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 - 로마에게 해악은 분열이 아니라, 번영이었다.
샤를 드 몽테스키외 지음, 김미선 옮김 / 사이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위시하여 로마제국 흥망의 원인을 분석한 책들은 그동안 꽤 있어 왔다. 그런데 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는 이런 모든 근대 저작물의 전범이자 모태가 되는 기념비적 저작이라 하겠다. 연도가 앞선 것뿐만 아니라 담고 있는 내용의 깊이와 접근 방법의 독창성이 이후에 발간된 책들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관련 저작 대부분이 그의 책에 기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책은 18세기에 씌어졌다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밀한 논리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두드러지게 다가온 미덕 몇 가지를 꼽아보고자 한다.

 

우선 로마 몰락의 원인에 대한 인식이 기존의 상투적인 논리를 훌쩍 뛰어넘고 있어 무척 신선하다. 로마 몰락의 원인이 전쟁 패배에 따른 제국 자체의 쇠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번영과 팽창에서 비롯되었다는 독특한 시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며 대제국을 건설한 것이 오히려 몰락의 빌미가 되었다는 분석에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역발상도 그런 역발상이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차근차근 몽테스키외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 공감하게 되었다 할까? 작은 도시국가 규모의 공동체일 때는 오순도순 공화정을 펼쳐나가며 수준 있는 삶을 영위하던 로마인들이 인접 국가를 정복해가며 판도가 넓어지게 되자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권위주의 지배 스타일을 채택하게 되고 이로 말미암아 그들이 누렸던 정치적 자유가 위축되면서 자연스레 민중의 활력이 저하되었다고 분석한 대목에선 무릎을 치고 말았다. 또 정복 과정에서 획득한 부의 증가에 따라 빈부격차가 커지는 불평등 문제가 심화되고 지배 스타일의 차이에 따른 당파주의도 횡행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자연스레 공동체의식의 실종으로 이어져 제국 소멸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논리를 펴고 있다.

 

이렇게 분석하는 과정에서 몽테스키외는 국가의 힘이 정복의 규모나 지속적인 정복행위 수행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 내부의 건강함에 좌우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국가의 융성이 정복과정에서 노획한 부에 있지 않고 내부 구성원들의 도덕의식을 기반으로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공동체의식의 실종은 결국 집단의 건강한 생태계를 해치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논리이다. 몽테스키외는 로마제국의 멸망이 특정세력의 한 번 침입 때문이 아니라 이런 모든 내적 모순들이 누적되고 그 위에 여러 번에 걸친 이민족의 침입, 이를테면 아라비아인, 투르크인, 십자군 등의 침입에 의해 산산조각 나버렸다는 보고 있다.

 

두 번째로 짚고 싶은 것이 로마제국 몰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군데군데 드러나고 있는 몽테스키외의 정치철학이 무척 진보적이라는 점이다. 여러 면을 따져볼 때 몽테스키외는 근대 공화국을 지지한 공화주의자임이 명백하다. 계몽의 시대라고는 하지만 아직 루이 14세 같은 부르봉 왕조가 건재한 때에 왕정보다 공화정을 이상적 정치체제로 보았다는 점은 파격이라 하겠다. 그는 고대 로마의 미덕을 회복하자고 본 것이리라. 군주제의 불평등보다는 로마 초기 시행되었던 공화제의 평등을, 군주의 영광보다는 공화주의적 애국심을 찬탄하며 로마를 모델로 한 근대 공화국을 바람직한 정치체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들고 싶은 이 책의 미덕은 과학적인 접근 방법을 사용한 근대적 연구 태도이다. 이 책에서 몽테스키외는 역사적 사건의 단순한 서술에 그치지 않고 많은 사건들을 관통하는 연결고리를 찾아 공통의 원인을 지적하는 등 탁월한 연구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사소한 사건 속에 내재되어 있는 의미심장한 장면들을 놓치지 않고 있으며, 주류 역사학에서 소홀히 다뤄진 것들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광범위한 각주를 사용하여 정연한 논리를 펴는 등 과학적 사고에 입각한 엄정한 연구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힘 있는 문체에 실린 명료한 논리는 지금 읽어도 결코 손색이 없을 정도로 수준 높은 연구 보고서라 하겠다.

 

이렇게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는 로마 몰락의 원인을 제국의 팽창에서 찾는 독특한 접근에서부터, 깊이 있는 정치 철학적 토대에다 정밀한 근대적 연구방법의 도입에 이르기까지 여러 모로 다른 책에서 보기 드문 미덕으로 빼곡하다. 더불어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삽화도 글의 이해를 돕고 있어 쉽고 편하게 읽혀진다. 하여 근래에 접한 인문 사회 저작 가운데 첫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눈에 확 들어오는 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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