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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사랑하는 법이 다르다
주병율 엮음 / 더좋은책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상다리 휘어지게 한 상 떡하니 잘 차린 남도 한정식을 받은 듯하다. 너무도 맛깔스런 시들이 즐비하여 무엇부터 읽어야 할지 난감할 정도이다. 우선 대가들의 작품에 눈길이 먼저 갔다. 서정주, 김수영, 김종삼, 황동규 등 한국 시를 얘기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이들, 그 이름만으로도 귀가 호강하는 듯한 작가들의 대표작을 읽으니 역시나 대가가 다르긴 다르구나 새삼 절감한다.
대가들의 시에 젖어 여운을 즐기다 퍼뜩 깨어나게 만든 시가 있다. 어쩜 김수영 시인이나 황동규 님의 작품보다 내 가슴에 더 강하게 꽂힌 듯하다. 바로 최승호의 [물든 놈]과 윤의섭의 [사랑니]이다. 최승호의 [물든 놈]은 짧은 분량이지만 울림의 크기가 녹록치 않았다.
어느 해 여름 불이문이라는 아름다운 문을 보고, 비구니들의 저녁공양도 받고, 절간 한 귀퉁이 방에 나그네로 잠든 밤에, 얕은 꿈속으로 동창생들이 몰려와 나를 끌어내며 나무라듯 말하더군요.
-너같은 물든 놈이 왜 여기서 잠을 자냐고(60쪽)
나도 종종 친구들에게 그런 타박을 듣는데, 선생님 그렇게 괴롭히던 놈이 선생질하고 자빠졌으니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고 말이다. 대응할 말이 없어 그냥 쥐죽은 듯 뒷전에 있을 밖에. 이런 시를 알아본 주병율 시인의 혜안도 놀랍지만 이 시에 덧붙인 짧은 코멘트가 더욱 압권이다. 자신의 바탕 역시 물든 놈이라 고백하며 세상에 물든 자신이 안쓰럽고 언짢아 가끔씩 가슴에 손을 올려본다는 얘기이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를 읽을 때처럼 스스로 돌아보고 삼가야 겠다는 마음 뭉클하게 솟는다.
내가 꼽는 이 시선집 최고의 걸작은 윤의섭의 [사랑니]이다. 사랑니 뿌리 때문에 받은 진통제를 보며 나무에도 진통제가 있음을 얘기하는 대목에서 감성도 놀랍지만 상상력이 너무 대단해 보였다.
나무의 진통제는 아마도 바람이거나 달덩어리라고 짐작하지만 그래서 서늘해지거나 삼킨 달을 반쯤 토해내기도 하지만 겨울로 가는 부작용은 심한 모양입니다(28쪽)
나뭇잎 떨구고 겨울 채비하는 모습을 나무가 아파하는, 진통제를 맞고도 버거워하는 모습으로 읽은 것이다. 이를 읽고 주병율은 우리에게 생생한 나무의 진통제 받아보라고 권하고 있다. 한참을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그 외에도 맛깔나는 반찬들로 가득 하니 즐거이, 깊게 읽어보기 바란다.