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 문학과 예술로 읽는 서울의 일상
류신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잘 짜인 한 편의 문화인류학 논문을 읽은 듯하다. 아니 논문이라기엔 뭣하다. 재기발랄한 실험적 문장에 웅숭깊은 얘기들을 담아내어 재미와 의미를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으니 말이다. 읽는 동안 내내 작가에겐 타향인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어쩜 이토록 절절하고 애틋한 감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었다. 빨려들게 만든 연유를 몇 가지 구체적으로 짚어보자.

 

우선 그의 논리 전개에 빨려들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글을 왜 이런 방식으로, 또 이런 스타일의 문장으로 기술했는지를 장황하달 정도로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는데 그 방법론을 따라가다 보면 지적으로 새로운 것들을 얻을 수 있고 정서적으로 그의 생각의 결에 자연스레 공감하고 만다. 그의 논리는 모든 단계를 여과식으로 밟으며 한 지점으로 수렴되도록 몰고 가기 때문에 읽는 이들의 자발적 동의를 불러일으킨다 할까? 자신이 왜 벤야민의 방법론을 차용했는지를 밝힌 다음 이를 구현할 페르소나로 소설가 구보 씨를 설정한 연유를 들고 있다. 그러면서 왜 비평과 소설의 융합 형식으로 글을 구성했는지 자신의 서술방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소설처럼 읽히는 재미있는 문화 비평, 소설이 된 평론인 서사 비평(epic-criticism)형식으로 이끌겠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순차적이고 치밀한 플로우 차트를 접하니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하여 그의 글은 한 편의 논문이라 해도 무방하다 하겠다. 특히 이론적 배경을 명료하게 구성하여 논리의 신뢰도를 높인 논문 말이다. 또 논문인 동시에 테마가 있는 에세이라 해도 되겠다. 경쾌한 호흡의 실험적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필자가 벤야민의 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발터 벤야민이 시도했던 아케이드 프로젝트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파리를 걸으며 떠올린 사유 이미지를 2차 텍스트로 재현하고자 한 도시 전문 관상학자의 방법론이 서울을 잘 이해하는데 딱 안성맞춤이라고 여긴 것이다. 필자가 내세운 벤야민의 분신도 이채롭다. 내러티브를 이끄는 주인공으로 허구의 인물인 구보 씨를 설정하고 있다. 비평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풀어내기 위해 소설가 구보 씨를 패러디한 삼인칭 화자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구보 씨의 페르소나가 무척 마음에 끌렸다. 구보 씨는 어쩜 나의 분신이기도 한 듯했기에 말이다. 그래서 나도 기꺼이 구보 씨가 되어 아니 그의 동선을 따라 함께 걷기로 작정한다.

 

21세기 구보 씨는 다중적 정체성을 지닌 입체적 인물이다. 그는 무기력한 지식인 룸펜이자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딜레탕트이면서 자기 개성과 취향을 고수하는 댄디다. 일상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 소시민이면서도 자본주의의 모순을 외면하지 않는다. 진보적 정치 이상을 품고 있지만 그 뜻을 실천하기에는 인성이 심약하고 기질이 우울하다. 지리멸렬한 삶에 덧없음을 느끼다가도 현실을 냉소하고, 소심하며 과대망상에 시달린다. 디지털 중독자이면서 디지털 반성자다. 문명 비평론자이면서 도회적 감수성을 향유하는 도시의 아이다.(14~15쪽)

 

다면적이고 유동적인 도시 복합체 서울을 이해하려면 이렇게 다면적인 인물이 적합할 것이다. 구보는 곳곳에서 벤야민 식 사유 이미지를 포착한다. 도서관으로 리모델링된 서울시청의 옛 청사 2층 자료실에서 구보는 상상한다. ‘서가와 서가 사이의 통로는 지식과 학문의 여신 아테나가 지나는 독서가를 유혹하는 아케이드다.(92쪽)’라거나 롯데백화점에서 ‘도서관이 지식의 소우주라면 백화점은 상품의 은하수였다.(106쪽)’며 사유 이미지를 끌어올리고 있다.

 

또 필자의 탁월한 문장력도 시선을 흡인한다. 읽다가 몇 번이나 무릎을 치곤했다. 이를테면 이른 대목에서다.

 

서울은 비정한 사실주의와 불온한 초현실주의가 길항하는 난해한 텍스트였다. 광활해서 방위를 가늠할 수 없이 막연했고 조밀해서 갈피를 잡을 수 없이 몽롱했다.(9쪽)

 

구보는 그제야 트리니티 가든, 즉 삼위일체 정원에 놓인 거대한 초콜릿 봉지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간파했다. 이곳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숭고한 삼위일체가 역사하는 성소가 아니었다. 물신과 상품(물신의 아들)과 욕망(물신과 상품의 영혼)이라는 ‘소비 자본주의 삼위일체’가 역사하는 ‘신성한 심장’이었다.(113쪽)

 

문장도 아름답지만 담고 있는 텍스트의 깊이도 예사롭지 않다. 그러니 공감하면서 빨려들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런 미덕들을 지니고 있으니 어찌 그의 글에 매료되지 않겠는가?

 

하여 류신의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한마디로 지적 목마름에 답하면서 감성의 결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빼어난 작품이라 하겠다. 소논문의 품격을 지닌 지성의 결집체이자 애틋한 감성을 뭉클뭉클 솟구치게 만드는 중수필(에세이)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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