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프로이트 - 위대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삶과 꿈
코린 마이에르 지음, 안 시몽 그림, 권지현 옮김 / 거북이북스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그동안 프로이트가 직접 썼거나 다른 이들이 그의 생애와 사상을 분석한 책 몇 권을 읽어보았지만 이 책만큼 인상적인 것은 없었다 하겠다. 만화 형식으로 접근한 것이어서 처음엔 아이들 그림책마냥 겉핥기 정도에 그치는 게 아닌가 염려했는데 기우였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으니. 코린 마이에르의 글도 직관적이고 명료하게 정리된 것이어서 프로이트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화가 안 시몽의 빼어난 삽화가 이 책의 깊이와 품격을 더 두드러지게 만들고 있다. 세밀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추상화도 아닌, 구상과 비구상을 오가며 독자들이 쉽게 프로이트의 세계에 진입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생애와 사상은 온통 파란만장하고 대부분 눈길을 끄는 것들이지만 이 책에서 특기할만한 대목 몇 군데가 우뚝 돋보였다. 먼저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통한 정신분석을 시도하게 된 계기를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 눈에 확 띄었다. 1897년, 외롭고 우울증에 시달리던 프로이트는 스스로를 분석해 보고픈 충동을 느낀다. 그 과정에서 프로이트는 친구인 빌헬름 플리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몇 가지 켕기는 것들을 곰곰 짚어보게 된다. 그 기억들은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하게 아른거린다. 어릴 적 여동생에게서 민들레 한 다발을 빼앗았던 것, 엄마의 벌거벗은 몸을 목격한 일, 시각장애인이 성기를 내놓고 노상방뇨하는 소변을 통으로 받는 모습 등을 연쇄적으로 떠올리며 그는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 과정을 안 시몽은 각종 도형과 물건이 그려진 뇌구조 모양의 미로로 형상화하여 물음표로 나타낸 핵심에 도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프로이트는 이를 통해 꿈은 그림 수수께끼와 같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면서 꿈은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잠을 지켜주는 수면 유지 기능도 있으며 판단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단지 기억을 변형시키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의 이론을 소개한 것 중에선 무의식에 대한 설명과 그림이 압권이었다.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으로 가는 지름길로 여겼다. 이르마라는 환자를 치료한 경험을 통해 환자에게 진료 과정에서 차마 할 수 없었던 말을 꿈속에서 내뱉는다. 죽어라!
무의식적 실언, 말실수나 문득 떠오른 재치 있는 말도 속마음을 드러내는 변형된 방식으로 보았다. 회의 진행을 부담스러워하는 의장은 개회선언을 해야 할 상황에서 폐회사를 해버리고 거지는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에둘러 나타내며 남편은 아내와 헤어지고픈 마음을 무의식적 중 내뱉는다는 것이다.
무의식적 실착, 실수는 욕망을 드러내는 또 다른 방식으로 보았다. 비너스상을 떨어뜨리는 행위는 다른 골동품을 구매하고픈 욕구가 드러난 것이란 얘기다.
무의식과 더불어 프로이트가 강조한 핵심 개념이 신경증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다. 프로이트는 억압된 성이 신경증의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처럼 말이다. 프로이트와 성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 하겠다. 그래서인지 프로이트의 정신과 병원 주소까지 야릇하게 여겨졌다 할까? 베르가세 거리 19번지, 그 19에 쳐진 동그라미가 내 눈엔 왜 그리 크고 빨갛게 보였던지?
프로이트의 생애 후반부를 다루고 있는 부분도 새겨볼 만하다. 여러 학자나 예술가들과 교유하고 정신분석학파를 결성하였으며 동료들과 견해 차이로 결별하는 등 그의 생애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2차 대전 중에는 나치에 점령당한 오스트리아를 탈출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인류의 파괴 본능과 죽음의 충동에 대한 직관도 가능했으리라.
번역가의 유머러스하고 직관적인 말투도 흡인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쥐 인간의 사례를 소개하며 그의 뇌구조와 내뱉은 말들을 열거하는데 글쎄 쥐띠, 쥐드래곤, 쥐며느리가 등장하는 게 아닌가? 친숙한 어휘들로 분위기를 살리며 내용에 몰입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만화 장르라 하여 후루룩 읽어버리고 말 성질이 아니라 하겠다. 그림 하나 하나가 의미를 담고 내용을 실어 발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프로이트의 저작이나 학자들의 관련 서적에서 무의식이니, 신경증 등등 난해한 관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독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프로이트의 세계에 손쉽게 접근하여 그의 진면목을 명료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