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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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즐기다 보면 동료들과 가벼운 언쟁을 벌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여러 갈레로 나뉜 길목에서 각자의 성향에 따라 살풋 신경을 돋우곤 하는 것이다. 데크가 설치되어 편하게 걸을 수 있는 반듯한 길을 택하자는 이도 있고 산야초가 엉겨 있고 돌부리 발에 채는 쪽으로 가자고 굳이 우기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이유를 물어보면 하나 같이 멋있잖아, 얼마나 아름다운데 하며 꿈꾸듯 달뜬 표정을 짓곤 한다. 겨우 추스르고 한 구비 돌아 너럭바위에라도 걸터앉으면 예의 그 취향 타령이 또 나오기 십상이다. 하여 다시 난기류에 휩싸인 듯 술렁거리게 되고. 뱀이 기어가듯 굽이치는 강물을 보고 대자연의 경이로움에 감탄을 연발하는 한편에선 저건 직강 공사를 하여 천변 공원을 만들고 유람선이라도 띄워야 제격인데 하며 안타까워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럴 때마다 아름답고 멋진 것을 바라보는 눈은 정말 사람마다 제각각인가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이렇게 모두가 나름의 미의식을 지니고 있으니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하고 또렷하게 내세우는 건 불가능한 일인 듯싶다. 하여 예나 지금이나, 또 양(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상대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할밖에. 타인의 견해에 대한 관용과 존중이 미덕으로 회자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 아름다움의 궁극적인 지경을 확연하게 보여주어 범접 못할 절대적인 선을 그어버린 이가 있다. 일본 전국시대의 패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인, 센 리큐가 바로 그다. 일생을 오로지 지선극미한 아름다움의 절대적인 경지를 추구하다 결국 불타협의 정신으로 죽음마저 흔연하게 받아들였던 리큐. 그러나 그는 다른 이들의 심미안 따위는 도무지 고려할 가치조차 없는 하찮은 것이라 치부하며 극악무도한 만행을 서슴지 않던 냉혹한 사내이기도 했다. <리큐에게 물어라>는 이렇게 아름다움의 극과 극, 그 백척간두를 아슬아슬 내딛던 리큐의 행보와 심경, 그리고 미에 대해 광적이리만치 집착하던 연유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작가 야마모토 겐이치는 아름답고 유장한 글로 리큐의 그것을 지금 막 눈앞에서 벌어진 일인 양 고스란히 살려내고 있는 것이다. 하여 때론 심미안이 확 열리도록 고양시키고 더러는 조마조마 가슴 태우며 이게 아닌데 하고 번민하게도 만들었다.

1. 아름다움, 그 지선극미한 세계

리큐에게 아름다움이란 절대선이었다. 그 지선극미한 지경에 이르고자 평생 분투하였고 자신이 도달한 그 세계를 불타협의 정신으로 지켜나갔다. 지극한 아름다움은 어떤 이의 눈, 심지어 비뚤어진 시각 일색의 변덕쟁이조차 바꾸어버린다. 모든 오탁 세계, 탐진치의 질곡을 순백의 지경으로 만들어버리는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속 좁은 히데요시에게도 리큐의 미의식은 밉살스러울만치 도저했다. 아무리 애써도 가 닿을 수 없는 지경에 군림하는 구름위의 스승이 리큐였던 것이다. 도요토미는 리큐의 다도와 인격이 도달한 경지를 시험하고자 별별 난처한 상황을 제시했으나 그때마다 리큐는 보기 좋게 기를 꺾어버렸다.

나팔꽃 한 송이를 인상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정원에 핀 꽃을 전부 꺾어버린다든지, 서원에 꽃을 꽂으라 명하니 정원의 투박한 돌에 쇠로 만든 화기를 올려놓고 꽂기도 하였고 청동 물그릇과 홍매 한 가지만 장식단에 두고 손을 보라 했더니 홍매 가지를 훑어 꽃과 봉오리를 뗀 다음 물에 띄워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풍정을 자아내기도 했던 것이다. 어떤 날은 좋은 화기가 들어왔다고 히데요시를 부른 다음 시치미 뚝 떼고 있다가 다석을 파한 후 정원 쓰레기 구멍에 동백꽃이 떨어져 있는 것을 가리키기도 했고 또 언젠가는 지저분한 문어 항아리를 고귀한 다석의 퇴수기로 쓰는 창의성을 발휘하여 좌중을 압도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상대의 의도를 간파한 파격적이고 순발력 있는 대응의 밑바탕에는 아무도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일관되게 우아한 미의식이 깔려 있었던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의 안목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미의 절대적인 지경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러니 다도를 혐오하던 도요토미의 군사 구로다 간베에조차 “그 노인의 행다는 빈틈이 없고 막힘이 없다. 인체가 움직이는 이치를 잘 알기에 도구를 드는 법, 다루는 동작이 실로 자연스럽고 헤픈 데가 없다.”(227쪽)하고 감탄하며 사람과 사물의 이치에 통달한 리큐의 가르침을 받고자 청하기도 했고.

그러면서도 리큐는 허식도, 과시욕도, 이해타산도 내세우지 않고 그저 차 한 잔을 끓이는 데만 전념하며 오로지 다구 너머에 있는 아름다움의 세계만을 응시하였다. 이렇게 자유분방한 풍취가 한량없이 파격적이면서도 천의무봉 우아한 품격과 고매함, 그리고 그 고매함이 아니꼬워 보이지 않을 만한 겸양까지 지니고 있었으니 리큐는 가히 다도를 절대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하겠다.

2. 아름다움, 그 극악무도한 세계

그러나 지극하면 지나치기 쉬운 법, 리큐의 내면에 극악무도한 모습도 어른거렸다. 리큐는 아름다움을 얻고자 먼저 대상을 깨뜨리곤 했다. 그렇게 선망하던 구원의 여인, 고귀한 조선 여자의 목숨을 앗아버렸고, 스승이 애지중지하던 화기의 손잡이를 단번에 부수기까지 했던 것이다. 리큐의 속내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고 있던 아내 소온조차 모두가 탐내던 그의 애장품 녹색 향합을 석등에 내리쳐 산산조각 내버리기도 했던 것이고.

리큐는 또 탐진치로 얼룩진 집착의 화신이었다. 히데요시조차 너만큼 욕심과 색이 강한 사내는 달리 본 적이 없다고 감탄할 정도로 극악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죽어가는 여자의 새끼손가락이 아름답다고 영원히 간직하고픈 마음에 물어뜯기까지 했다.

“여자의 새끼손가락은 분홍색 손톱이 너무나도 아름답기에 요시로가 물어뜯어 작은 녹유 단지에 넣어 품에 지니고 다녔다.”(476쪽)

리큐의 내면에는 펄펄 끓는 지옥의 가마솥 같이 탐욕스런 미에 대한 욕심, 집착이 있었는데 그 불길은 독성이 짙게 배어 있어서 노부나가나 히데요시도 그를 내심 경원할 정도였다. 아버지는 말할 것도 없었고.

“자식 놈은 아름다운 것에 대한 집착이 남보다 갑절은 강합니다. 그 정도로 품위 있는 여자를 남에게 넘기느니 차라리, 그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420쪽)

“다도에는 사람을 죽이는 한이 있어도 갖고 싶을 정도의 크나큰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도구만이 아니라 행다의 동작에서도 그런 아름다움이 드러날 때가 있지요.”(287쪽)

오죽하면 아내 소온조차 아름다운 것을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살인도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말했을까. 본처인 다에, 후처인 소온과 오초의 대화 중에도 사에키, 곧 리큐는 무엇을 사랑하든 가슴 설레며 불보다 더 뜨거워진다고 했다. 하여 리큐라는 이름을 지어 천황으로 하여금 하사하게 한 고케이 소친은 오래 써서 끝이 예리함이 없게 뭉툭해져 이제는 쓸모없게 된 송곳인 노고추처럼 살라고 권고하기까지 했다. 날카로운 것도 적당히 해두고 둥글둥글 원만하게 살라는 충고를 들을 정도로 지나쳤던 것이다.

3. 백척간두에서의 줄타기, 그 끝은?

결국 추락인가? 극과 극을 오간 리큐의 행보는 결국 비극적 결말로 마감되고 말았다. 독야청청 절대적 지경에 홀로 군림하게 되면 시샘도 따르는 법, 더구나 천하를 제패한 관백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도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미의식을 오롯이 지켜나갔으니 변덕쟁이의 칼날을 비껴갈 수 없을밖에.

"그렇건만 그 사내. 천하에 단 한 사람, 그 사내만이 나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용서할쏘냐. 용서할 수 있을 리 없다.”(29쪽)

히데요시의 눈에 방자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센 리큐, 그는 도요토미의 마음을 읽었는지 모르는지 미동도 하지 않고 또 죽음도 구걸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런 모습이 더욱 밉살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황금 다실도 그렇고, 아카라쿠 다완도 그렇고, 내가 조금이라도 화려한 장식이나 도구를 즐길라치면 그 사내의 눈썹이 어렴풋이 움직였다. 그때의 그 거만한 표정으로 말하자면, 나는 태어난 것을 후회했을 정도였다. 참으로 소름끼치게 냉혹하고 냉철한 눈빛으로 이 나를 업신여기듯 내려다보았다. 천박한 취향, 입 밖에 내어 말하지는 않지만 눈이 그렇게 이야기했다.”(31쪽)

이렇게 겉으론 정중하면서도 내심으로는 히데요시의 심미안을 경멸하는 듯한 리큐의 교만을 천하의 도요토미가 용납할 리 없었던 것이다. 어떤 것의 극치는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면 꺾어지게 되어 있는 법, 리큐의 도저한 다도는 결국 히데요시에게 잠재되어 있던 극악한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더구나 상황이 이 지경까지 치달았음에도 불구하고 도요토미의 기세에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으니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을 수밖에. 아름다움의 끝, 백척간두에서의 줄타기의 결과는 파멸이었던 것이다.

4. 아름다움의 극과 극을 오간 연유는?

그런데 왜 리큐는 이렇게 극과 극을 오가며 비극을 낳고야 말 위험천만한 줄타기를 계속했던 것일까? 극악무도한 면모를 보이면서까지 다도의 절대적 경지에 이르고자 한 연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건 오로지 리큐 가슴에 늘 자리하고 있어 거기 있는 게 실감나지조차 않던 그 여자를 향한 일념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아름다움의 화신, 외모와 내면 모두 숨 막히는 경지를 보여주었던 그 여자 말이다. 조선의 고귀한 가문 출신답게 납치되어 팔려갈 처지인데도 태연자약하던 그 처녀의 눈부시도록 우아한 모습을 다도로 재현코자, 혹은 그녀에게 최상의 차를 바치기 위해 평생 지선극미한 아름다움을 추구하였고 그 과정에서 극악한 행태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일게다. 또 그게 버거운 세상을 버텨나갈 힘의 원천이 되기도 했을 테고.

“그 여자는 특별했다. 처절한 아름다움과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가득했다.”(413쪽)

“여자의 눈이 너무나도 검고 맑아서 요시로는 얼어붙었다. 검은 눈동자가 강렬한 빛의 송곳이 되어 요시로의 망막을 꿰뚫었다. 선명하고 강렬한 눈빛”(427쪽)

얼마나 빼어난 면모였는가 하면 “안에 아름다운 생명이 깃들어 있기에 거친 흙벽이 빛나 보이는 것이다. 다도에도 이렇게 가슴 설레는 연심이 있다면”(441쪽)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리큐는 일평생 그녀에게 들려있었던 것이다. 그 여자에게서 느꼈던 절대선의 이미지를 다도를 통해 구현해보고자 또 그런 그녀에게 어울리는 다실과 다구를 만들고 차를 끓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것이리라.

“그 여자라면 황금과 진홍색에 하얀 피부가 돋보여 필시 아름다웠을 것이다. 늠름하게 치오른 눈이 싸늘하고 신비로웠으리라. 이 황금 다실에는 누구보다도 그 여자의 피부가 어울린다. 하얀 살을 모조리 드러내게 하고 이곳에 앉힌 다음 진홍색 장지 너머로 바라보면... 그 요염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322)

“의연하고 기품 있는 다완, 그러면서 흠칫할 정도로 가볍고 부드러우며 손바닥에 착 감기고 마음속에 녹아드는”(342쪽)

그렇게 아름다운 그녀에 대한 미안함, 지켜주지 못한 자신에 대한 한심함과 증오와 절망이 한데 뒤섞여 리큐는 아름다움의 절정을 지향하면서도 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둘이 함께 죽자고 만든 독차를 그녀는 단숨에 들이켰는데도 리큐는 두려움에 떨며 끝내 마시지 못했고, 그 결과 천사를 자신이 떠나보내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자괴감과 부채의식에서 벗어나려는 보상심리가 그토록 극악하리만치 아름다움의 절대적 경지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고 그 절정에 이른 순간 바람 앞의 한 점 꽃잎처럼 미련 없이 생을 놓아버렸던 것이고.

야마모토 겐이치는 이처럼 극한에 이르도록 아름다움을 탐하는 리큐의 모습을 통해 아름다움의 절대성과 이를 추구하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인간의 극악한 면모를 고스란히 살려내었다. 하여 이제 리큐의 심경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리큐는 극과 극, 백척간두에서의 줄타기가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모든 것을 이미 꿰뚫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미학을 자랑스레 지키기 위해 굴하지 않고 나아갔던 것이고. 그게 그녀에게 속죄하기 위해 자신이 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에게 운명 지어진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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