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가스통 르루 지음, 최인자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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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지나치게 통속적인 규정 같지만 [오페라의 유령]은 아름다운 프리마돈나 크리스틴 다에를 두고 라울과 에릭이 펼치는 삼각관계를 다룬 러브스토리이다. 그런데 사랑을 그린 여느 작품과 달리 기괴하고 음울한 분위기가 전반에 깔려 있다. 스토리라인을 주도하는 에릭의 그로테스크한 외모부터 공포와 엽기를 불러일으켜 섬뜩하게 만든다. 게다가 수시로 터지는 예측불허의 사건들은 하나 같이 상상의 한계를 일탈한 것이어서 읽는 내내 불편하기만 하다. 최악은 다에를 향한 에릭의 과도한 집착이었다. 교묘하고 집요하면서 때론 인간적 연민에 호소하는 모습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처음엔 음악 천사로 알고 일순 끌리기도 했던 다에도 진저리를 치며 거절하지만 에릭에겐 소용이 없었다. 오로지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바치면 언젠가 받아 주리라는 믿음으로 에릭은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하여 다에에겐 에릭의 사랑, 아니 집착이 너무 아프게 다가왔을 밖에. 자칫하면 자신은 물론 사랑하는 이까지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했으니.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사랑에 아픔이 없을 수 없는 법. 모든 게 술술 풀리기만 한다면 이를 두고 사랑이란 아릿한 이름을 붙이기 어렵지 않을까? 그건 그냥 일상적인 즐거움이나 행복일 테니. 열등감으로 점철되어 사회와 불화하며 자신만의 꼬치 속에 웅크리고 있던 에릭도 다에를 만나면서 아이 같이 순진무구한 마음이 되어 지극한 순정을 바치게 된다. 다만 상대를 아프게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해 일순 눈이 멀어버리니 말이다. 하지만 에릭도 끝내는 마음을 정리한다. 라울과 다에의 사랑을 인정하고 물러나며 다에의 호의를 바라는 것으로 만족한다. 하여 에릭의 집착, 다에의 아픔도 결국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그들만의 방식으로 불태운 사랑으로 내겐 다가온다. 그래서 에릭을 동정한다. 아니 그의 심경에 동감한다. 그 동감의 정서 속엔 그가 지닌 천상의 재능에 매료된 측면도 있다. 그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에릭은 예정되어 있는 파국을 슬기롭게 세팅한다. 분노와 울분을 외적으로 표출하지 않고 스스로 안고 간다. 다만 다에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런 에릭에게서 인간미가, 사랑의 감정이 읽힌다. 그 또한 매력적이다.

 

 

에릭을 동정한다. 아니 그의 심경에 동감한다.

 

사랑의 감정이 아무런 장벽이나 갈등 없이 처음부터 순탄하게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 세상사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환경이 허락하지 않는다든가 일방이 마음을 열지 않는 등 갖은 난관이 가로막기 십상이다. 에릭은 다에에게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전하지만 얼음같이 차가운 다에의 태도에 마음이 무너진다. 그러면서 자탄에 빠진다. 흉측한 외모, 세상과 어울릴 수 없는 자아를 부여잡고 울부짖는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나를 바라보지 않는 그녀, 아니 보고도 없는 사람 취급하던 그녀, 물론 그녀는 타인과 같은 정도의 친절은 베풀었다. 그리고 내 친구를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던 그녀, 그런 그녀에게 차마 심경을 털어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그녀도 내 마음을 분명 읽고 있을 텐데 일말의 여지도 없이 냉담하기만 했다. 서글픈 심경을 안고 군에 입대를 하였다. 그리고 논산훈련소에서 맞은 휴식시간에 노래일발 장전을 주문한 조교의 강권에 못 이겨 내 심경을 담은 한 곡을 뽑았다.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다들 울렁거리며 속으로 따라 부르는 듯했다. 그렇다 에릭만 그런 게 아니고 많은 이들이 이런 아픈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를 동정한다. 아니 동정이란 말보다 그의 심경에 나도 동감한다고 전하고 싶다.

 

에릭에게서 프레드 머큐리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밤이면 불빛을 찾아 그게 어떤지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나방, 곧 최후를 맞을 텐데도 열에 들떠 무작정 나아간다. 그런데 달리 보면 불빛이 아름답고 매력적이기에 이들을 흡인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에릭에게도 그런 치명적인 매력이 있었다. 그랬기에 다에는 천상에서 내려온 음악 천사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에릭의 지도를 받고 다에는 오페라 하우스의 프리마돈나로 우뚝 서게 된다. 처음 음악 천사 에릭을 접했을 때 언뜻 겹치는 얼굴이 있었다. 그룹 퀸(Queen)의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던 것이다. 네 옥타브를 넘나드는 폭발적인 가창력에 서정적인 우수에 젖은 필, 거기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 요절한 이미지까지 에릭과 묘하게 오버랩되었다. 둘 다 극한까지 넘본 탐미주의자였다. 프레드 머큐리의 [Bohemian Rhapsody] 나 [Love of my life]를 음미해보면 천상의 목소리가 이런 게 아닐까 무릎을 치게 된다. 에릭은 음악적 재능 못지않게 건축가로서의 안목, 발명가로서의 재기발랄함도 갖고 있는 천재였다. 그런 에릭이었기에 많은 이들이 경원시하면서도 단호하게 내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다에도 그의 자장에서 헤어나지 못했고.

 

지나친 집착은 파멸을 부르고...

 

그러나 지나친 집착은 결국 파멸을 부르는 법이다. 평범한 이들과 뇌구조가 다른 이들은 우리들 상상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다에를 어떻게든 취하려는 에릭은 결국 여러 건의 살인을 저지르며 오페라 하우스를 공포로 몰고 간다. 간절하게 다에를 지키려는 라울은 지하세계에 진입하였다가 에릭이 설계한 고문실에 갇혀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스스로를 교수하는 극단적인 상황에까지 처한다. 이때 사랑하는 이를 살리기 위해 다에는 에릭과 처절한 두뇌게임과 몸싸움을 불사한다. 더 이상 나갈 데 없는 파국에 이른 것을 알아차린 에릭은 마지막 선택을 하게 된다. 파멸은 이미 예정된 것이기에 피할 수 없을 터, 에릭은 결국 다에가 납득할 수 있는 타협안을 내고 다에의 동의를 받아낸다. 그리고선 심경을 정리한다.

 

너무 아픈 사랑이었지만 그래도 사랑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으로 불린 음악 천사 에릭은 드디어 최후를 맞는다. 그리고 다에도 약속을 지킨다. 그가 건네주었던 반지를 에릭의 손가락에 끼워주며 화해한다.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들 나름의 사랑의 방식으로 소통한 셈이다.

 

여기서 에릭, 그의 인간미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그는 괴물이 아니었다. 사랑을 갈구하다 현실에선 이루지 못하자 그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전하며 생을 마감했다. 다에, 그녀도 사랑을 아는 자였다. 에릭의 곡진한 마음을 결국은 받아준 것이니.

 

하여 [오페라의 유령]은 너무 아릿한 러브스토리이다. 너무 아파 감히 사랑이라 부르기 어려운 얘기다. 그러나 파탄으로 치닫기는 했지만 끝내 사랑하는 이를 해치지 않고 지켜주고 또 상대를 마음으로 인정하며 받아들인 것이기에 사랑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에릭과 다에, 그들 사이의 고뇌와 아픔, 그것도 결국은 사랑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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