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음 / 마음의숲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페루를 다녀 온 세 명의 싱겁한 꽃청춘(?)들의 노래를 즐겨 듣고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왠지 윤상의 노래 [달리기]가 유난히 귀에 꽂힌다 할까. 특히 이 대목, "단 한가지 약속은 틀림없이 끝이 있다는 것, 끝난 뒤엔 지겨울 만큼 오랫동안 쉴 수 있다는 것" 에선 한동안 사고가 멈추는 것 같다. 삶의 비의를 더 이상은 설명할 수 없을 듯하니 말이다. 핵심을 직관적으로 건드리고 있다.

 

김연수의 에세이 [지지 않는다는 말]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어쩜 시시껄렁한 얘기들을 설렁설렁 풀어나가다 짧게 한 마디 촌철살인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얘기를 끌고 가는데 마지막엔 거개가 달리기에 빗대 삶의 지혜를 들려주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끈기가 없는, 참으로 쿨한 귀' 편에서 자신의 음악 취향이 늘 짧게 표변하곤 하여 진득하게 한 노래에 매달리지 않는 팔랑귀라고 자책한다. 그러면서 이를 달리 생각하면 새로운 장르, 신보를 거리감을 두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니 늘 좋은 것만을 취하는 셈이라고 스스로 위무한다. 평생 최고의 노래만을 듣는 방법이라고 말이다. 그런 얘기 끝에 최고의 삶이란 달리기와 같이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발언한다.

 

"결국 최고의 삶이란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경험하는 삶이라는 뜻이다. 겨울의 달리기는 정말 대단하다. 그건 달리기가 아니라 고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름의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폭염 속을 달리고 있으면 뜨거운 바람 때문에 숨이 막힌다. 하지만 여름에 할 수 있는 최고의 달리가란 뜨거운 햇살과 서늘한 그늘을 번갈아 가며 지나가는 달리기다. 30도가 넘는 낮에 달린 일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두 달만 지나도 이제 그런 달리기를 하긴 어려워질 텐데. 최고의 달리기를 하는 건 정말이지 너무 쉬운 일이다. 그렇다면 최고의 삶도 마찬가지다."

 

음악 취향과 삶과 달리기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전언을 듣고 있노라면 최선의 삶을 영위하는 것도 별로 어렵지 않을 듯하다.

 

이 책엔 그 외에도 작가의 유년 시절부터 청년기, 등단 이후 그리고 불혹의 나이가 된 이후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들어 있다. 맥주를 마시며 혹은 도서관에 다녀오다가 문득 스친 생각의 편린들을 담고 있다. 그의 내면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는 느낌이다. 물론 그의 최고의 관심사인 달리기에 대한 성찰도 듬뿍 담겨 있다. 그에게서 짧은 얘기 여러 편을 들어 어쩜 가볍다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곰곰 들여다보면 내심 웅숭깊은 고백으로 빼곡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한 편 김연수의 대표작을 읽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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