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김희경 지음 / 푸른숲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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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좋은 날이면 절로 울리게 입력되어 있는 것처럼 내 머릿속을 두드리는 노래가 있다. 주문을 읊조리듯 흥얼거리다 그 여운에 그윽해지면 하천 옆 둑길에라도 나가야 한다. 울렁거리는 마음결 추스르려면 말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 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덜컹이는 기차에 기대어 너에게 편지를 쓴다. 꿈에 보았던 길 그 길에 서 있네.”


봉고 소리가 경쾌하게 깔리는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중독성이 강한 노래이다. 워낙 흡인력 있는 보이스에 노랫말까지 꿈결 같이 설레게 하는 것이다 보니 자연스레 어깨까지 들썩이며 따라 부르곤 하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걷기를 강권하는 힘이 노래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느낀다. 해서 볕 좋고 바람 서늘한 날이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뇌리에 살아나며 습관처럼 길을 나서는 것이다. 그런데 무작정 걷다보면 왜 이렇게 걷는 데 집착할까 하는 물음이 돋곤 한다.


왜 걷는가? 그것도 혼자서 무슨 청승이람. 그런데 조금 걷다 보면 이내 이런 의문마저 잊히고 만다. 그냥 걷는데 의미는 찾아서 또 뭣하겠다는 건가, 괜스레 폼까지 잡을 필요는 없지 않겠나 하고 퍼뜩 정신 드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말에 쉬 공감이 갔다.


여행의 목표와 의미를 처음부터 설정하려 안달하기보다 낯선 길을 홀로 걸을 때, 그리고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다 숱한 이들이 공유하는 어떤 감정과 지향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날 때, 비로소 여기서 무엇을 원하는지가 스스로에게도 이해되기 시작한다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까웠다. 여행 도중에, 어쩌면 여행이 끝나고 난 뒤 한참이 지나서야 깨닫게 될지도 모를 여행의 이유를 처음부터 분명히 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는 것이다.(21)


걷는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일인데 유별난 의미를 찾겠다고 나서는 게 우스운 일이라는 듯이 말이다. 하여 작가는 여행의 의미나 여행의 종착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그냥 묵묵히 길에 올랐을 뿐이다. 길이 그런 것이라면 카미노는 스페인에만 있는 게 아닐 것이다. 즐겁고 나를 느끼게 해 주는 길은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가려는 곳은 산티아고가 아니라 길 그 자체, 카미노일지도 모르겠다. 목표가 무엇이냐고 초조하게 스스로를 다그칠 필요가 있을까. 어느 한곳에 도착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카미노로 상징되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기는 일, 서울에선 그토록 어렵게만 느껴졌던 과정을 사는 삶을 여기선 한번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딱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여기 오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슬며시 들기 시작했다.(40)


그런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서 자연스레 터득하는 게 있다. 그것이 진정한 지혜의 발견이자 예기치 않았던 여행의 부산물 아니겠는가.


마음의 짐을 감당 못해 비틀거리던 날,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의 미소는 절망적인 시간을 예상치 못했던 위로의 순간으로 바꾸어주었다. 마치 여러 개의 거울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것 같기도 했다.(45-46)


하여 오늘의 나를 이룬 건 수많은 관계의 교차점이자 흔적들의 중첩이라는 깨움침을 얻게 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자신이 왜 카미노에 오르고자 했는지 실마리를 기어이 찾고 만다. 그것은 바로 과거의 상처, 상실의 아픔에 묶여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던 마음, 그 내면의 파도를 다스리려는 것이었음을 또렷이 알게 되었던 것이다. 하여 그 계기가 되었던 죽은 동생의 사진을 묻고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과거의 아픔에 대해 상실의 의미에 대해 한걸음 물러나 고요히 바라보게 된다.


두려워서 회피하려 애쓰는 대상은 언젠가는 다시 마주치고 만다는 것. 더 높은, 긴급한 목표를 뒀을 땐 그 두려움의 대상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더라는 것. 더불어 두려움의 대상에 내가 부여한 표상을 걷어버리고 사물 그 자체로 볼 줄 알면 그것이 주는 위압, 공포는 사라져버리더라는 것.(250)


그러고 나니 이제 웬갖 잡스런 상념들은 잊히고 오로지 걷는 일 자체의 즐거움에만 몰두하게 된다. 그러니 워커스 하이의 경지까지 맛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마라톤 매니아가 사력을 다해 뛰다가 문득 고통이 사라지고 오히려 지극한 쾌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에 이르는 것처럼 말이다.


반복적인 보행의 리듬에 맞춰 오래 걷다 보면 다리의 뻐근함, 발의 통증, 배낭의 무게에 대한 의식이 서서히 지워질 때가 있다. 몸이 가벼워지고 정신과 온 신경이 순수한 진공 상태로 빠져드는 듯한 기분, 내 안의 텅 빈 공간, 어떠한 생각도 없이 잠시나마 자아의 하찮은 주장을 몰아낼 수 있는 마음속의 공간과 마주하는 순간, 오래 지속되진 않았지만 그걸 알아차릴 때마다 여행의 목적을 완수한 듯 뿌듯해졌다.(143)


하여 작가는 오로지 자신에게 현재 닥친 일만 생각하고 또 그것을 즐기다보니 어느새 종착지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 바람처럼 홀가분하게 그렇게 거리낄 것 없이 자신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인정하며 여행을 마무리할 수 있다니. 그러니 여행이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전과 별반 다를 것 없이 무덤덤해질밖에.


집에 돌아온 뒤의 나는 떠나기 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서툴고 성마르며 곧잘 불안해한다. 실컷 나아졌다고 생각한 바로 다음 순간, 아주 사소한 좌절에도 마음은 고질적인 절망의 늪으로 곤두박질치듯 되돌아가곤 했다. 오래된 마음의 습관에서 빠져 나오는 변화란 순식간에 일어나지 않는 모양이다. 중요한 것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울 때마다 나는 카미노를 걷던 일을 마음속에 선명한 이미지로 떠올려보려고 노력한다. 거기선 내가 얼마나 나 자신을 마음에 들어했는지를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려고 애를 쓴다.(에필로그)


하여 뭐 대단한 것을 발견하여 여행에 오르기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가져다 줄 카미노는 실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걸 모르고 악착같이 매달리다 보면 오히려 실망이 크고 후유증만 남을 것이다. 김희경은 진즉에 그걸 알아보았기 때문에 별 탈 없이, 아니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즐거움까지 맛보며 여행에 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의 길을 따라가자니 내게도 바람이 불어오는 듯하다. 카미노에 한번 올라 보라고 넌지시 이끄는 손길을 느낀 것이다. 만약 오른다면 나 역시 무언가 꼭 얻어 보리라, 이 기회에 이루고 말리라 모질게 마음먹고 결기 가득한 가운데 나설 게 아니라 그냥 별 뜻 없이 나아갈 것이다. 그러다 뭔가 나름의 의미라도 얻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특별한 순간을 경험하고 값진 지혜를 깨우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매순간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질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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