면이 묘하게 위엄을 띈 얼굴로 다카유키를 내려다보는 듯했다는 대목에 뭔가 의미가 실려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제야 책 제목을 [가면산장 살인사건]으로 붙인 게 예사 일이 아님을 느꼈다.

 

문득 페르소나가 떠올랐다. 연극배우가 쓰는 가면을 이르는 말인데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사회적 자아로 위장한 배역을 뜻한다. 어쩜 산장에 초대받은 이들 가운데 사회적 페르소나로 자신의 에고를 은폐하고 연기를 하고 있는 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의 결이 어지럽게 이어지다 미처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덜컥 결말을 맞고 말았다. 아, 이럴 수가!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속았다 싶기도 하면서 이번엔 어느 정도 짚은 게 아닌가 하고 자위도 해 보았다.

 

역시 게이고는 게이고구나 하는 말이 자연스레 새나왔다. 이런 스케일의 반전을 다 기획하다니. 그 도저한 필력에 고개가 숙여졌다. 거대한 쓰나미를 정면에서 바라본 자의 외경심 같은 것이 일어나 전율이 확 끼쳤다. 해서 깨달았다. 아무리 해도 나는 시모조 게이코 수준을 못 넘어설 것 같다. 그러니 앞으로도 게이고에게 번번이 당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부득이 스포일러가 포함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점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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