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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 - 나를 괴롭히는 완벽주의 신화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법
브레네 브라운 지음, 서현정 옮김 / 북하이브(타임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오늘 또, 안 읽히는 책 얘기 하나.
브레네 브라운 지음, [나는 왜 내 편이 아닌가]를 읽다 또 막히고 말았다.
처음부터 후딱 읽어치울 책이 아니란 걸 알고 시작했지만 이건 해도 너무~심했다.
우선 공감 가는 부분에 밑줄을 그어나다 그만 둬 버렸다. 왜냐면 모든 얘기가 하나 같이 소중한, 절절하게 와 닿는 것이었기에 따로 밑줄을 그을 필요가 없었던 것. 글 전체가 어느 대목 하나 지나쳐 버릴 수 없을만큼 명문, 공감가는 얘기로 빼곡했던 것이다.
사실, 목차를 훑어보다 목차에다 밑줄을 긋기 시작했으니.
이를테면 이런 대목,나의 파워를 수치심이라는 감정에게 내어주게 되면, 수치심 회복탄력성은 어떻게 길러갈 수 있는가?, 나만의 수치심 촉발제 찾아내기, 분노 약한 나를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 자신의 존재가 무시당했다고 느낄 때 수치심은 분노로 바뀐다, 주제 파악 좀 하시지 전형화와 꼬리표의 족쇄...
특히 8장에 나오는 주제 파악 좀 하시지 전형화와 꼬리표의 족쇄, 족쇄......
이렇게 목차 읽다 망연자실했고.
작가가 왜 수치심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는지 계기를 밝히는 대목에서 또 한번 나의 교육 및 양육 방식에 대해 돌아보다 한동안 멍하게 있었다.
수치심을 불러일으키거나 무시하는 것으로 한 사람의 행동을 바꿀 수는 없다! 는 지도교수님이 말에 충격을 받고 음미하다 수치심에 대해 연구하게 되었다는 고백 부분에서 말이다.
또 정말 고통스러웠던 것은 수치심에 대해 고백하고 있는 사례들에서 였다.
수전, 카일라, 테레사 및 손드라. 기타 이름을 밝히지 않고 수치심에 빠져 분노하고 좌절한 이들의 고백을 읽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나까지 그 고통의 아우라 속으로 빨려드는 듯 했기 때문이다.
브라운은 이런 고통의 개념을 정의하고 이를 극복할 회복탄력성을 길러 나가는 법을 든 다음 누구도 혼자가 아니고 우리 모두는 우리 편이다 라는 것으로 글을 끝맺고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 나오는 시 '그대, 이제 절대 더 이상 외롭지 마라'는 화룡정점인 셈.
이 책은 차분히 몇 번이고 음미하며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수치심의 근원에 대해서도 이 책을 보며 정리해보아야 겠다. 필자가 말했듯이 따라하기만 하면 금방 수치심을 극복할 수 있는 그런 류의 책은 아니지만, 그리고 실제 그런 일은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위안과 치유의 느낌을 한껏 서서히 오래도록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