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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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연수 작가가 소설 창작의 에센스를 담은 책을 냈다기에 잔뜩 기대에 부풀었는데 제목을 보곤 솔직히 의외다 싶었다. 이게 뭐람, 시큰둥 볼멘소리도 새나왔다. [소설가의 일]이라니, 그렇다면 소설가의 일상을 다룬 에세이란 말인가 하는 지레짐작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가 슬몃 오버랩되기도 했다. 갸웃거리며 읽어나가다 어느 순간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모르게 바짝 당겨 앉게 되었다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뭘 해도 김연수는 김연수였다. 아니 오히려 전작들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내밀한 육성을 듬뿍 담고 있는 제대로 된 물건이었다.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낸 부끄러운 고백까지 곁들여 아득하게 만들기도 했는데 살짝 미안한 감도 없지 않았다. 자신은 멀쩡한 채 상대의 밑바닥까지 봐 버린 당혹스러움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1. 살짝 깨놓는 업계의 영업 비밀

 

처음엔 소설 작법에 관한 작가만의 특별한 노하우를 기대하고 있다가 한 방 제대로 얻어맞았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어찌 보면 당연하고 심하게 말하면 한심한 수준의 얘기를 집요하게 늘어놓고 있으니. 말인즉슨 주인공의 캐릭터 같은 것 정하지 말고 플롯도 정교하게 짜지 말고 토 나오는 수준의 글이라도 무조건 쓰라고 강변한다. 무대포도 이런 무대포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생각하지 말자. 구상하지 말자. 플롯을 짜지 말자. 캐릭터를 만들지 말자. 일단 한 문장이라도 쓰자. 컴퓨터가 있다면 거기에 쓰고, 노트라면 노트에 쓰고, 냅킨밖에 없다면 냅킨에다 쓰고, 흙바닥뿐이라면 돌멩이나 나뭇가지를 집어서 흙바닥에 쓰고, 우주공간 속을 유영하고 있다면, 머릿속에다 문장을 쓰자.(199)

 

그러다 질릴 때쯤 슬몃 진의를 말하기 시작한다. 소설 작법이란 결국은 쓰고 생각하고 다시 고쳐 쓰는 작업의 연속이니 우선 원본 텍스트부터 마련해야 될 게 아니냐고. 그러려면 일단 생각나는 대로 끼적거리란 얘기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슬쩍 업계의 영업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오르한 파묵의 전언을 빌어 혹 소설가협회에서 자신을 제명하더라도 감수하겠다는 각오(?)까지 밝히며 말이다.

 

삼십 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드리죠.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쓰지 말고,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를 쓰세요.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마시고,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쓰세요. 다시 한 번 더 걷고, 먹고, 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언어로는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오직 감각적인 것들 뿐 이에요.(217-218)

 

일견 대단찮아 보이는 얘기 같지만 이런 방식으로 자신이 처음 쓴 토 나올 것 같은 글에다 뼈대를 잇고 살을 붙인 다음 피가 돌게 하여 결국은 [밤은 노래한다]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같이 완성된 작품으로 탈바꿈시킨 과정을 보여주었을 땐 아, 하고 무릎을 칠 수밖에. 그가 이끄는 대로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겉껍질이 벗겨지고 뽀얀 고갱이가 드러나듯 소설 창작의 얼개가 서서히 그려지는 것을 느꼈다.

 

2. 영업 비밀 세부 스펙

 

그는 내친 김에 화끈하게 업계의 영업 비밀을 깨놓고 있다. 이러다 정말 레드카드를 받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작가는 우선 나름의 공식과 방법론으로 소설 창작의 지난한 과정을 견뎌내는 비법을 알려준다. 그가 소설 창작의 공식이라 규정한 것부터 색다르다. 소설이란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 + 그에게 없는 것 / 세상의 갖은 방해 = 생고생(하는 이야기)]로 진행된다는 설명이 처음엔 생뚱맞게 들렸는데 갈수록 딱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대개 주인공의 캐릭터와 그가 처한 결핍의 상황을 전제하고 거기에 좌절을 수반하는 외적인 환경이 곁들여지면서 생고생하게 구조로 짜여있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 이 공식에 따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왜, 어떻게’라는 의문을 풀어나가다 보면 배경과 디테일이 어우러진 완성품에 이르게 된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작가는 또 기상천외한 제안으로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는데 문장 표현법과 관련하여 ‘빈도수 염력사전’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가상적 사전을 거론하며 이를 활용하여 어떻게 글을 써야 바람직한지 일깨우고 있다.

 

대화 속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와 표현은 앞쪽에 있고,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단어와 표현은 뒤쪽에 있다. 이 사전의 페이지는 손이 아니라 생각의 힘으로만 넘길 수 있다. 그러니까 갈피를 넘겨서 뒤쪽의 단어와 표현을 보려면 더 많은 생각의 힘, 그러니까 염력이 필요하다. 초인적인 염력을 발휘해 남들보다 훨씬 뒤쪽의 단어와 표현을 쓸 수 있다면, 그의 문장은 훨씬 좋을 것이다.(76쪽)

 

참신하고 생생한 문장을 만들려면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상투적인 요소들을 배제해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이 부분에서 소설가의 진정한 일이 무엇인지, 그들의 힘겨운 싸움이 어떤 대상을 두고 벌어지는지 짐작이 되었다. 염력을 발휘할 집념과 끈기가 없다면 애저녁에 소설쓰기를 그만 두어야 한다 생각하니 갑자기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는 듯했다.

 

작가의 각론은 갈수록 치밀하게 전개되어 플롯 구성, 감정이입 방법의 비법까지 구석구석 건드린다. 무림의 비급을 전하듯 말이다. 그 과정에서 플롯은 가급적 행동과 액션 중심의 3막 구조로 하는 것이 좋으며 이때 플롯의 생명은 현실을 얼마나 개연성 있게 그리는가 하는 핍진성 여부에 달려있다는 점을 특히 강조한다. 핍진성이 있어야 감정이입이 가능하고 내용에 몰입하게 될 수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3. 영업 비밀을 말하는 방식

 

작가들의 소설 창작론은 대개 고담준론으로 흐르기 쉽다. 우월한 지위에서 하수들을 내려다보며 시혜하듯 일러주는 갑질(?)의식이 알게 모르게 배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김연수 작가는 이런 예단을 무색하게 만든다. 보기 좋게 또 한 방 먹은 셈이다. 시시껄렁한 너스레를 늘어놓으며 괄호 안에 차마 내뱉기 뭣한 얘기를 담기도 하고 요즘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외계어와 이모티콘까지 남발하며 자폭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젠체하지 않고 스스로를 내려놓으니 읽는 이도 절로 무장해제할 밖에. 스스럼없이 그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그 이유란? 원래는 뭔가 데리다적이고 라캉스럽고 폴 드 만다운(“얘, 지금 뭐래니?” “제가 지금 졸다가 뭐라 그랬나요?”)(94)

 

어떻게 하면 소설가가 될 수 있는가를 더 고민했다. 어떤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원양어선을 타보란다.(‘차라리 인간이 되겠습니다. ㅠ ㅜ’) 또 다른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먼저 라캉이나 데리다부터 공부하란다.(‘에잇, 원양어선 쪽을 다시 알아보자.’)(99)

 

작가는 또 쉽게 말한다. 복잡한 원리와 구조를 또렷이 파악하여 진면목을 제대로 꿰고 있으니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끔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핍진성이라는 말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서사적 허구에 사실적인 개연성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수용하는 관습화된 이해의 수준을 충족시키는 소설 창작의 한 방법으로, 구체적으로는 동기 부여나 세부 묘사 등의 소설적 장치를 들 수 있다.’(80)라며 머리에 쥐 내리는 수준의 담론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진실처럼 들리게 말하는’(81) 것이라는 누구든 쉬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풀어주는 식으로 말이다.

 

작가는 또 도형을 그려가며 이해도를 높이는 남다른 방식도 취하고 있다. 소설 속의 말을 다루는 방식을 얘기하면서 동심원 다섯 개로 형상화한 그림을 제시한다. 도형 안쪽에 놓여있는 욕망, 사회적 감정 등 빗금 친 부분은 제외하고 원 바깥에 위치하고 있는 표정, 몸짓, 행동, 말 같은 구체적 수단으로 서사를 이끌어가야 함을 빤히 보이도록 생생하게 일러주고 있다. 이렇게 특이한 화법으로 리얼하게 들려주는 영업 비밀의 세부 사항을 접하니 다시 소설을 쓸 수도 있겠단 생각에 고무되기도 했다.

 

4. 영업 비밀이 찡한 이유

 

그런데 작가는 소설 작법을 형식 논리와 기교 중심으로 이끌고 가지 않는다. 한 결 같이 인간의 삶과 결부시켜 발언한다. 소설 창작의 소재뿐 아니라 창작 기법을 다루는 부분에도 삶의 지혜가 잔뜩 녹아 있다. 소설은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소설을 쓰는 일은 ‘인생이라는 게 원래 뭐 그따위’라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는 일로 시작한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처음부터 잘 사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그건 소설도 마찬가지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소설은 시작된다.(92)

 

우리가 사이코패스와 시선을 안 마주치려는 이유는 그자가 우리의 심연을 반영하기 때문이 아니라 한없이 저열하고 하찮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직 살인하고 죽이기만 하는 소설을 우리가 싫어하는 까닭은 심성이 착해빠졌거나 그게 인간의 추잡한 일면을 반영하기 때문이 아니라 서사적으로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 살배기도 악을 저지를 수 있듯이 한 번도 제대로 글을 안 써본 사람이라도 살인하고 죽이기만 하는 소설은 쓸 수 있다. 서사적으로 봤을 때 그런 이야기는 단순한 구조라 쓰기 쉽다.(158)

 

작심한 듯 들려주는 작가의 얘기를 듣다 소설 창작 기법보다 더 값진 깨우침을 얻은 것 같다. 냉랭한 논리보다 숨결이 느껴지고 온기가 배어있는 글은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법이다. 작가의 얘기를 듣는 동안 여러 번 울렁거렸다.

 

5. 역시 김연수 작가답다

 

하여 작가의 소설 창작론은 그렇고 그런 또 하나의 지침서가 결코 아니었다. 소설과 삶을 아우른 곡진한 진실을 담고 있었다. 잡스런 데 한 눈 팔지 말고 오로지 치열하게 쓰고 생각하고 고치는 게 소설가의 일임을 단호하게 밝힌 대목에선 [소설가의 각오]가 어른거렸다. 세부적인 창작 기법을 삶과 연계하여 들려주는 그의 목소리는 다정다감 살갑게 다가와 시종 울렁거리며 공감하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작가와 비밀스런 부분을 공유한 듯 어느새 그의 심경이 나의 그것이 되었단 고백도 해야겠다. 마치 작가가 전 대통령을 생각하듯 말이다.

 

다시 2009년 4월 말의 일로 돌아가자. 친구와 언쟁을 벌이고 난 뒤에도 나는 내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좌절과 환희를 지켜본 나는 어느 틈엔가 그의 이야기에 감정이입된 독자와 같은 처지가 됐기 때문이었다. 그를 통해서 좌절과 환희를 맛봤다면, 치욕이라고 왜 맛볼 수 없겠는가는 생각이 들었다. 꼭 남몰래 연애를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를 욕한대도 나만은 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감정이입이란 그런 것이다. 이성적이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그건 마치 사랑 같은 것이다. 몸으로 느껴지는 것이지, 머리로 설명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리고 한 달 뒤, 나는 지난 일을 생각하다가 불쑥 눈물을 흘리곤 했는데, 정말이지 그건, 사랑을 잃은 느낌 같았다.(163~164)

 

김연수 작가에 감정이입이 된 듯 읽는 내내 눈가가 촉촉했다. 울렁거렸다 촉촉해졌다 하는 건 사랑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반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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