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문장 한국어 글쓰기 강좌 1
고종석 지음 / 알마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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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생각만 해도 숨이 턱 막혀오는 일이다. 우리말 특유의 섬세한 결을 살리면서 정확한 논리적 근거에다 기품까지 갖춘 글을 쓰기란 까마득 멀어 보인다. 종종 글이랍시고 끼적거리지만 이게 과연 제대로 된 건지, 다른 이들에게 가닿는 의미 있는 글인지 자문해보면 슬몃 꼬리를 내리게 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간 글쓰기에 관한 책 몇 권을 살펴보았지만 진작 알고 있던 기법을 확인하는 정도여서 만족할만한 답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엔 제대로 걸렸다 싶다. 고종석의 글을 읽고는 어렴풋하게나마 윤곽이 잡히는 것 같고 왠지 의욕이 되살아났던 것이다. 글쓰기 형식에 관한 기초 이론에다 글 내용에 담길 컨텐츠의 배경지식은 물론, 우리말을 맛깔스럽게 살리는 기법에 이르기까지 막힘없이 이어지는 그의 얘기를 따라가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느낌이 들었다 할까? 그는 글쓰기를 업으로 하지 않는 아마추어 작가들이 늘 묵직하게 지니고 있던 체증을 후련하게 뚫어주고 있었다. 그것도 전문가 특유의 젠체하는 밉살스런 모습이 아니라 이웃집 아저씨 같이 친근하게 다가와 두런두런 얘기를 풀어나가고 있어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었다. 압권은 이론 설명에만 그치지 않고 실제 텍스트를 분석한 다음 첨삭까지 곁들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꼼꼼하게 짚어가며 잘못되었거나 어색한 부분을 하나하나 바로잡아 어느새 아름답고 정확한 글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은 절로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고종석은 특히 우리말다운 글쓰기를 강조한다. 일본어 풍을 쏙 빼고 유럽 자연언어의 영향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는 번역문투를 최대한 배제하여 한국어 특유의 감칠맛을 도드라지게 살리는 글쓰기 말이다. 그 단적인 예로 우리말에 특히 발달되어 있는 의성어와 의태어 활용을 권하고 있다. 풍부한 색채어를 구사하여 다른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섬세한 감정의 결을 오롯이 느끼게 하는 것도 비법으로 제시한다.

 

그는 또 정확하고 논리적인 글쓰기의 중요성을 몇 번에 걸쳐 힘주어 말한다. 깔끔하고 멋스런 글보단 사실에 부합되는 글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맞춤법과 문장의 호응 등도 유의해야 하는데 이는 글의 완성도를 확인하는 퇴고 작업을 통해 면밀히 보완되어야 할 점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자주 글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배경지식을 곁들이고 있다. 그래서 글 쓰는 기법은 물론 상식의 폭을 넓힐 수 있어 흐뭇했다.

 

기품 있는 글쓰기도 고종석이 강조하는 것 가운데 하나다. 글의 품격은 글쓴이의 인격과도 관련이 있지만 읽는 이를 존중하는 차원에서도 꼭 필요한 일임을 말하고 있다.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글쓰기 풍조가 만연하고 있는 요즘 세태에 비추어 다들 새겨 들어야 할 대목이라 하겠다.

 

이 글을 쓰는 사람이 정말 기분이 더럽기 짝이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절대 글에서 써서는 안 될 표현입니다. 격앙된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글의 기품을 떨어뜨리는 짓입니다. (148쪽) 

 

그런데 기품을 강조한다 하여 고급스런 취향이나 지적 우월감 과시 같은 것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오히려 그의 말과 글은 수더분해 보일 정도로 스스로를 낮추고 있다. 그는 특히 자신을 돋보이려는 의도로 씌어진 젠체하는 글을 혐오한다.

 

‘그건 내가 처음 한 말이야!’하고 잘난 척하기 위해서 쓴 글입니다. 이런 글은 쓰지 마세요. 쓰고 나서 후회합니다. (153쪽)

 

깐깐한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그는 말글살이에 관해 너그러운 스탠스를 취하고 있어 신선하게 다가왔다. 글의 품격을 떨어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SNS언어 등 사회 방언과 특정 계층의 하위문화인 신조어도 허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언중의 영향력을 인정하는 개방적 입장을 여러 군데 드러내고 있다. 더러 문법에 어긋나는 말과 글도 언중이 즐겨 사용하면 언젠가 길이 되듯 자연스레 받아들여 질 것이라며 시대 변화에 따른 언어의 부침과 변화를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걸으면 길이 되고, 많은 사람이 말하면 표준어가 됩니다. 표준어에 대한 최종 심판권은 언중입니다. 그래서 저는 SNS의 사회방언들을 대할 때 흐뭇합니다. (247쪽)

 

앞에서 얘기했듯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실제 글쓰기 첨삭지도 코너라 하겠다. 그런데 텍스트로 삼은 것이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수강생 두 명의 글을 제외하곤 모두 그의 책 [자유의 무늬]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비록 자신이 쓴 글이지만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던 부족한 대목을 신랄하게 자아비판하고 있어 때론 말리고 싶을 정도였다. 잘못된 글쓰기 사례, 뱃 케이스로 자신의 글을 지적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앞에 든 책에 실린 글을 인용하고선 이 문장은 나쁜 문장이라고 단언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서 ‘개인적으로’라는 말이 과연 필요할까요? 여러분 생각은 어떠세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내가 개인적으로 생각하지, 집단적으로 생각하겠어요? 이런 쓸데없는 말은 다 쳐내야 합니다. 그냥 나쁜 말버릇일 뿐입니다. 간결한 문장이 좋은 문장입니다. 필요 없는 말은 절대 쓰지 마세요. (138쪽) 

 

글을 어떻게 쓰는 게 나쁘게 쓰는 것인가에 대한 가장 적나라한 예입니다. 여러분은 절대 이러시면 안 됩니다. (140쪽)

 

이렇게 여러 미덕을 두루 갖추고 있어서인지 그의 글은 쉽게 읽히면서 마음까지 훈훈하게 만든다. 처음엔 딱딱하고 난해한 문법서이면서 정교한 논리가 전면에 도드라지는 냉랭한 글일 거라 지레짐작 했는데 어쩜 허술하달 정도로 친근하게 다가와 그의 자장으로 슬몃 이끌고 있어 솔직히 의외란 생각도 들었다. 래포 형성이 되었기 때문이랄까, 몰캉하고 따스한 글은 어느새 방어기제를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면서도 꼭 필요한 얘기는 정확하게 전하고 있었다. 설득과 더불어 의사소통에도 성공한 것이다. 글쓰기를 앞두고 막막하던 마음 뻥 뚫린 기분이다. 같은 이유로 답답해 하며 망설이는 이들이 있다면 그를 권하고 싶다. 한 줄기 서늘하고 기분 좋은 바람을 쐰 것 같은 청량감을 한껏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일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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